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순례길을 마치며
가벼워지기를 청원하며 시작한 순례길 위에서 한 달여의 시간을 보내고 그 마침에 섰다.
회사를 그만두고 매일의 분주한 루틴이 사라지고 나자 마치 거대한 물길을 막아놓은 둑이 무너진 것처럼 지나간 시간들의 회한과 아쉬움이 몰려왔다. 단순히 생각에 그치지 않고 한번 떠오른 생각은 또 다른 기억을 끄집어내고 그 기억은 또 다른 생각을 떠올리게 하고... 회한은 대상을 찾아 원망의 화살표를 그리고 있었고 아쉬움은 끝없는 자책으로 나를 향해 좌표를 찍어대고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
내가 하고 싶은 일,
내가 해야 하는 일 사이에서 밸런스를 유지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언제나 해야 하는 일의 크기를 키웠고, 해야 하는 일의 무게에 눌려 정작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언제부턴가 그것을 잊어버리고 말았다.
늘 쉬고 싶다, 쉬고 싶다 입에 달고 살았지만 갑자기 회사를 그만두고 나서 나는 쉬는 방법도 알지 못했다.
출근할 때와 똑같이 떠지는 눈. 수십 년 동안 해온 것 같이 씻고 정리하고 매무새를 단정히 하고 나서 노트북을 켠다. 마감해야 할 일도 없고 머리를 짜아내며 고민할 과제도 없었다. 노트북은 언제나 내 머릿속과 한 몸이었는데 내려줄 명령어가 없으니 노트북도 수행할 일이 없었다.
분명 나는 쉬고 싶은데 예전에는 매일매일 쳐내야 하는 과제들로 지쳐갔다면 이제 내가 해야 할 일들을 찾느라 지치고 있었다. 새로운 것들을 만들어내야 하고 그것을 구현해 내야 하는데, 나에게는 과제가 없었다.
처음 며칠 동안 엑셀을 열어 서식을 만들었다. 온갖 필요한 수식들을 넣고 효율적인 양식으로 아이의 시간관리 파일을 만들고, 입시 준비 타임테이블과 현황표를 만들고... 그렇게 서식 하나가 완성되었을 때 나는 신나 있었다.
중독도 이런 중독이 없었다.
이 동력이 다 떨어져 갈 즈음 9월 순교자 성월을 맞아 서울에 있는 성지를 순례하는 프로그램이 8월 15일부터 시작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에게 과제가 생기는 것이었다. 순식간에 관련 정보들을 취합하고 물론 스케줄표도 만들었다.
모두 24곳의 성지, 미사가 가능한 12곳.
성지마다 미사가 거행되는 요일과 날짜가 다르고 어떤 곳은 한 달에 한 번밖에 미사가 없기 때문에 겹치지 않게 동선을 고려하여 계획부터 수립했다. 이제 하루하루 내가 수행해야 할 과제가 생긴 것이다.
순례의 기록을 어떻게 남길 것인가 누구도 시키지 않은 고민과 함께 순례의 첫발을 내디뎠다.
한여름 뜨거운 폭염 속에서 출발한 나의 순례는 이렇게 무거운 생각들을 벗어버리고자 출발했지만 수행해내야만 하는 과제를 만들어서 나를 또다시 채근하고 있었다.
사실 회사를 그만두면 실컷 놀고 실컷 하고 싶었던 일들을 하며 쉬게 될 줄 알았다. 그런데 나에게 생긴 많은 자유로운 시간들은 나를 자유롭게 하지 못했고 뭐든 해야 하는데 하지 못하고 있는 잉여가 된 불안감만 키우고 있었다.
바쁘게 시간 맞춰서 뛰어나가고 폭염 속을 걸으며 고민하고 생각하고, 사진을 찍고 계획표를 하나하나 지워나가며 나는 생기를 찾아가고 있었다.
정상은 아니었다.
