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민승 Aug 21. 2017

삼성과 실리콘밸리의 디자인 문화

만나는 사람마다 같은 질문을 해온다. 


삼성과 실리콘밸리 회사들의 디자인 문화는 어떻게 다를까? 

나의 캐리어를 들은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이다. 삼성은 미국에서도 매우 잘 알려진 회사이기 때문에 만나는 한국 사람, 미국 사람 모두 같은 질문을 해온다. 그들의 기대? 와는 다르게 좋고 나쁘고를 떠나 둘은 다르다 라고 이야기를 해준다. 


첫 번째로 다르다고 꼽을 수 있는 것은 디자이너와 엔지니어의 관계이다. 삼성에서는 서로의 책임 소재로 언제나 긴장 관계였다. 회의실에 들어갈 때면 입구부터 눈치 싸움이 대단했다. 공격자와 수비자가 명확 하기도, 프로젝트 진행상황에 따라 그것이 뒤엉키기도 하였다. 서로 간 벽은 꽤나 두터웠다. 아이러니하게도 실리콘밸리에 와서 가장 친해진 친구들은 모두 엔지니어들이다. 디자이너와 엔지니어는 보통 바로 옆자리에 앉아서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다. 서로 친구가 되기 좋은 환경이다. 디자인만큼, 엔지니어링도 개인의 역량과 더불어 주변 환경이 결과물을 많이 바꾼다. 디자이너와 엔지니어가 좋은 호흡을 보일 때 탁월한 제품이 나오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해 보인다. 가까이 앉아서 일하는 것에 장점은 또 다른 데에 있다. 

바로 디자인 가이드라인 시스템의 유무. 삼성에서 디자인할 때 히스토리 관리와 더불어 자세한 디자인 가이드를 제작하는 것은 꽤나 중요한 업무 중 하나였다. 조직이 크다 보니 나의 손을 떠난 디자인이 구현되기까지 여러 사람, 단계를 거치는 것이 일반적이었고, 정교한 가이드라인은 그것을 전달하는 중요한 매개체가 되었다. 이곳에 와보니 오히려 디자이너가 가이드라인 작업을 하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었다. 한 번은 삼성에서 하던 대로 문서를 만들어 주었더니 여러 팀에 링크가 돌아다니며 찬사?를 받기도 하였다. 이렇게 자세한 문서는 처음이라며 호들갑을 떨어댔다. 하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서로에게 효율적이지 못하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가이드 대신 자리에서 일어나 몇 발자국 걸어가 직접 그들에게 컨셉을 보여주고 대화하는 것이 더욱 프로젝트 진행을 빠르게 했다. 


데드라인의 유연함 역시 다르다. 소프트웨어 회사에서 데드라인은 없을 때도 많다. 여유 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페이스북의 Move fast 컬처는 굉장히 빠른 페이스로 일하게끔 서로를 압박하게 한다. 하지만 소프트웨어 어는 언제든 업데이트를 통해 제품을 개선할 수 있다. 날짜에 얽매이지 않고 디자인해서 테스트, 개선하고, 그것이 사용자를 만날 환경이 될 때 내보내는 것이 자연스럽다. 삼성에서의 디자인 프로세스는 철저히 제품 출시 스케줄에 맞춰서 결정된다. 이는 생산 일정, 통신사와의 관계, 그리고 소비가 올라가는 세일 시즌 등을 종합적으로 감안하여 결정된 절대적인 것이었다. (사실 이는 모든 하드웨어 회사가 갖는 공통점이기도 하다) 6개월 후 출시가 예정된 제품 디자인을 하다가 중간쯤 누군가의 지시로 구조가 바뀌게 되면 3개월짜리가 되어버리고, 또 다른 지시로 한 달짜리가 돼버리곤 했었다. 이는 당연히 디자인 깊이에도 영향을 미쳤다. 


실리콘 밸리의 조직체계는 단순하다. 지시와 보고가 아닌 방향성 설정하고 앞에서 뒤에서 밀고 끄는 것이 이곳 리더에 가깝다. (아.. 물론 회사마다 다른 곳도 있다) 막히는 부분이 생길 때 찾아가서 함께 토론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디자인은 정답이 없기 마련이고 보통 답을 찾는 과정에서 많은 개선이 이뤄진다. 이런 단순한 조직 체계에서 이뤄지는 토론 문화는 제품의 퀄리티를 크게 좌우하게 된다. 이는 상하관계가 없는 언어도 한몫한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존댓법은 직급과 나이를 감안하여 시작부터 이미 다른 계단에서 대화하게 한다. 눈높이가 다른 사람 간의 의견 교환이 수평적이기 어렵다. 이곳에서는 이름을 부르는 것이 자연스럽다. 나도 나의 이름으로 불리고 회사의 사장도 이름으로 불린다. 한국에서는 이름보다는 "성" + "직급"으로 불리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나. 개인보다는 주어진 "성"과 마찬가지로 주어진 "직급"으로 나의 위치가 정해져 버린 셈이다. 마찬가지로 자유로운 토론을 방해하는 요소가 된다. 


얼마 전 삼성에서 음성 서비스를 론칭하면서, 최적화를 위해 인력을 몇 천명을 투입하였다는 기사를 보았다. 아마도 열심히 일하고 있는 것을 보여주려는 언론의 양념이 가미된 기사일 것이다. 하지만 인력과 시간을 기준으로 작성된 획일적인 소프트웨어 단가표를 본 기억이 떠올라 씁쓸한 느낌이 들었다. 디자이너와 엔지니어가 사람 곱하기 시간으로 계산되는 접근 방식. 아마도 한국에서 디자이너와 엔지니어를 바라보는 시각이 그대로 투영된 결과물일 것이다. 아마도 그런 시각 자체가 가장 크게 다른 점이 아닐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