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재리 Dec 17. 2022

역마살(驛馬煞)

 "그래, 내 인생에 역마살이 끼긴 꼈다니까. 아, 그러니까. 그래서 그랬나 봐 진짜."

 엄마는 전화기 너머 누군가를 향해 제법 유쾌한 듯 말했다. 코웃음까지 쳐가며. 잘못 들으면 내심 자랑스러운 것처럼 들릴 정도였다. 나는 동태같은 눈을 멍하니 뜬 채로 그런 엄마를 바라보다 조용히 뒤를 돌아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아니, 뭐 역마살은 옮기도 하나?


 아주 어렸을 적부터 나는 엄마와 엄마의 역마살과 함께 지겨우리만큼 자주 이사를 다녔다. 경기도에서 충청도로, 충청도에서 강원도로, 다시 경기도로, 또다시 강원도로, 그러다 갑자기 전라도로, 다시 강원도로 한반도 중남부를 발에 땀띠 나도록 옮겨 다녔다. 같은 도, 아니 같은 시 안에서도 수 없이 이사했다. 살아 본 '거처'는 이미 열 손가락을 넘겨 더 이상 세는 걸 포기했을 정도다. 그러다 스무 살이 되어 독립하게 되었을 때 나는 드디어 역마살의 저주로부터 벗어나는구나, 안도하며 서울로 향했다. 드디어 나도 남들처럼 평범하게 정착 생활을 할 수 있겠구나, 기대했다.


 그렇게 귀 빠지고 처음으로 한 곳에서 5년을 살아봤다. 나쁘지 않았다. 거처가 움직이지 않고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다는 느낌. 꽤나 안정적이었다. 그러나 대학을 졸업할 때쯤 역마살은 실실거리면서 내 곁으로 다가왔다. 그때부터 다시 나는 해외로, 또 국내 충청도로, 다시 부산으로, 그리고 강원도로 2년을 채우기 무섭게 이사를 다녔다. 반면 그때부터 엄마는 이제 세상살이는 모두 지루하다는 듯 한 곳에 정착해 살아가기 시작했다. 아 그러니까, 이게 역마살이 옮겨온 게 아니면 뭔데?


 돌이켜 보니 이런 적도 있었다. 대학교 졸업을 앞두고 마음이 어지럽던 시절 거금을 주고 신점이라는 걸 보러 간 적이 있다. 원래 그런 걸 믿지 않는 편이고, 더군다나 돈을 주고 그런 걸 본다는 건 생각해보지도 않았는데 뭐에 홀렸던지 처음 보는 동네에 가서 처음 보는 사람 앞에 앉아 내 진로를 묻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정말 잊지 못할 대답을 들었다.

"너희 가족은, 모-두 떠돌아다니는 일을 해야 잘 풀려."

 이 말이 정말 잊지 못할 대답이 된 것은 신점을 본 뒤로 약 2년 후, 내가 떠돌아다니는 일의 대표 격인 항공사 승무원이 되었다가 3개월 만에 그만뒀을 때였다. 저기, 떠돌아다니는 일을 해야 잘 풀린다면서요?


 다만 나는 계속해서 떠돌아다녔고 어느 순간부터 합리적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나는 '환경이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삶'에 중독된 것이 아닐까? 반대로 생각해보면 이사라는 건 새로운 환경에서, 이전에는 경험해보지 못한 삶을 경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렇게 환경이 달라지면 종종 내 생각과 성향, 가치관이 변화하기도 한다. 사람이란 종종 무엇을 보고, 듣고, 느끼느냐에 따라서 무엇을 생각하느냐가 결정되기도 하니까 말이다.


 해외에 거주하던 기간에 가장 극단적으로 이 같은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이때 기존의 사고방식과 편견 같은 것을 가장 쉽게 깨버릴 수 있었고, 이전엔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삶의 방식에 자주 의문을 가졌으며, 그 결과 더 좋은 방향으로 변화할 수도 있었다. 이렇게 새로운 삶의 방식을 경험하는 데서 오는 어떤 희열 때문에 나는 자꾸만 이렇게 떠돌아다니는 것이 아닐까 싶다. 마치 새로운 분야에 도전을 하고 그 분야에서 점차 성장해가는 것을 확인하면서 쾌감을 느끼는 것처럼 말이다.


 대학교 1학년 시절 들었던 교양수업에서 '독만권서 행만리로(讀萬卷書 行萬里路)'라는 말을 들었던 것이 생각난다. 이는 말 그대로  만권의 독서를 하고 만리의 여행을 하라는 뜻인데, 이 말음 처음들은 그날부터 계속해서 이 말에 대해 생각했다. 우리네 인생이라는 것이 이 세상에서의 하나의 기다린 여행이라고 한다면, 최대한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느끼고, 즐거워하는 것이 내 유일한 의무가 아닐까? 새로운 삶의 방식과 그 속에서의 경험이 쌓일수록 나는 더욱 입체적이고 충만한 사람이 되어간다는 느낌이 든다. 그러니 왜 엄마가 코웃음을 치며 역마살을 운운했는지,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사소하지만, 사소하지 않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