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소문 성지
서울역에서 염천교를 지나 서소문 고가도로 아래 서소문 역사공원이 있다. 이곳은 천주교 박해시기에 많은 평신도들이 처형되었던 순교지이고 그 위에 순교 현양탑이 세워져 순교자들을 기리고 있다.
지하에는 서소문 성지 역사박물관이 조성되어 한국 천주교의 출발부터 박해사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 천주교 역사를 상설 전시하고 성 정하상 기념 경당이 있으며 다양한 예술작품을 전시하는 복합 문화 공간으로도 이용되고 있는 곳이다. 특히 18세기 후반 서학 사상의 도입으로 유교사회와 충돌했던 역사의 흐름을 천주교 역사와 함께 고서적과 고문서 자료들을 전시하고 있다.
조선시대의 서소문은 남대문과 서대문 사이에 있던 문이었고 이 서소문 밖 네거리는 전국 각지에서 올라오는 물류가 한강변의 나루터를 거쳐 도성으로 반입되는 통로여서 상업의 중심지였고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번화한 외교와 상업의 중심지였다.
그 위치가 도성 내의 형조, 의금부와 가까워서 많은 사람들이 모이고 오고 가는 이곳에서 죄인들을 처형함으로써 죄에 대한 두려움을 알리는 장소이기도 했다. 보통 처형장은 피를 씻기 위해 물가에 자리를 잡는 게 보통인데 이곳 서소문 밖은 한강의 지류인 만초천이 흐르고 있어서 조선시대의 공식적인 처형장이 되었다. 정조가 승하한 후 박해가 심해지면서 성리학에 기반한 사회질서를 해친다는 이유로 천주교인을 주로 처형했던 곳이다.
서소문 밖 네거리에서 천주교 신자를 처형하기 시작한 것은 1801년부터였다. 주로 서울에 거주하거나 서울에 연고가 있는 신자들이 이곳에서 처형되었고 자료를 통해 확인된 순교자는 모두 98명에 달하고 있다.
한국교회 설립 200주년이었던 1984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여의도 광장에서 선포한 103위 성인 가운데 서소문 밖 네거리에서 순교한 성인이 44분 포함되어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세례자인 이승훈 베드로, 명례방 회장이었던 정약종 아우구스티노, 최초의 여회장 강완숙 골룸바, 정약용의 조카 정하상 바오로와 그의 누이 정정혜 엘리사벳, 김대건 신부의 아버지 김제준 이냐시오 등 많은 성인이 이곳 서소문 밖에서 순교하였다. 병인박해에 수많은 피의 탄압을 주도했던 흥선대원군의 승정원 승지였던 남종상 세례자 요한도 이곳에서 순교하였다.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은 광화문에서 124위의 복자를 선포하게 되는데 이곳 서소문에서 처형된 순교자 27분이 포함되어 있으며 많은 순교자들의 형장이었던 만큼 단일 장소에서 가장 많은 성인과 복자를 탄생시킨 곳이기도 하다.
내가 방문했던 여름 끝자락의 서울은 호우경보가 연이었던 때였다. 굵은 빗속에 찾은 서소문 공원은 지나는 사람 하나 없이 한적하고 모든 것이 짙게 가라앉아 있었다. 철도가 지나가고 서소문 고가도로가 지나가는 이곳은 접근이 쉽지 않아 도심 속의 섬처럼 고립된 위치였는데 1984년 한국 천주교 200주년 성인 선포식에 맞춰 김수환 추기경에 의해 성지화 사업이 추진되었고 같은 해 12월 이곳에 최초의 순교자 현양탑이 세워졌다. 1997년 공원 리모델링 공사로 인해 이 현양탑은 약현성당 기도 동산으로 옮겨졌고 작가와 협의하여 주위 경관과 조화롭게 상단 부분을 절단하여 지금까지 자리하고 있다.
이후 1999년 새로운 현양탑이 다시 세워지고 2019년 '서소문 밖 역사유적지 관광자원화 사업'의 일환으로 지금의 복합 문화공간 '서소문 성지 역사박물관'이 개관하게 되었다.
수풀이 가득한 공원 산책로를 따라 들어가면 지상과 지하가 하늘이 열린 채 개방된 통로로 이어져 역사관 입구로 연결되고, 또 다른 방향에서는 터널처럼 지상으로 연결되는 길이 있어서 마치 만초천에서 물이 흐르듯 지상의 오늘과 지하의 순교 시대가 열린 하늘 아래에서 통공 하는 것 같았다.
천주교 신자라면 흔히 '성당스러움'으로 표현되는 특유의 느낌을 가지고 있다. 짙붉은 벽돌과 대리석, 나무마루가 만드는 묵직한 분위기, 군더더기 없이 차분하고 단정한 꾸밈. 차를 타고 지나가는 길에서도 창 밖의 건물을 보면서 "저건 성당인가 봐!" 하며 한눈에 읽어내는 성당스러움이 존재한다. 내 집을 알아보는 익숙한 평안함.
서소문 성지의 역사박물관 입구와 외관도 붉은 벽돌로 동선을 이끌고 있다. 지하 1층과 지하 2층은 검은 대리석으로 장엄하게 꾸며져 있고 주요 전시장이 위치한 지하 3층은 밝은 유백색 대리석으로 꾸며져 있다. 모든 공간은 거의 개방형으로 이루어져 있고 고급 호텔의 로비처럼 여유로운 공간, 면과 조명 빛으로 공간을 구분하는 구조가 멋스러우면서도 뭔가 새로운 낯섦이 있는 그런 곳이었다.
그런데 이 낯섦은 무엇이지...
내가 걸었던 이 순례길을 마치고 나서 그다음 바라보아야 하는 곳, 내가 지금 걷고 있는 이유와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는 것 같았다. 200년 전 피 흘리며 목숨을 던져 그분들이 이루었던 것은 이제 내가 일어서서 이루어야 할 것을 가리키고 있었다.
더 이상 박해도 없이 자유로운 지금, 나를 두렵게 하고 내 마음을 흐리게 하며 내가 포기하도록 회유하고 협박하는 2천 년대의 복잡한 고통들로부터 태초에 창조된 나를 잃지 않고 지켜가는 것. 그것이 이제 내가 해야 할 신앙고백이 아닐까 싶다.
세련되고 멋스럽지만 손님이 된 것 같은 이 낯섦은 나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뒤돌아보지 말고 내일로, 미래로 나아가 나만의 순교 역사를 채워가라는 선조들의 당부처럼 오래도록 마음 속에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