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맹수봉 Aug 24. 2022

나는 괜찮은 사람일까, 괜찮아 보이는 사람일까?

뿌리 깊은 우울증 치료 150일


나는 늘 괜찮아 보이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내가 생각했던 괜찮은 사람이란 밝고 긍정적이며 다정하고 타인에게 포용적이고 유쾌한 사람.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스무 살이 되던 해 , 계속해서 다니던 교회의 고등부에서 청년부로 올라갔는데 그 많고 많은 사람들 중에 인기가 많은 언니에게서 반짝반짝 빛이 나던 걸 목격했다. 주변에는 사람들이 늘 북적였고 언니가 가는 곳들은 금세 분위기가 유쾌해졌다. 결국 무언가에 홀리듯 그 언니가 입었던 옷을 따라서 산적이 있었다. 물론 나에게 더럽게 어울리지 않았지만 이렇게라도 하면 나도 괜히 반짝거릴 것 같아서.  여하간 이런 원하는 모습이 있다는 것이 나쁘지는 않지만 결국엔 “괜찮아 보이는 사람"이라는 건 삶의 주최가 ‘나’ 그러니까 맹수봉이 아닌 ‘타인'이었다는 것. 그렇게 타인들에게 잘 보이고 싶은 사람으로 살아왔던 세월들이었다. 아마 미움받고 싶지 않았던 내면의 욕구가 컸던 것 같다. 그래야 버림받지 않고 그래야 욕을 먹지 않을 테니까. 그래야 모진 날들을 살아낼 수 있었을 테니까.


타인을 향해 다정히 웃고 있던 나는 겹겹의 세월을 흘려보냈고, 단단히 지어진 철옹성 같던 나인  알았던 모습은 금이 가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철옹성이 아닌 옹졸하고 얇디얇은 유리로 만들었던 겉모습 안에 잔뜩 웅크린 진짜 내가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 내면 아이는 힘들다며 줄곳 눈물을 흘렸고 그 눈물은 강이 되어 수위가 점점 높아지고 높아져 결국엔 범람하였고 괜찮아 보이고 싶었던 겉모습에 금을 내기 시작한 것 같다. 이미 성인이 되었지만 내면엔 여전히도 어린 내가 울고 있었다.


그러나 성인이 된 나는 그 내면의 어린아이를 돌아봐줄 여력이 없었다. 금이가고 깨져가는 겉모습에 더욱 에너지를 써야 했기에  수많은 밤을 괜찮을 거라고 스스로 다독였다. 왜 이런 작은 일들에조차 힘들어서 휘청거리냐며 나를 자책하고 채찍질했다. 그런 시간들이 흘러 흘러 내 안에 살고 있던 어린 내가 폭발을 했다. 자기를 봐달라며 더욱 울며 발버둥을 쳤다. 불안하고 , 초조하고 , 우울하고 , 부정적이고 , 자존감이 낮은 나. 아직도 어린 시절에 갇혀 있는 내면 아이. 아직 온전히 크지 못한 어린 내가 계속해서 울고 있었다.


내가 나를 보듬을 시간도 없이 내게 주어진 것들을 해치우며 살아왔던 삼십여 년이었다. 친척집과 할머니 집에서 적응을 하라고 하면 했고 , 왕따를 당해도 학교를 가야 한다고 했으니 갔고 , 공부를 하라고 했으니 공부를 열심히 했고 , 대학을 가라고 하니 대학을 갔다. 취직을 해서 열심히 일을 하라고 해서 일을 했고 , 어느 정도 나이가 되어 결혼을 해야 하는 시기가 되었으니 결혼을 했다. 결혼을 하니 아이를 낳았고 그 아이를 길러갔다.


시간이 겹겹으로 지나 떡국을 먹으면서 자연스레 나이가 먹듯 그저 나의 내면 아이도 시간이 흐르면 눈물을 닦고 사춘기를 맞이했다가 어른이 되어 성장하는 줄 알았다. “금 나와라 뚝딱!” 하듯 “성장해라 뚝딱!” 뭐 이쯤으로 생각한 걸까. 어느 날부터였을까, 우울감을 지나 우울증이 찾아왔고 , 그로 인해 신체에 여러 증상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덕분에 이제야 내가 나를 마주한다. 나는 어떤 사람 일까. 사람들이 보는 ‘나’ 말고 진짜 나는 어떤 사람일까. 나는 정말 괜찮은 사람일까.


내 이야기를 가만히 듣던 선생님은 굉장히 핵심적인 이야기라고 하셨다. 웃으시면서 이제 상담은 그만 오셔도 될 것 같다고? ㅋㅋ ‘하산하십시오.’ 이런 느낌인가. 괜찮아 보이려던 모습이 허물어져 우울증이 왔고 이제는 내면에 있는 나에게 관심을 가져가며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 선생님은 그렇다고 예전의 맹수봉 씨가 괜찮지 않은 사람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음 한다고 하셨다. 스스로 그 시기를 살아내려고 노력했던 결과물이고 , 모진 날들을 견뎌내려고  무척이나 애썼으니 얼마나 대견했냐고. 불안했던 마음을 껴안고 괜찮아 보이려고 부단히 노력한 거니까..


 내 모난 부분까지 온전히 다 수용받은 것 같아서 눈물이 왈칵 쏟아질 뻔했다.


말씀을 이어 가셨다. 괜찮은 내가 되는 건 좋지만 그렇다고 너무 바뀔 필요는 없고 지금의 모습도 충분히 좋지만 개선을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게 더 좋을 것 같다고. 급하게 말고 천천히. 급하게 리모델링하면 와르르 무너질 수 있다고.


괜찮아 보이는 나와 괜찮은 나의 차이를 인지했으니 , 이제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할 것 같은데 뭘 해야 할까? 괜찮은 사람이 된다는 건 어떻게 하는 거지? 일단 옷부터 살까? (결국은 기승전 소비 ㅋㅋㅋ) 우울증이 나아지면서 정돈에 열을 올리며 옷장 정리를 하던 내게 신랑이 물었다. “아이들 옷이랑 내 옷은 어울리는 것들로 잘 골라서 오면서 본인 옷은 왜 이래?” ㅋㅋㅋ.. 욕이야 뭐야 흥 ㅋㅋ. 욕 같지만 나름 일리 있는 말이었다. 대부분 나의 옷들은 어울리는 옷보다는 타인이 입었을 때 괜찮아 보이고 나도 저 사람처럼 보였음 하는 갈망이 느껴졌던 옷들을 우선순위로 샀으니 그럴 수밖에. 아이들이랑 신랑 옷은 진짜 어울릴 것 같아서 샀고.


옷도 옷이지만, 이젠 정말 괜찮아 보이는  사람이 아닌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다.


2022년 8월 24일

복용중인 약 : 에스벤서방정 50mg , 폭세틴 캡슐 20mg

매거진의 이전글 과거를 후회하는 우울한 나에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