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 다섯 - 비둘기
지하철역이었다. 7분이 채 남지 않은 수인분당선 열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왼쪽에서 비둘기 두 마리가 뒤뚱뒤뚱 걸어왔다. 1M가 되지 않는 거리였기에, 나는 쿵쾅거리는 심장을 주체하지 못했다. 그들이 내게 조금씩 가까워지려고 할 때, 나는 재빨리 두 발을 바닥에 콩 찍으며 나름 위협을 해댔다. 나의 발길에 둘기는 멈칫하며 오른쪽으로 걸어 나갔다. 왼쪽에는 사람이 걸어오고 있었고, 앞에는 내가 앉아있었으며, 뒤에는 지하철 선로가 있었기에 오른쪽 밖에는 갈 곳이 없었을 테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엄청난 덩치의 아저씨가 오른쪽에서 빠른 걸음으로 걸어왔다. 둘기씨는 눈치를 쓱 보더니, 내가 겁먹은 것을 눈치챘는지 내 머리 위로 후다닥 날아갔다. X발. 어이쿠. 아무튼 그랬다.
둘기시러병이 있는 내게 그날은 생지옥이었다. 혹시 비둘기가 날개를 활짝 펴고 정면을 향해 날아오는 장면을 본 적이 있는가? 아니 애초에 비둘기의 정면 얼굴을 본 적이 있는가? 나는 보고야 말았다. 왜 항상 이런 일은 내게만 생기는지. 심장은 주체할 수 없이 더 빠른 속도로 뛰었다. 둘기를 피해 숙인 머리가 부끄러워 차마 고개를 들 수가 없었기에, 나는 연신 목이 아픈 척을 하며 일어섰다. 애써 눈물을 흘리지 않은 것이 대견스럽다고 생각하며 수인분당선 열차에 올랐다.
휴. 사실 이 정도로 병이 심했던 건 아니다. 요즘에 자꾸 겁대가리를 상실한 둘기들이 대거 등장하면서, 내 심장이 더 쪼그라들게 되었다. 그 일이 있고 나서 둘기를 욕하기 바빴는데, 생각할수록 좀 대단한 녀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왼쪽, 오른쪽, 왼쪽, 앞쪽, 뒤쪽이 다 막혔는데 위로 올라갈 생각을 하다니. 원래 날 수 있는 새인데, 날아오르는 모습을 요즘 뜸하게 봐서 놀랍게 느껴졌을 수도 있긴 하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내 눈치를 봤던 그 둘기씨의 표정이 떠올랐고, 자신이 찾은 출구를 향해 날아오르는 모습이 꽤 대견하게 느껴졌다. 이런, 결국 내가 정신이 나간 건가? 생각은 생각의 꼬리를 물었고, 마침내 그런 생각이 들었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다고 하지 않는가. 둘기씨처럼 나는 놈이 ‘나’ 일 수도 있는데, 왜 달릴 생각만 했을까. 양옆 앞뒤가 아니라, 위아래도 있는데 말이다.
그럴 때가 있다. 바쁘게 살다가, 우연히 하늘을 봤을 때. 우연히 본 하늘은 주머니에 있는 핸드폰을 꺼내 들 만큼 예쁘다. 웃기는 일이다. 하늘은 매일 열려 있는데, 왜 매일 하늘을 보지 못했을까. 우연히 하늘을 보고는, 나는 왜 행복했을까. 앞만 보고 달리느라, 위를 올려볼 새가 없었기 때문이겠지. 앞만 보고 달리는 게 나쁜 건 아니다. 그렇게 열심히 달려서 얻은 것도 있기에. 앞만 보고 달리면, 꽤 일찍 도착한다. 때로는 그게 좋을 때가 있다. 근데 방향을 잃는 순간 주저앉는다. 그게 단점이다. 앞만 보고 달리는 사람은 앞밖에 볼 줄 모른다. 뒤도, 양옆도, 위아래도 볼 줄을 모른다. 내가 그랬다.
달리기는 빠른 성공을 가져왔지만, 나로 인해 상처받은 이들의 마음을 보듬어주진 못했다. 둘기씨처럼 왼쪽으로도 갔다가 사람이 오면, 앞쪽으로도 가보고. 앞쪽에 가서 쿵! 하는 시련이 오면 오른쪽으로도 가보고. 오른쪽에서 사람이 오면 눈치 좀 보다가 하늘로 슝! 하고 올라도 가보고. 그랬어야 하는데. 난 그러지 못했다. 그래서 둘기씨가 좀 대견했다. 그 짧은 사이에 얼마나 다양한 시도를 했는가. 새 대가리도 그렇게 생각하고 움직이는데, 나는 인간 대가리인데 그 정도도 못 하다니.
어라, 이건 좀 기분이 나쁜데. 내가 새 대가리보다도 못하다는 건가. 안 되겠다, 나도 날아오르는 연습을 좀 해야겠다. 저 둘기씨보다 멀리 날 수 있는 인간이 되어야겠다. 일단 이런 생각을 하게 해 준, 둘기씨한테 고맙다는 인사를 남겨야겠다.
고마워요, 둘기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