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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게오르크 루카치를 꺼내 읽다

김경식, 《게오르크 루카치: 과거와 미래를 잇는 다리》, 한울, 2000

by 꿈꾸는 곰돌이

버려진 게오르크 루카치를 꺼내 읽다

폐기 도서를 무료로 나누어주는 대학 도서관의 행사 코너에서 반가운 책을 발견했다. 먼지가 쌓인 폐기도서의 더미 속, 김경식 박사가 쓴 《게오르크 루카치: 과거와 미래를 잇는 다리》를 발견한 기쁨은 도서관이라는 공간의 묘한 상징성과 맞물려 더욱 각별했다. 누군가에게는 폐기로 분류된 책이었을지라도, 내겐 그것이 폐기가 아닌 불씨처럼 느껴졌다. 책을 손에 들고 천천히 제목을 음미하며 생각에 잠겼다.



그 순간, 내 손에 들린 한 권의 책을 통해 게오르크 루카치의 혁명적 사상이 고스란히 되살아나는 듯했다. 루카치는 단지 부르주아 철학자나 문예 비평가로만 머물지 않았다. 김경식 박사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는 "문제적 개인"에서 출발해 공산주의자이자 실천적 혁명가로 살아갔다. 그의 삶은 현실과 세계를 바꾸고자 했던 학문적·이데올로기적 투쟁 그 자체였다.



주로 그를 《역사와 계급의식》을 쓴 혁명적 이론가로 기억하지만, 그의 사상은 더 깊고 넓은 여정을 거쳤다. 김경식 박사는 그의 변화를 "마르크스주의 수업 시대"를 지나, 일흔을 넘어서야 비로소 성숙한 사회적 존재론을 확립한 과정으로 묘사한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신칸트주의 철학자나 초기 마르크스주의자였던 루카치의 모습에만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다. 그의 전 생애와 사상을 총체적으로 접근하는 해설서인 이 책은 그렇기에 더욱 가치가 있다.



혁명과 실천적 사유의 중심에 선 루카치



루카치는 마르크스주의를 통해 역사를 이해하고, 그것을 변화시키려는 실천적 태도에 집중했다. 그에게 현실이란 고정되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하며 스스로를 극복하는 운동이다. 그는 단순히 혁명의 이상적 그림을 그리려고 하지 않았다. 대신, 현실 속에서 혁명을 실제로 어떻게 조직할 것인지, 일명 혁명의 현실성을 끊임없이 고민했다.



흔히 루카치의 초기 저작 《역사와 계급의식》에서 계급의식과 소외된 현실에 대한 분석을 떠올리지만, 그의 사상은 삶의 후반부로 갈수록 더 실천적이고 구체적인 방향으로 진화했다. 초기의 관념적 유토피아에서 벗어나, 현실 속 조건들을 통해 변혁의 에너지를 어떻게 만들어낼 수 있는지를 모색했다. 이는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되는 루카치 사상의 중요한 포인트다.



소외와 혁명



루카치에게 "소외"란 단순히 청년 마르크스의 사상을 반복하는 개념이 아니었다. 그는 이를 자본주의 체제 속에서 인간이 노동과 산물로부터, 나아가 타인과의 관계마저 왜곡되는 현대적 문제로 확장했다. 혁명이란 이러한 "소외"를 극복하고, 모든 인간이 자신의 삶에 주체적으로 다가설 수 있는 세계를 만들어 가는 실천적 행위라고 보았다.



오늘날에도 소외는 유효한 개념이다. 스마트폰과 같은 기술이 연결을 약속하지만, 우리는 점차 더 깊은 단절과 상실감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현실 속 불편함을 회피하며 순간적인 안락함에 안주하고, 자기 존재를 거대한 이데올로기에 맞춰버리는 선택을 하곤 한다.



루카치의 혁명적 핵심은 바로 이러한 현실에 대한 정면 돌파에 있다. 그는 혁명을 낭만적 이상으로 그리지 않았다. 혁명이란, 소외된 인간이 다시 삶의 주체로 돌아오는 과정이고, 그 과정은 변증법적 현실감각을 기반으로 한다.



문학에서 혁명을 찾다



한편 루카치를 단지 철학자로만 기억해서는 안 된다. 그는 문학과 예술을 혁명의 과정과 분리된 것으로 여기지 않았다. 문학과 예술은 인간의 삶과 갈등을 조명하고, 그 속에서 가능성을 상상하게 만드는 장이다. 이는 혁명적 상상력으로 연결된다. 예술은 현실을 무조건 복제하거나 현실에 귀속되는 도구가 아니라, 현실을 넘어서 가능성을 투사하는 거울, 지도라고 보았다.



루카치에게 문학은 혁명을 위한 토대였다. 문학은 인간과 세계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면서 동시에 그것을 변혁할 가능성을 품고 있어야 한다. 스탈린주의적 사회주의 리얼리즘도, 서구의 모더니즘도 루카치에겐 불충분했다. 그는 인간을 위한 진정한 리얼리즘을 꿈꿨고, 그 속에서 변혁의 씨앗을 찾았다. 오늘날 우리가 예술과 문학에서 혁명적 가능성을 상실하고 현실의 논리에 함몰될 때, 우리는 루카치를 다시 떠올려야 한다.



루카치를 다시 읽어야 하는 이유



《게오르크 루카치: 과거와 미래를 잇는 다리》라는 책 제목은 매우 상징적이다. 루카치는 과거의 유산과 미래의 가능성을 이어주는 연결점 같은 존재였다. 그는 마르크스주의라는 유산을 자신의 시대적 현실에 맞춰 재해석했고, 이를 통해 미래의 혁명적 전망을 설계했다.



루카치를 다시 읽어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더 이상 낭만적 이상향의 혁명이 아니라, 오늘날 현실에서 가능한 변화를 상상하고 조직하는 힘을 얻기 위해서다. 그는 과거의 인물이 아닌, 여전히 우리의 미래에 질문을 던지며 가능성을 촉구하는 존재다.



도서관 책 더미 속에서 시작된 이 작은 만남이 앞으로의 긴 여정의 출발점이 될지도 모르겠다. 시간이 흘러도, 그의 책은 우리가 현실을 비추어볼 거울로 남을 것이다. 그 사상이 폐기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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