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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곰돌이 Jan 19. 2024

정호승 시인의 《고통 없는 사랑은 없다》 서평

7.불행한 책읽기

"사랑하는 작가 신간을 기다리는 것은 데이트 장소에서 연인을 기다리는 것과 같다"던 시수업 시간의 시인의 말이 생각난다. 내게 정호승 시인이 그렇다. 정호승 시인은 이 시대 서정시의 최고봉에 오른 시인 중 한 명으로, 천재들의 상흔이자 징표인 멜랑꼴리커다. 그의 시에는 사랑, 그리고 그로부터 오는 심연의 죽음이 드리워져있다. 등단작이자 대표작 '슬픔이 기쁨에게'에서 시작해 최신 시집'슬픔이 택배로 왔다'에 이르기까지 늘 슬픔의 바다 속 사랑이란 돗단배에 의지해 실존의 향해를 해왔다. 사랑이 신-예수에 대한 사랑이던, 이웃에 대한 사랑이던, 가족에 대한 사랑이던, 연인에 대한 사랑이던 간에, 그에게 사랑은 실존의 해답이었다.



 그의 신간 산문집 《고통 없는 사랑은 없다》는 그 연장선에 있다. 일흔이 넘겨, 스스로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음을 인지한 늙은 시인이자 사랑꾼인 정호승시인의 시와 인생이 담긴 산문집이다. 시, 종교, 군생활, 부모님, 수의, 새와 같은 일상적 소재부터 세월호와 천안함까지 굵직한 사회적 사건까지 담아낸다. 세월호도, 천안함도 그는 모두 분노하고 애도한다. 다만 천안함이 북한이 벌인 소행으로 단정짓고 나서 장병들을 애도하는데, 이 점은 동의할 수 없다. 그럼에도 전쟁이 없는 국가를 바라는 시인의 바램에는 동의한다. 정치적 단상은 많이 없지만, 이 산문의 강점은 단지 소박한 사랑의 시인으로 처량한 사회를 마주하는데 있다.



인상깊은 글은 <나의 첫키스>와 <슬픔은 눈물이 아니라 칼이다>이다.

 사촌 누나를 연모했던 풋풋한 중학생의 시인이 첫키스도 아닌 첫키스를 회상하며, 요절한 그녀를 회상한다. 그는 키스를 통해 '잃어버린 시간'을 찾

는다.  <슬픔은 눈물이 아니라 칼이다>는 그의 대표시 <슬픔이 기쁨에게>의 에피소드를 다룬다. 꼭 읽어보길 바라며 자세한 내용은 생략하나, 전설의 평론가 김현 선생과의 일화도 등장한다. 서정시, 아니 참여시와 민중시 속 서정을 담아내는 정호승 시인을 보면 감탄이 나온다. 브레히트, 먀야콥스키, 김수영이나 김남주와 같은 참여시인들은 참여시도 쓰며 사랑시도 몇편 남겼다면, 정호승 시인은 사랑시와 참여시를 융합한다. 그에게 사랑은 혁명의 시작이자 종점이다. 그 외에도 안치환의 노래로 알려진 <우리가 어느 별에서>나, 피천득 선생이야기, 김현승 시인 이야기 등 그의 여러편의 산문에서는 따뜻하면서도 구슬픔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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