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양민석 Oct 10. 2023

돌멩이 인생

나는 돌멩이, 이리 치이고 저리 치여도(MASYTA - 돌멩이 中)


죽기를 각오한 적이 있었던가? 


 2014년의 겨울을 기억한다. 서울에 몇 남지 않은, 스크린도어가 없는 어느 지하철역의 플랫폼을 기억한다. 차디찬 나무 의자에 앉아 철로 위로 뛰어들 순간을 고민하며 보낸 시간을 기억한다.

 지하철이 들어오는 순간순간 서 있다가 앉았다가 수십 번을 고민했다. 그렇게 네 시간을 보냈다. 한겨울 날씨가 무색하게도 죽음을 감지한 육신은 연신 땀을 쏟아냈다. 축 처지고 젖은 나는 결국 막차가 지나갔을 때에도 생을 포기하지 못했다.


 막차 시간이 지났다며 귀찮은 듯 어서 나가라는 역무원의 목소리를 듣고 집으로 걸어가는 일 킬로미터 남짓한 길에서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삶의 목적도 삶의 이유도 없었던 난 그저 걸음을 내디딜 수밖에 없었다. 매서운 바람이 땀에 젖은 몸을 스쳐 지나가도 추위에 신음할 수 없었다. 두려움 앞에 무너졌다는 패배감에 소리칠 수도 없었다. 이 영겁의 삶이 계속된다는 소름 끼치는 사실에 눈물 흘릴 수도 없었다.


 주머니를 뒤지고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었다. 불을 붙이고 숨을 내뱉었다. 연기에 입김까지 더해져 커다란 구름을 만들었다. 미련 같이 느껴졌다. 별 볼 일 없는 생에 미련이 그 한숨같이 커다랗게 보였다.


 생에 대한 미련은 결국 내일의 해를 보게 만들었다. 이튿날 매트리스에서 눈을 떴을 때 느껴지는 패배감은 다시는 꺼내고 싶지 않은 비참함을 선사했다.


 무엇이 두려운가. 2014년의 작은 나는 무엇이 두려웠을까. 스스로 끊어내는 삶은 죄이기에 내세에는 지옥에 갈 거라는 파렴치한 믿음이 두려웠을까.  슬퍼할 어머니의 눈물이 두려웠을까. 철로에 깔려 흔적조차 사라질 나의 육신에 대한 두려움이었을까.


 미련이었다. 아주 얇은 실과 같은 미련이었다. 그것이 나의 삶을 놓지 않게 한 것이다.


 결국 나는 살아간다. 나의 삶은 이어진다. 비바람이 나의 짓무른 상처를 적셔도 살아낸다. 2014년의 겨울을 기억하기에 살아낸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돌멩이 같은 삶처럼 구르고 굴러서 나아간다. 굴러가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되고, 흙먼지를 뒤집어써도 나는 계속해서 버틴다. 


 나는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는 생을 살아간다. 2014년의 겨울, 이루지 못한 계획에 대한 후회는 없다. 덕분에 나는 오늘을 얻어냈다.


 그렇게 좋은 날 올 그날을 기대하며 나아간다, 나에게 그날이 다가올 테니까.




이전 16화 헛되고 헛되고 헛되도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