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 다섯 - Youth
“넌 너무 쉽게 해, 넌 원래 잘해”
칭찬이다. 나는 이걸 칭찬이라고 입력한다. 누구나 무언가를 해낼 때는 그에 따른 분명한 과정이 있다. 과정 없는 결과는 없고, 결과는 과정 없이 도출되지 않는다. 물론, 태생적으로 타고난 기질이라는 게 있긴 하지만, 난 그런 단어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태생적으로 잘하는 건, 어떻게 더 맛있게 먹을지, 어떻게 더 재밌게 뒹굴뒹굴할지를 궁리하는 능력 정도? 내가 이룬 것 중, 무엇 하나 쉽게 얻은 게 없었다. 남들은 전날 벼락치기를 해서 시험을 잘 봤다는데, 벼락치기? 살다가 진짜 벼락을 맞는 한이 있어도, 벼락치기를 해서 시험을 잘 본다? 내 스톤해드로는 도저히 할 수가 없는 일이었다. 어릴 때, 별명이 금붕어였던 나는 뭐든 금방 까먹고 오래 기억하지 못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돌아보면 까먹고, 돌아보면 잊어버렸다. 금붕어도 3초는 기억하는데. 이런, 나는 문제가 심각했다. 그래서 나는 항상 남들보다 먼저 공부를 시작했다. 우등생인 게 아니라, 그렇게라도 해야 따라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기억력보다 더 문제인 건, 집중력이었다. 내 스톤해드는 자꾸만 새로운 걸 찾으려는 습성이 있었다. 한 번은 오기가 생겨서 집중력이 얼마나 가는지 시간을 재봤다. 하하. (아직 아무에게도 말한 적이 없다) 말 안 해줄 거다. 아무튼 가히 충격적인 집중력을 가진 내 스톤해드는 다루기가 영 쉽지 않은 친구였다. 그래서, 나는 일단 오래 앉아있었다. 다른 사람이 3시간 공부해서 끝낼 일을 난 6시간은 앉아있어야 끝낼 수 있었다. 수험생 시절에는 ‘자더라도 앉아서 자자’라는 마음으로 하루에 13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앉아있었다. 좋은 점수는 얻었지만, 나는 척추 협착증이라는 불청객도 함께 얻었다. 앉아있으면 발끝까지 다리가 저렸다. 어느 날, 시험을 보고 난 뒤 일어나려는 순간, 내 다리에 감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다리를 한참 주무른 뒤에 간신히 일어났다. 앉아있는 게 되지 않자, 나는 서서 공부하기 시작했다. 서서 공부할 때 좋을 만한 게, 빨래 건조대만 한 것이 없다. 기똥찬 녀석이다. 그렇게 공부했다. 그렇게 해도, 아주 간신히 평균을 넘겼다.
그렇다. 난 뭐 하나 쉽게 해내는 게 없는 사람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익숙한 것이 좋아서 새로운 것이 두렵다. 모르는 분야나 공간을 경험하게 될 때, 설렘보다는 불안함이 더 몰려온다. 아는 게 더 많으면, 불안이 급습해 올 일이 없겠지만. 젠장, 난 스톤해드다. 사회는 삭막하고 어디로 가든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더 많은 참혹한 현장 속에, 난 그저 훅! 하고 던져졌을 뿐이다. 그래서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내가 가장 먼저 고안해 낸 방법은 ‘칼같이 살자!’였다. 아주 그냥 칼같이 미리 준비하고, 착오 없이, 실수 없이, 혹시 모르니 등등! 어떤 미래가 다가올지도 모르는데, 일단 대비했다. 계획적이고 완벽주의적인 성격으로 점점 변해갔다. 한 해 한 해, 사회생활의 영역은 점점 넓혀졌고 나는 더 차가워졌다. 나의 첫인상을 마녀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나는 더 꽁꽁 얼었다. 그때의 나를 처음 만난 사람들은 날 능력 있는 사람으로 봤다. 일도 잘하고, 공부도 잘하고, 못하는 게 없는 그런 사람으로. 그렇게 변하고 나니, 내 예전 모습이 구려 보였다. 분명 누군가는 어쩔 줄 몰라 쩔쩔매는 내 꼴을 우습다고 생각하겠지? 그때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내가 어떤 노력을 통해 현재의 모습을 이루게 되었는지 알려주기가 싫어졌다. 아무도 내 노력을 몰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냥 원래 잘하는 애로 날 생각해 주는 게 칭찬처럼 들렸다. 마치 다람쥐가 먹이를 받아먹듯이, 누군가 던져주는 말들 차곡차곡 모아 입안으로 삼켰다.
모든 게 완벽하다고 생각했는데, 겁도 없이 완벽을 논한 탓일까. 불행은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미리 준비할 수 있는 미래는 없었다. 언젠가 나의 부족함이 드러나는 날이 찾아오게 된다. 부족함을 숨기고 완벽함만 내비쳤던 내게, 있는 그대로 보이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나를 모르는 사람들은 하나 같이 나를 판단해 댔고, 그들의 기준에 맞춰 나를 분류했다. 날 걱정한다고 한 말들이 쌓이고 쌓여 울렁이는 물들을 가둬놓는 ‘부담’을 만들었다.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면 어떡하지, 난 그렇게 쉽게 해낼 수 있는 사람이 아닌데. 난 사실 진짜 힘든 사람인데. 뭐 하나 쉽게 하는 게 없는데. 남들에게 내비친 높은 기준치에 스스로 깎아내리며 곤두박질치고 있었다. 어느 날은 부담 속에 가둬져 있던 물들이 팡! 터지면서 엉엉 울었다. 한참을 울고 나서 생각했다. 나 뭐 하냐. 나를 괴롭히는 사람들을 그렇게 욕했는데, 결국 나를 제일 힘들게 한 건 바로 ‘나’였다. 차곡차곡 모은 말들을 게워냈다. 그리고 골라냈다. 내 모습을 판단하는 사람과 내 모습을 이해해 주는 사람으로. 다른 사람한테 별 볼 일 없이 보이는 게 뭐 대수라고. 칭찬인지 아닌지도 모른 채 왜 그리 꿀떡꿀떡 삼켰는지. 이제 앞으로 내 먹이는 내가 모을 거다. 내 입맛대로. 그러니, 더는 내게 먹이를 주지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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