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우리는 다 비엽(飛葉)이었을지도 몰라.

bgm : 혁오 - paul

by 민서

어느 날, 제보가 들어왔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살아가고 있다는. 도저히 억울해서 이대로 더는 못 살겠단다. 글쎄 사람들이 자신을 보고 자꾸 외롭고 가엾게 본다는 것이다. 가만 들어보니, 그렇긴 했다. 떨어질 락(낙), 잎 엽. 이름 그 어디에도 외롭고 쓸쓸하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 ‘가을’하면 낙엽. ‘낙엽’하면 외로움, 쓸쓸함, 공허함 등등. 왜 그런 감정들이 느껴지는 걸까. 가을은 왜 고독의 계절이 되었을까. 낙엽. 그저 떨어지는 이파리뿐이지 않은가. 생기를 잃고 나무에서 떨어져서? 그는 계속해서 억울함을 토로했다.


“아니 붙어있을 때는 이쁘다고 보러 오더니만, 떨어지기만 하면 지저분하다고. 어떻게 우리를 다 쓸어버릴 수가 있어? 그리고 말이야. 어? 가까운 친척, 걔 누구야. 그래 겨울. 겨울에 와르르 떨어지는 첫눈을 보면 첫사랑을 떠올리면서, 왜 가을에 떨어지는 우리를 보고는 옆구리가 시리다는 거야? 기가 막혀서 정말. 옆구리가 시리긴 뭐가 시려. 시리긴 추운 겨울에 더 시리지. 그놈의 옆구리는 왜 가을에 시린 거야? 내가 진짜 알 수가 없다니까?”


나는 그를 토닥이며 진정시켰다. 단풍국에서는 이미 이에 대해 고소를 준비 중이란다. 그는 한숨을 돌리고 말을 이어갔다. 일단, ‘낙엽’이라는 이름부터가 문제라고 했다. 자신들은 사실 나무에서 ‘떨어지는 게’ 아니라고. 더 이상 양분을 받지 못하는 거라지만, 사실상 그들은 나무를 배려해주고 있었다고 한다. 서로 돕고, 돕는 그런 관계라고 말했다.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인가. 멀뚱멀뚱한 표정을 짓자. 그는 답답한 듯 한숨을 내쉬며,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그리고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비밀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사실 있잖아. 우리는 말이야. 우리는, 멋진 비행을 준비 중이야.’


비행? 갑자기 비행이 웬 말인가. 당최 알 수가 없는 말들이었다. 멋진 비행을 하려면 다이어트가 필요하다며, 몸을 가볍게 만들 필요가 있다고 했다. 자신이 물만 먹어도 살찌는 체질이라나 뭐라나. 물을 마시면 다이어트가 안 된다고, 나무에게 양분도 안 받겠다 이야기도 끝냈단다. 오랫동안 하늘에서 날기 위해선 빠짝 말라야 한다고. 빠짝 마른 비행사들만이 오랫동안, 그리고 더 멀리 비행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참을 설명하던 그는 자신이 하는 말에 스스로 울컥했는지, 지금까지 자신이 살아온 삶에 대해 털어놓기 시작했다.


어릴 때부터 다 클 때까지, 포동포동 살을 찌울 수 있는 건 나무 덕분이라고 했다. 나무에게는 늘 고맙지만, 그들은 자유. 자유를 원했다. 매일 밤이면 밤마다 저 창공을 향해 자유롭게 날아가는 꿈을 꾸곤 했다고 한다. 그러나, 현실은 이리저리 치어도 결국 같은 자리였다. 항상 자기는 묶여 살아가는 삶이었다고, 그곳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하늘을 날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그렇게 모두 열심히 태닝도 하고 다이어트도 하면서 살을 빼는 거라고 했다.


어우. 이런 이야기를 내가 들어도 되는 건가. 나는 그의 충격 고백에 까무러치게 놀라버렸다. 생각해 보니, 그들이 비행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는 것 같다. 그때가 언제였더라. 코끝이 살짝 시린, 가을의 어귀를 지날 때쯤이었다. 멀리서 작고 얇은 이파리 하나가 날카롭고 거친 바람에 꽤 오랜 시간 한참을 비행하더니, 조용히 착륙했다. 비행. 그래. 그들은 ‘비행’을 하고 있었다. 추락하고 있는 게 아니었다.


시간이 지나면 계절이 바뀌듯, 행복한 순간이 찾아오면 절망스러운 순간도 찾아오기 마련이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 봄이 오듯. 절망한 순간 뒤에 행복한 순간이 바로 찾아온다면, 너무 좋겠지만. 살아보면 안다. 절망 뒤에 절망이 찾아올 때가 더 많다는 것을. 그러나, 바짝바짝 생기를 잃어가는 것만 같은 이 삶이. 금세 바스락하고 부서질 것만 같은 이 마음이. 저 아름다운 창공을 향해 비행을 준비하고 있던 것은 아닐까. 그러니. 우리는 추락하는 것이 아닐 게다. 언제 어디로 어떻게 떨어질지 모르지만, 그 찰나의 순간. 반짝이는 그들처럼 하늘을 향해 날아갈 준비 중인 것이다. 그러니, 어쩌면 우리는 모두 다 비엽이었을지도 모른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