애초에 수립한 계획을 3분의 1쯤 지나왔을 때 생각지도 않게 코로나 확진을 받게 되었다. 지난 3월 회사를 초토화시키며 휩쓸고 지나갈 때에도 나는 굳건히 버티었고 온 가족이 확진이 되었어도 나는 꿋꿋이 이겨냈는데, 회사를 그만두자마자 잔여백신을 찾아서 4차 접종까지 마쳤는데 혼자 걷는 순례길에 코로나 확진이라니.
노고산 성지에서 한 달에 한번 거행되는 미사에 참례하고 성체현시까지 마치고 돌아와 코로나 환자가 되었다. 일주일 동안의 격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 국가가 강제로 부여한 휴식이었다.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됐다.
무언가를 생산하지 않아도 되고, 일을 하지 않아도 되고, 경제활동을 해야 한다는 고민조차 멈추어도 되는 시간. 노트북을 켜지 않아도 되고 심지어 가족들을 돌보지 않아도 되는 완벽한 나만의 휴식이었다.
비로소 나는 쉴 수 있었다.
증세가 심해서 고생은 좀 했지만 이렇게 온전히 나를 회복시키는 휴식은 처음이었다.
서울순례길을 걸으며 코로나 확진 전후의 시간은 사뭇 달랐다.
강제로 주어진 휴식은 날카롭고 예민한 나의 고민과 불안들을 떼어서 바라볼 수 있게 했고 조금씩 생각의 무게가 가벼워지고 있었다. 무엇보다 나에게 온 큰 변화를 조금씩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기록을 남기기 위해 시작한 글쓰기조차 이제야 즐기게 되었다.
걷는 길이 진정 머무는 길이 되었다.
9월 25일 모든 순례 여정을 마치고 서소문 밖 네거리 순교성지에서 축복장을 받고 닫힘 미사에 참석했다. 이 땅의 순교자들과 함께 걸으며 나에게 찾아온 평안과 변화가 스스로 대견하고 감사했다. 동행해주겠다는 가족들을 남겨두고 마지막까지 혼자 가야 하는 길을 마치고 싶었다.
일찌감치 도착해서 축복장을 받고 성전에 들어가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오고 가는 사람들의 소란 속에서 갑자기 고요함을 깨는 소리가 울린다.
"짠짜라 짠짜 짠짠짠~"
내 옆자리에서 울리는 핸드폰 벨소리였다. 그 소리는 두어 번을 더 울리고 더듬더듬 느린 손 끝에서 멈췄다.
'아, 진동으로 바꿔야 하는데...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여 있는데 미사 중에 핸드폰 끄는 거는 예의 아니냐고!'
트로트 멜로디의 벨소리는 또다시 울려 퍼졌고 나는 고민하기 시작했다.
미사 전에 진동으로 바꾸라고 이야기를 해주어야 하나, 미사 중에 저 소리가 울리면 어쩌나, 단호하게 이야기하면 기분 나빠할까, 웃으며 상냥하게 말하면 더 뭐라 하지 않을까... 나의 예민이 폭발하기 시작했고 이때부터 고요는 깨졌다.
아, 저 핸드폰을 어떻게 할 것인가...
나는 지금 이 소중한 시간에 뭘 하고 있는 거지...
눈은 감았지만 시끄러운 마음속에서 기도를 하자 마음먹었다. 부디 미사 중에 저분에게 전화가 오지 않게 해 달라고. 진심으로 간절하게 여기 모인 모든 분들의 순례의 기도를 위하여 미사 시간 동안 저분의 핸드폰이 멈추게 해달라고 나는 기도하고 있었다.
미사는 시작되었고 정말 핸드폰은 울리지 않았다.
두 시간 가까이 이어진 순례의 마지막 미사가 끝나고 손희승 주교님이 마무리 말씀을 시작하셨다.
"세상에서 가장 많이 참는 분은 누구일까요. 바로 예수님입니다.
말 안듣고 잘못 가는 우리를 언제나 참아주고 계십니다.
미사 전 나를 시끄럽게 했던 것, 순례를 시작하기 전 나를 무겁게 했던 것, 내가 나를 이해하지 못했던 것.
그 모든 것의 답이 닫힘 미사 마지막에 들려왔다.
우리 서로 좀 참아줍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