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로 끝자락에 위치한 광희문 성지를 찾은 날 하늘은 요란했다. 뛰어갈 엄두가 나지 않을 만큼 장대비가 쏟아지다가 편의점에서 우산을 고르고 있는 사이 밖에는 해가 쨍쨍 비추고 있었다. 그래도 가는 길 돌아오는 길 모두 비를 피해 다니며 짙은 구름과 맑은 하늘을 모두 눈에 담을 수 있었다.
광희문은 1396년 한양 도성을 세울 때 세워진 사소문(四小門) 중 하나이다. 청계천 물이 한강으로 흘러나가는 수문(水門)과 가까워서 '수구문'이라고 부르기도 했고 또 도성 내에서 죽은 백성들의 시신이 성 밖으로 나가는 문이라고 해서 '시구문'이라고도 불렀다.
1801년 신유박해 이후 천주교 신자들은 도성 내에 있던 좌우 포도청과 의금부, 전옥 등에서 고문받고 매를 맞아 죽거나 목이 졸려 죽거나 굶주림과 병으로 옥사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렇게 순교한 신자들의 시신은 광희문을 통해 성 밖으로 버려졌다.
자료에 의하면 794분의 순교자가 이곳에서 버려지거나 묻혔다고 한다.(서종태, 광희문 성지의 실체 규명과 순교자 영성) 이 가운데 54분은 신유박해와 병오박해(1801년~1846년)를 거치면서, 그 외 740분은 병인박해와 기묘박해(1866년~1879년) 시기에 포도청과 형조 전옥에서 순교하였다. 이곳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순교자들이 알려진 단일 성지이고 고통의 땅과 천상의 하늘이 만나는 카타콤바였다.
도성 안에서 성 밖으로 순교자 시신을 내다 버리는 광희문 바로 맞은편에 광희문 순교자 현양관이 서있다. 마치 순교자의 시신을 받아 안는 것처럼 성 밖에서 광희문을 바라보고 기념관이 위치한다.
현양관에는 전시관과 성전이 마련되어 있는데 10명 정도 앉을 수 있는 작은 성전에서 기도하고 미사에 참례하며 그 안에 한참을 머물렀다.
미사를 마치고 전시관을 둘러보고 1층으로 내려오니 창 밖으로 억수 같은 소나기가 쏟아지고 있었다. 도저히 문을 열고 나설 비가 아니었기에 창 밖으로 광희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정면으로 바라보이는 성벽 끝에는 광희문이 활짝 열려있다. 시커먼 먹구름과 환한 햇살은 동시에 광희문을 비추고 있었다. 마치 시구문을 열고 나며 내던져진 안타까운 죽음과 가여운 영혼을 위로하듯 두꺼운 먹구름을 뚫고도 강한 빛줄기는 땅 위에 내렸고 그 빛 속으로 쏟아지는 굵은 빗줄기는 햇살에 반사되어 보석처럼 빛났다.
천주교 박해시기 이후에도 1900년대 초까지 성 안의 시신들은 이곳을 통해 성 밖으로 버려졌고 1907년 일본군과 싸우다 죽은 대한제국 군인들의 시신을 광희문 밖에 내다 버려서 가족들이 내 아들, 내 남편의 시신을 찾고 있는 사진이 이곳 전시관에 자료로 남아있다.
배교하라는 협박과 고문 속에서 죽어간 수많은 순교자들. 죽음으로 자유로워진 그들은 이곳 하늘과 땅의 경계에서 기쁘게 다시 만나 함께 기도하지 않았을까. 남겨진 가족들을 위해, 죽음으로 내몬 탄압자들을 위해. 삶과 죽음의 판타지가 펼쳐지는 바로 그 정면에 광희문 순교자 현양관이 서있다.
도성 안은 지상의 세계였고 성 밖은 영혼의 세계였는지. 땅과 하늘의 경계에서 가족들이 흘린 통곡의 눈물은 위로의 노래가 되고 자유로운 영혼이 되어 저 빛줄기를 따라 하늘로 올라가지 않았을까 싶다. 저기 어딘가에 어머니 이성례 마리아의 시신을 찾아 헤매는 15살 소년 최희정 야고보의 황망한 모습이 보이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