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유학생활을 하면서 뻔뻔함, 그리고 의사 밝히는 (직구 날리기) 스킬이 가장 많이 늘었다.
여기엔 아마도 국제학생을 인정해주려고 노력하는 학풍이 가장 많은 역할을 했을 것이다. 선생님들께 영어에 대한 어려움이나 두려움을 말씀드리면, 당연한 감정이라고 다독여주시고 참조할만한 책을 추천해주면서도 이중(혹은 그 이상)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독특한 표현법과 사고의 깊이가 있으므로 마냥 안 좋은 점은 아니라는 것을 항상 말해주었다.
이런 과정을 겪다 보니 내 마음속에는 이런 맘이 생겼다.
맞네? 너넨 한국말 못 하잖아. 난 영어도 하고 한국말도 하는데? 내가 한국말로 하면 너흰 못 알아들을 거 아냐?
이런 생각을 하기까지는 깨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워낙 남을 신경 쓰는 성격이다 보니 뻔뻔하게 구는 것도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시 수업 첫날, 미국 학생들을 앞에 두고 영어도 잘 못하는 내가, 말하기 경험도 없는 내가 말하기 수업을 해야 한다니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일단 자기소개를 했다.
"나는 ***야. 나는 아직 박사과정을 하고 있는 학생이니까 Dr. 혹은 Professor라고 부르면 안 돼. 너희가 나의 이름을 불렀으면 좋겠지만 너희가 불편하면 Ms. *라고 부르도록 해.
진부하게 자기소개는 하지 않을게! 난 낯을 가려서 이런 게 너무 불편했거든! 우린 같은 반이고 한 학기 동안 서로 알아갈 거니까 내 맘대로 자기소개는 넘기고!
너희도 알겠지만 사실 나는 국제학생이고 한국에서 왔고, 영어가 모국어도 아니야. 한국에서는 연설이 흔한 문화가 아니고, 특히나 public speaking이 미국과는 조금 다른 개념이야. 그래서 이 수업에서 내가 가르치기보다는 너희와 함께 배워나가면서 수업을 구성해나가야 할 것 같아.
먼저 너희를 좀 알아가보고 싶어! 우리 거수를 해보자. Public speaking 경험이 있는 사람?
한 명의 학생이 손을 들었고, 나는 그 친구에게 그 경험에 대해서 물어봤다. 형의 결혼식에서 연설을 했다고 언급을 했고 나는 이름을 묻고 학생을 칭찬해 주었다.
"정확해!
졸업식, 장례식, 결혼식에서도 이야기를 하는 게 상당히 흔하지? 이런 경험이 있는 다른 사람 또 있을까?"
조금 분위기가 풀어지면서 몇몇의 학생이 손을 들었고 대여섯 명에 가까운 학생들이 손을 들고 자신의 경험을 나누었다. 졸업식 연설이나 결혼식등 다양한 경험이 있었고, 나는 학생들에게 그때 핵심내용과 당시 기분이 어땠는지를 물었다.
"스무 명 중에 대여섯 명이 이미 경험이 있으니 내가 경력으론 이미 딸려!
그럼 너희 중에 수업시간에 발표 안 해본 사람 있을까?"
학생들이 수군수군 대기도 하고 킥킥대기도 했다. 손을 드는 학생은 하나도 없었다.
그중 한 학생이 빤히 나를 쳐다보며
"코로나 때문에 면대면으로는 못했는데 줌으로 한 것도 포함시켜도 돼?"
아, 코로나 생각을 못했다.
내가 수업을 한 시기는 코로나가 심각해졌다가 다시 in-person 수업을 재개하는 때였다.
"그러게! 되지 않을까? 환경은 달라졌지만 그 목적이 같으니까? 어떻게 생각해?"
웅성웅성 되며 되지 않을까? 하고 대부분이 끄덕끄덕하는 상황이었다. 이제야 분위기가 풀어졌구나 싶었다
"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로 연결시켜주는 중요한 점이야! 방금 예시로 코로나와 비대면 발표 예시가 나왔지?
외국인 학생인 나의 입장에서 설명을 해보자면, 그 긴장감이 덜해졌어!
나는 원체 발표를 할 때마다 떨고, 긴장을 하는 성격인데 영어로 발표를 하려면 준비를 아무리 철저하게 해도 조금씩은 틀리더라고. 하다못해 발음이 어려운 단어 같은 건 꼭 하나씩 실수를 했었어.
그런데 비대면으로 발표를 하니까 청자들이 바로 보이지 않아서, 그 반응을 조금 덜 신경 쓰게 되었어! 안 보이게끔 스크립트를 가려놓고 읽는 꼼수도 부렸고~ 환경도 내게 익숙한 환경이고 내가 조절할 수 있는 부분이 더 많아지다 보니 훨씬 부담이 덜했어!
이런 것처럼 발표에는 여러 가지 고려할 사항들이 있어!
학기 동안 우리는 이런 걸 조금씩 살펴보고 여러 가지 종류의 public speaking에 대해서 알아보고 전부 다 연습을 해볼 거야.
앞서 말했듯이 나는 한국인이고 아마도 우리가 수업시간에 다룰 Public speaking에 속하는 경험은 너희보다도 부족할 거야! 나는 학교나 학회에서 발표한 게 전부일 것 같은데? 그러니까 혹시라도 내가 제시하는 내용이나 자료에 의문이 들거나 내가 뭔가 실수를 했다면 망설이지 말고 지적해 줘. 그래야 조금이라도 더 발전시켜서 유용한 수업을 만들 수 있으니까.
또한 문화적인 차이가 있으니 내가 실수를 할 수도 있을 것 같아. 만약 내가 부적절한 말을 했거나 내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 지점이 있다면 언제든지 말해줘! 수업시간에 말하기가 어렵다면 언제든 이메일로 보내도 좋아. 난 말보다는 이메일이 편하거든! 다들 동의하니?
내가 날린 선빵에 학생들은 다들 미소를 머금고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내 의견에 동의하지 않아도 괜찮아!라고 강조를 하며 강의계획서를 읽고 설명하는 것으로 첫 수업은 마쳤다.
솔직하게 패를 내보인 결과가 생각보다는 나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