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치료 39일
우울증 약을 복용하기 시작하면서 선생님은 이 약(에스벤 서방정 50mg)이 처음에는 상승곡선을 이루다가 어느 순간 살짝 하락할 것이라고 했었다. 당시에는 무슨 이야기 인가 싶었는데 지금은 알것 같다. 딱 그런 기분이 든다. 나아졌던 기분에 옅게 안개가 껴있는 기분이다.
병원에 가는 날이었다.
2주에 한 번 병원을 가는데 왜 이렇게 병원 가는 날은 빨리 찾아오는 건지 이제 살짝 귀찮아지려고 한다. 선생님은 최근 나의 근황을 물으셨다.
“최근에 기분이 좋지도 나쁘지도 않았는데 , 며칠 전부터 약간 부족한 느낌이 있어요. 처음에 선생님이 말씀하신 그 순간이 찾아온 것 같아요”라고 하자 이럴 때 추가적으로 약을 조금 더 쓰면 된다고 한다. 이게 바로 기술이라며 밥을 먹으며 반찬을 곁들이는 식이라고 하셨다. 예 선생님 그럼 반찬도 잘 먹겠습니다. 그런데 이러다가 점점 약을 끊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약에 대한 중독은 없다고 했지만 내가 약에 대한 의존이 심해지면 어쩌지?
나 : “선생님 저 약을 끊을 수 있을까요?”
선생님 : "(단호) 네. 당연하죠."
이렇게 단호박처럼 이야기한다고? 저 박력 있는 대답에서 나도 모르게 홀리듯 끊을 수 있을 거란 확신이 생겼다.
선생님 : "요즘의 기분과 몸의 컨디션 등을 설명하라고 하면 어떠실까요?"
나 : "약 복용을 처음 했을 때만큼은 아니지만 딱히 좋지도 나쁘지도 않아요."
선생님: "네 다행이네요."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상태가 “다행”이라는 대답을 이끌어내는 것이 흥미로웠다. 보통은 '좋아'야 다행이라 생각하는데 말이다. 강박적으로 나는 지금 행복하고 즐겁고 재밌어야 해!라는 생각이 은연중에 있었나 보다. 하긴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상태가 평소 무드가 되어야 기쁠 땐 기쁘고 , 슬플 땐 슬퍼할 수 있겠지.
“선생님 제가 지금 상태에서 더 나아지려면 약 말고 뭘 더 하면 좋을까요?”라고 묻자 되려 내게 무얼 하고 싶냐 물었다. “그러게요? 뭘 하면 좋을까요. 원래 글 쓰고 책 읽는 걸 좋아하는데 좋아는 하는데 집중력이 떨어져서 잘 안되고 있어요. 그래서 저녁에 대부분 쉬어요. 뭘 하긴 해야 할 것 같은데 잘 안돼서 불안해요”
그렇담 지금 이 상태가 맞는 거라 말씀하셨다.
네? 아무것도 안 하는 이 상태가 맞는 거라니? 늘 무언가 하라고 푸시를 당하는 인생이었는데 아무것도 안 하는 이 상태가 괜찮은 거라니?. 학교 다닐 땐 공부해라 , 직장 다닐 때도 공부해라... 환자 죽이기 싫으면..(웁니다..)더 공부해라, 퇴사하고 육아를 하기 시작하니 이번엔 아이가 나에게 공부를 푸시했다. 오랫동안 무언가를 해내야 하는 삶을 살았던 나는 오늘을 치열하고 더 열심히 살 아내 한다는 강박이 생긴 것 같았다. 그래서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시간이 너무 불안했었다. ‘나 지금 이렇게 아무것도 안 해도 괜찮은가? 정말?’ 이란 질문을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던졌다.
그런데 되려 선생님은 이 상태가 괜찮은 상태라 하셨다. 그게 너무나 안심이 되었다. ‘무언가를 해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 자체가 시작이라고 하셨다. 이러다가 어느 날 ‘그래, 하자’라는 생각이 들면 그땐 정말 시작하면 된다고.
그리곤 며칠 뒤 , 예쁜 계산기를 구입하고는 가계부 적기를 시작했고 조금씩 글도 적기 시작했다. 밀렸던 책도 조금씩 읽어내고 있다. 느리지만 찬찬히 내가 나를 알아가는 중인 것 같아 나쁘지 않다.
복용 중인 약 : 에스벤 50mg , 이번에 추가한 약 노르작 캡슐 10m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