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첫 마라톤

나를 다시 부르는 순간

by 민쌤

생애 첫 마라톤

_나를 다시 부르는 순간



태어나서 처음으로 마라톤에 도전했다. 어느 날 아무 생각 없이 인터넷을 둘러보다가 “상주곶감마라톤대회” 모집 글을 보게 되었고, 특별한 이유도 없이 그저 마음이 끌려 신청 버튼을 눌렀다. 놀랍게도 남편도 나와 함께 덤으로 등록되었다. 마라톤이라는 단어가 아직도 내 삶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느꼈지만, 이상하게 그 순간에는 망설임보다는 ‘한번 해볼까?’라는 마음이 더 크게 작용했다.


어제는 한 달 동안 준비한 안무로 라인댄스대회에 참가해 총 팀별 3위, 청년부 대상을 받았다. 누군가에게는 작은 상일지 몰라도, 나에게는 그동안의 연습과 꾸준함이 빛을 내준 값진 결과였다. 그런데 오늘은 마라톤에서 4km 완주 메달까지 손에 쥐었다. 이틀 연속으로 ‘도전’과 ‘성취’라는 단어를 내 몸으로 직접 체험한 셈이다.


결혼하고 난 이후, 뛰는 일이라고는 줌바할 때 잠깐 뜀박질하는 정도였고, 평소엔 걸음조차 느려진 내게 달리기는 늘 먼 이야기였다. 뛴다라는 건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마라톤에 참여한다는 것 자체가 믿기지 않았다.


나이가 들고 출산을 하며 몸은 자연스레 무거워졌다. 먹고살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기만 했지, 내 몸을 위해 뛰거나 달려본 적은 거의 없었다. 늘 동네를 산책해도 뛰기보다는 ‘빠르게 걷기’에 가까웠다. 그래서 마라톤 신청 후에도 ‘과연 내가 뛸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앞섰다. 대학교 때까지만 해도 운동회 종목에 이름 한 번 빠지지 않던 나였는데, 언제부턴가 나는 ‘운동과 먼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런데 오늘 달리기를 하며 문득 아빠가 떠올랐다. 우리 집은 늘 가난했다. 작은 단칸방이 전부였지만, 그 방 벽에는 아빠가 받은 마라톤 메달이 여러 개 걸려 있었다. 어린 나는 그 메달이 왜 그렇게 많았는지, 그 메달이 아빠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그때는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오늘 달리는 내내 아빠가 생각났다. 그렇게 힘든 생활 속에서도 아빠는 도대체 어떤 마음으로 마라톤을 뛰었을까. 그 질문이 마음속에서 조용히 울렸다. 그리고 코끝이 시려졌다.


아빠에게 마라톤은 삶의 무게를 잠시라도 잊게 해주는 탈출구였을까, 아니면 스스로에게 ‘나는 아직 살아 있다’고 다독이는 증거였을까. 생각이 여기에 닿자 마음이 아프면서도 묘하게 따뜻해졌다. 마라톤이라는 작은 경험이 오래 전의 기억을 열어주고, 나를 다시 아빠에게 데려다 놓았다.


많은 준비를 하지 않아 더 걱정스러웠던 첫 마라톤이었지만, 결국 무사히 완주했고 오히려 나에게 큰 용기를 남겼다. 처음이어서 더 떨렸고, 처음이어서 더 두려웠던 일이었지만, 바로 그 ‘처음’이 나를 조금 더 넓고 단단한 세계로 데려다 놓았다.


오늘 4km를 달려낸 내가 있다면, 언젠가 5km, 10km에도 도전할 수 있으리라는 작은 확신이 생겼다. 나이가 들었다는 이유로, 일 때문에 바쁘다는 이유로 스스로에게 제약을 두며 살아왔지만, 오늘은 그 모든 생각이 조금은 옅어졌다.


지금은 여기저기 쑤시고, 몸이 뻐근하고, 무릎도 약간 욱신거리지만 견딜 만한 통증이다. 조금 쉬면 괜찮아질 것이다. 무엇보다 오늘의 나는 분명 이전과 다르다. 아주 작은 거리지만, 나는 나를 향해 뛰었다. 그리고 그 사실이 나를 자랑스럽게 한다. 그래서 오늘, 나는 나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너는 오늘도 잘 해냈어. 그리고 정말 잘했어. 앞으로도 잘 될 거야.”라고.



“우리가 극복하는 것은 길이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이다.”

– 에드먼드 힐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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