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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리 Feb 14. 2024

한 끗 차이

   차라리 밤을 새우려고 했는데, 그마저도 실패한 사람이 되었다. 채점을 하지 않을 생각이었지만 다른 사람들의 답안을 보다 보니 자연스레 채점을 해버렸고, 확실한 점수 컷이 없이 추측만 가득한 가운데 나 역시 ‘컷 근처’에 있을 거라고만 여기던 상황에서 합격자 발표일이 다가왔다. 늦은 시간 잠자리에 누워 온갖 잡생각의 바다를 헤엄치다 차라리 이럴 거면 영화라도 한편 보고 밤을 새 버리자, 싶었었는데 어느새 잠이 들었던 것이다.


   눈을 뜨니 이미 합격자 발표가 난 이후였고, 사람들은 떨어졌다, 붙었다를 반복적으로 말하고 있었다. 이 점수로 어느 지역에 응시했으면 합격했을 건데 눈치 싸움에 실패했다, 생각보다 점수 컷이 너무 낮아서 놀랐다 또는 높았다 등 많은 얘기가 혼란스럽게 오가는 와중에 내가 응시한 지역의 점수컷을 확인해 보니, 예상보다 훨씬 낮았다.


   ‘솔직히 이 정도면, 붙었겠는데?’

   반쯤 기대를 안고 교육청 사이트에 접속해서 수험 번호와 비밀번호를 입력했다. 조금 마음의 준비를 하고 스크롤을 내려 결과를 확인하려고 했는데 눈을 감거나 화면을 두 손으로 가릴 새도 없이 대뜸 결과가 화면 한가운데 떠 버렸다.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1차 2순위(사립:ㅇㅇ학원(ㅇㅇ고)) 합격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알 수 없어 어안이 벙벙한 채로 앉아 있었다. 이게 그래서 붙었다는 건가 떨어졌다는 건가. 가만히 성적을 살펴보니 1차 1순위 공립학교의 합격 컷보다 0.67점이 낮았다. 0.67점 차이로 1 지망이었던 공립은 붙지 못하고 동시 지원했던 2 지망 사립학교에 합격했다는 것이다.




   “그니까 떨어졌다는 거야?”

   아빠는 그게 도통 무슨 소리냐는 듯 물었다.

   “아니 그니까, 붙긴 붙었는데. 사립학교에서 2차 시험을 봐야 한다고.”

   높지도 낮지도 않은 목소리로 차분하게 말했다. 옆에서 누가 들었다면 떨어졌다는 말을 전하고 있는 사람 같았다.

   “0.67점 차이라고?”

아빠는 기가 차다는 듯이 말했지만, 사립학교는 이동도 거의 없고 고등학생들이라 오히려 좋을 수도 있다고 하는 말에 설득된 듯 사립학교라도 잘해보라며 전화를 끊었다. 엄마의 반응도 비슷했다. 그게 붙은 거냐고 되려 물었다. 2차에 붙을 거라는 기대는 전혀 하지 않는 눈치였다. 여전히 그런 반응에 못내 서운하긴 했지만, 이해가 되지 않는 건 아니었다.


   1 지망 공립에 1차 합격을 했다면 30명 중에 20등 안에만 들어도 합격이다. 하지만 2 지망 사립의 경우 6명이 2차 시험을 보러 가서 1명만 합격하게 된다. 그게 내가 될 수 있을 거라는 보장은 사실 못했다. 게다가 들리는 소문에는 사립학교는 보통 뽑으려는 사람이 내정되어 있거나, 언제 적 얘기인지는 모르겠으나 뒷돈을 요구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했다. 나도 모르게 풀이 죽었다. 모든 의욕이 사라졌다.


   실수 2개만 안 했었도 충분히 1 지망으로 붙을 수 있었을 텐데, 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계속해서 0.67점에 미련이 남았다. 실수만 하지 않았더라면, 그것만 아니었다면. 그러면서도 손으로는 계속해서 사립학교 2차 면접 및 수업 실연 후기를 열심히 찾아봤다. 실제로 공립과 크게 차이 나지 않는 방식으로 진행이 되었고, 처음 가본 학교였지만 합격했다는 후기도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대부분 결국 그 학교에서 일했던 기간제 선생님이 뽑혔다는 후기가 많았다.


   다시 미뤄뒀던 선택지들이 되살아나며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만약 1년을 더 해야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애초에 이런 선택을 했던 과거의 내가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그 선택을 했던 당시로 돌아간다면, 이러한 결과를 알았더라면 이런 선택을 하지 않았을까. 분명 1차 합격은 합격인데 계속 눈물이 났다.




   그러나 서둘러 인정을 해야 했다. 0.67점은 사실 굉장히 큰 차이니까. 인생에서 그 정도 한 끗 차이로 갈리지 않는 건 없으니까. 어차피 목표는 올 해가 아니었으니까. 마음을 가다듬어야 했다. 울고만 있을 시간이 없었다. 사립학교의 경우 공립학교보다 2차 시험을 보는 날짜가 한 달 이상 빨라서 당장 다음 주에 2차를 보러 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면접 때 입어야 하는 옷을 입어보고, 다시 수업 실연 준비를 했다. 학교 정보를 찾아보고, 학교 위치와 학교에 대한 소문 등을 빼곡히 찾기 시작했다.


   내가 가는 그 학교가 어떤 학교인지는 알 수 없다. 이제는 익숙하다, 아무것도 알 수 없다는 것에. 나는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지. 다시 면접 예상 질문과 교과서를 집어 들었다. 지금껏 해왔던 2차 준비를 1주일만 더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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