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 불매 운동

블랙 기업을 넘어선 블랙 시스템에 대한 저항을 위하여

by 꿈꾸는 곰돌이

쿠팡 불매 운동

-블랙 기업을 넘어선 블랙 시스템에 대한 저항을 위하여


최근 불거진 쿠팡 개인정보 유출 사건을 필두로, 쿠팡의 기업 이미지가 일명 ‘나락’으로 추락하는 중이다. 개인정보 유출은 물론, 열악한 노동 환경과 그로 인한 산업재해 발생, 나아가 이를 은폐하려는 정황까지 포착되면서 쿠팡은 한국 사회에서 블랙기업의 대명사로 자리매김하는 상황이다. 더욱이 김범석 경영자를 비롯한 오만한 경영진의 태도와, 쿠팡이 사실상 미국 기업이라는 점이 부각되면서 반미 및 민족주의적 정서도 한몫하는 듯하다. 이에 대한 반감으로 일부 진보 성향의 시민들을 중심으로 대규모 불매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물론, 아직까지는 범국민적인 불매운동은 아니며, 결코 불매운동이 쉬운 일은 아니다. 새벽배송과 당일배송의 편리함으로 우리 일상에 깊숙이 스며든 쿠팡이기에, 그에 대한 불매운동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SNS에서 개인은 물론, 녹색당, 정의당 등 제도권 정당과 시민 단체, 그리고 김의성, 문성근 같은 유명 연예인까지 참여하며 그 열기는 뜨겁게 달아오르는 중이다. 이에 극우 성향의 자유대학은 테무와 알리 등 쿠팡의 대체제인 중국 자본의 진출에 반대하며 오히려 쿠팡을 응원하면서, 쿠팡 불매가 주류 정치 담론으로 흘러가고 있다.

한국에서의 불매운동 역사는 긴 편이지만, 근래 가장 범국민적인 불매를 이끌어낸 사례는 2019년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로 촉발된 일본 기업 불매운동이다. 당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죽창가'를 언급하며 반일 감정을 고조시켰고, 민족주의적 성향이 강한 시민들을 중심으로 광범위한 불매운동이 벌어졌다. 이 운동이 지속적인 효과를 보인 것은 아니나, 일본 자동차, 일본 맥주, 일본 여행 산업 등 여러 부문에서 일시적으로나마 유의미한 타격을 안긴 것은 사실이다. 19년도 당시 일본 불매운동은 문재인 정권 차원에서 부추겼다고 할 만한데, 실은 매우 기만적이다. 안보 측면에서는 일본과 계속 협력하면서도, 일본의 경제 침탈에 맞서 한국 경제를 보호하고 민족적 단결을 이뤄내자는 애국주의 및 민족주의적 사고를 바탕으로 한다. 이러한 민족주의적 흐름은 정녕 중요한 일본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항의가 아닌, 국내 노동개악을 정당화하는 논리로 이어질 수 있다. 이것은 반제국주의라기보다 포퓰리즘적이다. 외세 자본에 맞서기 위해 국내 노동자들의 이해관계를 삭감해 자본가들과 협력해야 한다는 계급 협력으로 이어지기 쉽다. 그러니 세계를 민족 국가의 대결이 아닌 계급의 대결로 이해하는 관점에서, 당시 불매운동은 진보의 외피를 쓴 기만적인 민족주의적 불매운동일 뿐이다.

그럼에도 모든 불매운동이 기만적인 것은 아니다. 2022년 SPC 그룹의 산재 사망 사고가 잇따르자, 진보 성향 시민들을 중심으로 SPC 불매운동이 전개되었다. 국제적으로는 2023년 10월 7일 이후, 이스라엘의 잔혹한 팔레스타인 학살에 동조하는 기업들을 규탄하는 BDS(불매, 투자철회, 제재) 운동이 전 세계적인 무슬림들과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이들이 참여하는 캠페인으로 확산되기도 하였다.

이처럼 불매운동은 거대 기업의 비윤리적 행위에 맞서는 시민들의 가장 직접적이고 강렬한 저항 수단으로 여겨지고 있다. 하지만 이 지점에서 우리는 한 번쯤 근본적인 시선으로 불매운동의 본질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과연 이처럼 폭발하는 대중의 분노는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거대한 구조적 문제의 뿌리를 제대로 겨누고 있는 것일까?

