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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위 Apr 02. 2024

아내의 다시 보기

"손흥민!!!"

 

 고요한 새벽. 불 꺼진 거실에서 영국 프리미어리그를 시청했다. 토트넘과 루턴타운의 경기였는데 손흥민 선수가 골을 넣어 2대 1로 이겼다. 졸린 잠을 참으며 축구를 본 보람이 있었다. 출근을 위해 그만 자야 했다. 심호흡으로 아드레날린을 조정하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뭐야. 자는 거 아니었어?"

"하하. 드라마 보는 중."


 방안이 조용해서 먼저 자고 있는 줄 알았다. 아내는 입가에 미소를 띠며 드라마를 보고 있었다. 나도 축구를 보고 오는 길이라 늦게까지 안 자고 있었냐는 말은 할 수 없었다. 아내가 보고 있던 드라마는 내게도 익숙했다. 호시노겐이 주인공인 일본 드라마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였다. 전에 한번 정주행을 끝냈고, 나와도 한번 봤었다. 아내는 이미 저 드라마를 세 번 이상(내가 본 것만) 다시 보고 있었다.


 아내는 영화나 드라마를 다시 보는 걸 좋아한다. 처음에 재밌게 봤다면 몇 번이고 다시 재생 버튼을 누른다. <노팅힐>과 <비포시리즈>. <멜로가 체질>, <나의 해방일지>와 <상견니>도 다섯 번 이상 봤을 거다. 본인 말로는 <노팅힐>을 10번 정도 봤다고 했다. 물론 나도 영화나 드라마를 다시 본 적이 있다. 드라마는 단 하나 <나의 아저씨>다. 처음부터 끝까지 세 번을 봤다. 영화는 <극한직업>. 이건 티브이 채널을 돌리다 보면 자꾸 나온다. 매 장면이 재밌어서 잠깐 보고 있으면 계속 보게 된다. 이런 건 특별한 경우고 주로 뭐 새로 나온 게 없는지를 찾아본다.



"근데... 왜 그렇게 봤던걸 다시 보는 거야?"

"음... 글쎄. 생각 안 해봤는데."

 

 아내는 왜 이렇게 다시 보기를 좋아하는 걸까 궁금해졌다. 새벽 2시가 넘었지만 참을 수 없었다. 나는 아내의 드라마를 잠시 멈추고 진지하게 물어봤다. 아내는 그냥 좋아서 본다고 했다. 또 봐도 재밌다고. 뭐가 재밌냐고 하니 본인도 잘 모르겠다고 한다. 옛날부터 그랬던 것 같다고 했다. 생각해 볼 이유가 없었던 아내도 이번 기회에 자신을 궁금해하기 시작했다.


"다시 보면 못 봤던 게 보여. 그럼 새로워."

"그렇겠네. 여유가 생기니까."

"응. 다시 재밌으니까 또 보고 싶지."


 아내는 가끔 뭔가 재밌는 걸 보며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한다. 내가 게임을 하거나 스포츠 경기를 즐기는 것처럼. 아내도 새로운 걸 보고 싶은 마음이 있는데 막상 재밌는 걸 만나는 건 쉽지 않다고 했다. 주인공과 스토리, 영상 모든 게 취향에 맞는 콘텐츠가 많지 않다고. 그러다 보니 결국은 전에 재밌게 봤던 드라마를 다시 찾게 된다고 했다.


"아! 언젠가 ㅇㅇ치킨을 먹었는데 너무 맛있었어. 오늘 ㅇㅇ치킨이 먹고 싶네. 이런 건가!"

"치킨은... 뭐 비슷하다고 해줄게."

"음식의 가짓수처럼 다시 보는 드라마의 종류도 늘어나는 거구만!"

"오빠 그 비유가 맞아?"


 새벽 3시까지 이어진 대화 끝에 궁금증이 풀렸다. 아내가 다시 보기를 즐기는 건 사람들이 맛있었던 음식점에 다시 가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분야와 행위는 다르나 결과가 가져다주는 만족감은 같았다. 내가 좋아하는 경주에 몇 번이나 다시 여행을 가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아내는 음악 역시 새로운 곡 보다 좋아하는 몇 곡을 다시 듣기를 즐긴다고 했다. 참 일관성 있는 사람이다.

 아내의 다시 보기는 할머니가 하나씩 건네주시던, 동그란 플라스틱 속에 담겨있던 색색의 알사탕이었다. 빨강, 노랑, 초록, 파랑. 하나씩 꺼내 먹으면 그 순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아이가 되었던 마법의 알사탕. 아내는 자신이 원하면 언제든 기분을 전환할 수 있는 행복의 비법 하나를 가진 것이다. 나도 갖고 싶다. 재밌었던 드라마 하나를 골라 다시 보기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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