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공부방 시절, 먼 산을 보던 친구

10년 전 그때 그 시절

by 민쌤

공부방 시절, 먼 산을 보던 친구

_10년 전 그때 그 시절


방학마다 무료 수학 특강 봉사활동을 하던 시절, 한 어머님께서 심각한 얼굴로 상담을 요청하셨습니다. 아이가 셋 있는 집의 장남인데, 아무것도 하려 하지 않고 곧 고학년으로 올라가야 한다며 도와 달라는 부탁이었죠.

여러 아이들을 가르쳐본 경험이 있어서 가벼운 마음으로 받아들였지만, 첫날부터 쉽지 않았습니다. 아이는 의욕도 표정도 없이 베란다로 가 창밖만 바라보곤 했습니다. 사실 창밖은 먼 산이 아니라 낙동강이 보였지만, 그 모습은 늘 멀리만 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불러도 대답이 없고, 시선을 끌려고 소리도 질러보고 크게 웃어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아이는 늘 조용했고, "하기 싫다"는 말을 반복했습니다.


고민 끝에 아이가 앉는 자리에 푹신한 매트를 깔아주고, 친구가 공부하러 올 때면 문제집을 매트 위에 올려두었습니다. 그 위에 나란히 엎드려 문제를 하나씩 풀어보기 시작했죠. 처음엔 황당한 표정을 짓던 아이도 매일 반복하다 보니 조금씩 이야기를 나누고 웃기 시작했습니다.


국어는 만화책을 좋아해서 큰 문제없었지만 사회·과학은 보통, 수학은 거의 기초부터 다시 해야 했습니다. 다행히 구구단은 외우고 있었기에 받아 올림, 받아 내림부터 시작해 곱셈·나눗셈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연습했습니다. 기본기가 탄탄해지니 금세 30~40점대에서 70점, 80점 이상으로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국어와 수학이었지만 그 성취가 참 기뻤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어머님께서 "조금 쉬었다 다시 보내겠다"며 공부방을 끊으셨습니다. 공든 탑이 무너지는 기분이었어요. 곱셈·나눗셈은 며칠만 쉬어도 금방 헷갈리기 마련인데… 정말 아쉬웠습니다.


시간이 흐른 뒤, 그 아이가 다른 학원에서 공부를 잘한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솔직히 속상했지만 후회는 없었습니다. 저는 그 아이를 진심으로 가르쳤고, 끝까지 응원했으니까요. 부모님이 알아주지 않아도 아이들의 인격을 존중하며 그들의 수준에 맞춰 목이 터져라 가르치던 시절이었습니다. 50분 수업 시간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죠.


지금 돌아보면, 학원 운영하면서 힘든 일도 많았고 황당한 일도 많았지만, 덕분에 저는 더 단단해졌습니다. 여전히 모든 사람이 다 인정해주진 않지만, 그래서 더 열심히 살아갑니다. 제가 가르쳤던 대부분의 친구들이 여전히 상위권에서 공부 잘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 힘이 납니다.


그 친구 역시 다른 학원에서 성적이 올랐다니 기쁩니다. 저는 그 아이가 머리가 나쁘다거나 이해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단지 공부하기 싫어했던 아이였을 뿐이죠. 아마 중학교쯤 들어가 갑자기 공부에 재미를 붙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저에게 오는 많은 친구들이 있지만 한 명도 소홀하지 않게 최선을 다하려고 합니다. 그게 저의 몫이라 생각합니다.


가끔 중학교, 고등학교 올라가서 공붓벌레가 되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그래도 그 친구가 잘 지내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 기쁩니다. 늘 무기력했지만 저와 이야기할 땐 환하게 웃어주던 착한 친구가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앞으로도 그 친구가 행복하게 잘 지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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