불매운동의 가장 큰 힘은, 쌓이고 쌓인 대중의 불만과 분노를 수면 위로 떠오르게 만드는 데 있다. 특히 이번 쿠팡 사태처럼, 기업의 명백한 과오가 만천하에 드러난 순간, 많은 소비자들이 "이제 지갑을 닫겠다"고 결심하며 분노를 행동으로 옮긴다. 이러한 참여는 일상 속에서 비교적 쉽게 실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조용히 불만을 품고 있던 평범한 이들도 쉽게 힘을 보태게 만드는 강점이 있다. 저항의 문턱을 낮추고, 때로는 잠자고 있던 사회적 에너지를 일깨운다는 점에서, 단기적인 효과와 대중의 잠재된 분노를 가시화하는 데는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그러나 그 효과는 대개 일시적이며, 사회의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는 미미한 영향만을 미칠 뿐이다. 그러므로 불매운동은 사회의 진보를 열망하는 이들에게는 일종의 단기적인 전술일 뿐, 궁극적인 변혁을 위한 전략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불매운동은 발본적인 문제 해결이 아닌 대중의 분노 표출 수단이라는 점이다. 불매운동의 결정적인 취약점은, 원래 구조적이고 발본적으로 도전해야 할 문제를 개별 기업의 차원으로 격하시킨다는 데 있다. 쿠팡의 블랙기업을 깊이 들여다보면, 이 사안은 단순히 쿠팡이란 개별 기업과 이를 운영하는 경영진의 악덕함으로만 설명할 수 없다. 부실한 개인 정보 관리, 이윤 창출을 위한 비인간적인 택배 노동자 착취는 개별 기업과의 경쟁에서 이윤을 창출하기 위한 이윤 경쟁 시스템에 있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불매운동은 종종 문제의 뿌리를 ‘쿠팡만’ 혹은 ‘이번 유출 사건만’에 한정시키는 뒷문을 열어주게 된다.

이스라엘에 대한 BDS 운동도 마찬가지다. 대중의 요구는 일시적으로 이스라엘에 대한 타격을 입힐 수는 있지만, 이스라엘의 생존 전략은 미국 및 서방 제국주의의 사냥개라는 점이다. BDS운동으로 이들에게 유의미한 타격을 가할 수는 있지만, 이스라엘에 맞서는 팔레스타인인들의 주체적 투쟁과 제국주의에 협력하는 자국 정권에 맞서는 아랍 대중의 반란이 핵심적이다.

여기에 더해, 불매운동이 '개인의 도덕적 실천'에만 전적으로 기대게 되면 또 하나의 심각한 문제에 직면한다. 그것은 바로 불매에 동참하지 않는 이들을 향한 도덕적 비난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불매운동이 확산될수록, '아직도 쿠팡을 이용한다'는 사실만으로 누군가 비난받고, 때로는 '상식 없는 소비자' 혹은 '공범'으로 취급되는 분위기가 만연해진다. 하지만 현실을 냉정히 곱씹어 보면, 누군가에게는 생필품 구매조차 빠른 배송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불가피한 사정이 존재하며, 더 저렴한 가격, 쉬운 접근성, 혹은 마땅한 대체제가 없는 다양한 상황이 엄연히 존재한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소비는 결코 '자유로운 개인의 선택'만으로 단순하게 설명될 수 없는 복잡다단한 허상을 품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경제적, 사회적 격차와 현실을 외면한 채, 오직 도덕의 잣대만을 겨누는 순간 대중 내부의 갈등과 분열은 더욱 깊어지게 된다.

더욱이 불매운동이 가진 가장 큰 난점 중 하나는, 특정 기업에 대한 불매 이후에 절대적인 대안이 없다는 점이다. 즉, 불매운동의 대상인 '최악'에 맞서 '차악'을 택해야 한다는 딜레마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그 이유인즉슨,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절대적인 도덕적 기준에 만족하는 '윤리적인 소비'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모든 노동자를 착취해서 이윤을 창출하는 기업의 제품을 구매하면서 도덕적인 소비를 운운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쿠팡이나 SPC처럼 상대적으로 착취율이 높고, 노동자를 도구처럼 여기는 이른바 '블랙 기업'을 불매하더라도, 그 대안은 단지 비교적 덜 착취하는 다른 기업의 제품을 구매하는 것일 뿐이다. 나름 '윤리적'이라고 평가받는 기업의 제품을 사려면, 가격이 비싸지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가령, 공정무역을 통해 거래된 커피가 일반적인 대기업 커피에 비해 대중에게 쉽게 선택받지 못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결국, 불매운동은 '풍요로움에서 비롯된다'는 익숙한 유물론적 명제를 다시금 확인시켜 줄 뿐이다.

불매운동은 대중의 분노를 표출하는 일시적인 계몽의 계기가 될 수 있다.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이는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오기에는 역부족인 한계적 실천에 불과한 것이다. 불매운동은 거대한 자본주의적 구조를 개인의 소비 윤리 문제로 축소시키고, 대중을 분열시키는 도덕적 평가의 장으로 변질될 위험이 크다는 냉정한 지적이 가능하다. 진정으로 자본의 모순에 저항하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나가기 위해서는 단순히 특정 기업의 상품을 사거나 사지 않는 행위를 넘어서야 한다. 생산 수단의 소유 관계와 데이터 경제 시대의 새로운 착취 구조, 그리고 사회 전반의 구조적 불평등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와 이를 바꾸기 위한 집단적이고 체계적인 투쟁이 필요하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불매운동은 초기 대중의 분노를 집약시킬 수 있는 수단적 전술이지, 그 자체로는 ’혁명‘의 대체적 대안이 되지 못한다. 이러한 보이콧 운동과 비슷한 원리의 협동조합 운동을 주장하는 가라타니 고진의 ’소비자 운동‘이 허상인 이유 역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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