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 나 우산 없는데 밖에 비가 와. 커버정에 있을게."
11시. 아침 요가를 마친 아내에게서 톡이 왔다. 오늘은 마중의 날이다. 나는 한 몸으로 뒹굴거리던 따뜻한 이불을 빠져나와 화장실로 향했다. 세수와 양치만 하고 얼른 정신을 차려본다. 걷기 좋은 편한 옷을 골라 입고 벼리가 찾을 간식을 숨겼다. 우리 집에서 제일 큰 우산 하나를 챙겨 집을 나선다.
아내는 지금 커피내리는버스정류장에 있다. 강릉에서는 커버정이라 불리는 로스터리 카페. 가볍게 걷기 좋은 거리라서 요가를 마친 아내가 자주 불러내는 곳이다. 실력 있는 바리스타의 개성 있는 스페셜티 커피를 마실 수 있어 좋다. 지금은 비가 많이 내리지 않아 가는 길이 촉촉하고 좋다. 짧아도 운동이니까 시계의 걷기 모드는 켜고 간다. 주변 구경도 하며 천천히 걸어본다. 아내는 내게 빨리 오라거나, 왜 늦게 왔냐고 뭐라 하지 않는다. 아마 오늘도 스스로의 시간을 잘 즐기고 있을 테다.
카페 창문으로 아내가 보인다. 플랫화이트를 시켜 마시며 식물을 그리고 있었나 보다. 참 식물을 좋아하는 사람. 사장님은 눈부신 조명 아래서 생두 선별 작업을 하고 계신다. 입구 근처 손님은 혼자 음악을 들으며 커피를 마시고 있다. 커버정은 내게 '아내 마중길에 오는 카페'인데, 매번 느껴지는 특유의 무심한 공기가 나쁘지 않다. 나는 공복의 아침이라 산미 없는 카페라테 한잔을 주문했다. 오늘의 마중도 성공적. 아내가 비를 맞지 않아 좋다. 비루한 몸에 가벼운 산책을 안겨줬다. 맛있는 카페라테는 보너스.
"한낮의 바다 가볼까?"
집에 있는 게 제일 좋은데, 밖에 나왔다가 또 금방 들어가는 건 싫다. 우리는 좀 더 걸어 한낮의 바다로 갔다. 아내가 좋아하는 독립서점. 아담한 공간 덕에 피로감이 적고, 큐레이션 취향이 잘 맞아서 나도 좋다. 관심 없었거나 들어본 적 없던 책을 발견당하는 즐거움이 있다. 책마다 붙은 서점지기가 좋아하는 문장을 읽는 재미도 있다. 카메라 소리 없이 조용해야 함도 좋다.
나는 독립서점을 방문할 때면 한 권의 책은 꼭 사서 나오려 한다. 천천히 몇 번을 돌아보다가 그 안에서 가장 끌리는 책을 고른다. 분야나 작가의 이름은 상관없다. 제목과 표지를 느끼고, 머리말과 본문을 조금 읽어본다. 오늘 잘 읽히는 책이 있고 내일 잘 읽히는 책이 있다. 지금 마음에 들어오는 책을 고르면 된다.
독립서점 특유의 큐레이션을 즐기는 동안 많은 영감을 얻는다. 생각의 갈피가 잡히고 창작의 동기를 얻는다. 어떤 서점지기의 독립서점인가에 따라 매번 다르다. 울창한 숲 속 피톤치드처럼 곳곳에서 뿜어 나오는 한 사람의 생각과 가치가 나의 심신을 환기시킨다. 나는 이렇게 많은 것을 얻고 한 권의 책으로 입장료를 대신한다.
"나 이거 살래."
오늘은 마쓰우라 야타로의 <안녕은 작은 목소리로>가 나를 골랐다. 아내와 나는 머지않은 날 고운 어른이 되기를 꿈꾼다. 책과 TV를 보며 자주 대화를 나눈다. 그래서일까. 요즘은 고운 생각을 가진 어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이해하고 닮아가고 싶다. 아내와 나눠 읽으며 새로운 대화를 나눌 생각에 행복하다.
계산을 하려는데 사장님이 우리를 알아보시곤 인사를 해주셨다. 가끔 방문하는 아내를 인지하고 있으셨다가 오늘은 용기를 내주신 것 같다. 그저 가벼운 인사말을 나누는 것으로 세 사람이 행복해졌다. 한낮의 바다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