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 오늘 점심 메뉴를 선택한 이유

내가 제일 싫어하던 음식

by 민쌤

오늘 점심 메뉴를 선택한 이유

_내가 제일 싫어하던 음식




며칠 전부터 몸이 좋지 않아 끙끙 앓았다. 1년에 한두 번은 꼭 이런 날이 찾아오곤 한다. 머릿속은 어지럽고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려, 누군가에게 얻어맞은 듯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 다행히 이틀 정도 지나니 조금씩 나아졌다. 지금도 완전히 괜찮은 것은 아니지만, 잠시 쉬는 틈을 내어 몸을 돌본 덕분인지 한결 회복된 느낌이다.


그래서 오늘 점심 메뉴는 특별히 낙지김치죽으로 정했다. 마침 가까운 지인들이 선물해 준 죽 쿠폰이 있었는데, 사실 나는 죽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고등학교 2학년 시절 아버지가 폐암으로 투병하시면서 집 식탁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죽이 올랐다. 아버지는 죽을 드시면서 힘이 나지 않는다며,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라고 중얼거리곤 하셨다. 그 투정과 한숨이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


그 때문일까. 나에게 ‘죽’은 늘 아픈 사람의 음식, 먹어도 배가 차지 않고 기운이 나지 않는 음식이라는 고정관념으로 자리 잡았다. 밥은 힘을 주고 즐거움을 주는 행위인데, 죽은 왠지 먹을수록 마음을 무겁게 하는 음식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생각이 조금씩 달라졌다. 주변을 보니 꼭 아프지 않아도 죽을 먹는 사람들이 많았다.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 가볍게 끼니를 대신하는 사람, 혹은 간식처럼 즐기는 사람까지 다양했다. 그러면서 나 역시 죽에 대한 인식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오늘 내가 선택한 낙지김치죽은 희멀건 죽이 아니다. 매콤한 김치와 낙지가 들어가 있어 맛있게 먹을 수 있고, 기운도 북돋아 주는 메뉴다. 요즘은 죽도 두 가지 맛을 반반 섞어 주문할 수 있고, 여러 가지 종류가 있어 고르는 재미가 있다. 소분 포장도 가능해 필요한 만큼 나눠 먹을 수 있으니 참 편리하다.


나도 예전에는 아픈 사람만 먹는 음식이라 생각했지만, 이제는 상황에 따라 죽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혼자 밥 먹기 외로운 날, 몸이 무거워 입맛이 없을 때, 혹은 술을 많이 마신 다음 날 속을 달래고 싶을 때 가끔 주문한다. 요즘은 배달 서비스도 워낙 잘 되어 있어, 집에 가는 길에 미리 주문해 두면 따뜻하게 데워 먹을 수 있어 간편하다.


오늘 점심의 선택은 단순히 ‘죽을 먹는다’라는 의미가 아니었다. 나에게 죽은 아버지의 투병과 함께한 기억이기도 하고, 동시에 내가 과거의 고정관념을 조금씩 바꿔가는 과정의 상징이기도 했다. 예전 같으면 절대 스스로 주문하지 않았을 음식이었는데, 이제는 스스로 골라 먹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조금은 쓸쓸했던 음식이, 오늘은 회복을 돕는 따뜻한 한 끼가 되었다. 힘든 시간을 지나 몸과 마음이 회복되는 길목에서, 낙지김치죽은 내게 묘한 위로를 주었다. 앞으로도 아픈 기억 속에만 갇혀 있지 않고, 새로운 의미로 받아들이며 맛있게 즐길 수 있기를 바란다. 음식 하나에도 이렇게 내 삶의 이야기가 녹아 있다는 사실이 오늘따라 새삼 고맙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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