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년을 돌아봅시다.

12개의 기록

by 민쌤

2025년의 나의 흔적

— 기억 대신, 기록으로 남기는 삶



서울로 가는 길은 늘 조금 분주했다. 이동 시간도 길고, 챙겨야 할 것들도 많았지만 이상하게 그 길을 한 번도 “귀찮다”로 끝낸 적은 없었다. 한 달에 한 번, 빠지지 않고 참석한 철학 수업과 독서모임은 내 일상의 중심을 단단히 잡아주었다. 누군가의 생각을 듣고, 내 생각을 말해보고, 다시 조용히 돌아와 삶을 정리하는 과정은 마치 숨을 고르는 일 같았다. 당장 눈에 띄는 성과가 없어도 ‘내가 나로 살아가는 방식’을 배워가는 시간이었다.


그 흐름 속에서 나는 또 다른 루틴들을 붙잡았다. 밴드모임에서 매일 미션 글쓰기를 한 달 과정으로 끝까지 이수했고, 그 결과로 미니북까지 제작했다. 매일 쓰는 일은 생각보다 더 성실을 요구했고, 성실은 결국 나를 배신하지 않았다. 글은 완벽해서 쌓이는 게 아니라, 쓰고 지우고 다시 쓰는 사이에 “내가 여기 있었다”는 흔적을 남겼다. 미니북은 한 권의 작은 결과물이었지만, 그 안에는 내 하루의 체온과 숨결이 들어 있었다.


몸으로 남긴 흔적도 있다. 라인댄스 대회에 단체전으로 참여했고, 두 번이나 수상했다. 대회라는 무대는 늘 긴장되고, 연습 과정은 지치기도 하지만, 그 시간을 함께 견디는 사람들이 곁에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발끝이 맞고 박자가 맞는다는 건, 결국 마음이 맞는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나는 그 경험을 통해 ‘혼자 꾸준히’와 ‘함께 끝까지’가 다른 감동을 준다는 걸 배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올해의 나를 가장 선명하게 만든 건 ‘하루도 빠지지 않은 실천’이었다. 2월부터 시작한 필사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특별한 날에만 하는 결심이 아니라, 평범한 날을 지켜내는 결심. 필사는 내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다시 중심으로 돌아오게 해주는 작은 닻이었다. 문장을 옮겨 적는 손끝이 느려질수록, 마음은 오히려 조용해졌다. 속도를 늦추면 보이는 것들이 있었다. 그날의 감정, 그날의 생각, 그리고 나 자신.


5월, 브런치스토리 작가가 된 이후에는 1일 1 글쓰기를 이어왔다. 작가가 된 순간이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글쓰기는 늘 ‘잘 쓰는 것’보다 ‘계속 쓰는 것’에서 길이 생긴다. 쓰다 보면 어느 날은 문장이 반짝이고, 어느 날은 유난히 밋밋하다. 그럼에도 중요한 건, 그날의 내가 펜을 놓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매일 쌓인 문장은 내 마음의 일기이자, 앞으로의 나에게 보내는 기록이었다.


9월에는 공동자서전 작업을 시작했고, 11월에 제작·발간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그 책이 서울 국립중앙도서관에 등록되었다는 사실은 올해의 흔적 중에서도 특히 조용히 빛나는 장면이다. 사람은 결국 사라지지만, 흔적은 남는다. 그러니까 기록은 단순한 저장이 아니라, 내가 나를 존중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나는 고백하게 된다.
“1년의 흐름을 달별로 정리해보려 하니, 남겨둔 기록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렇게 많은 일을 했는데, 정작 달력 위에는 남아 있는 것이 많지 않았다. 기억은 흩어지고, 기록은 없으면 더 빠르게 사라진다. 그나마 적어둔 것들도 제각각 흩어져 있어서 찾기 어렵고, 정리도 되어 있지 않았다. 그래서 이제라도 마음을 다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년부터는 ‘매달 기록하는 연습’을 해보려 한다. 거창한 계획이 아니라 아주 단순한 방식으로. 매달 내가 무엇을 했고,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 무엇이 나를 기쁘게 했고 무엇이 나를 흔들었는지. 쌓이지 않는 기억 대신, 흔적을 남기는 삶을 살아보기 위해서.


기록은 내 삶을 포장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내 삶을 살아냈다는 증거를 남기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를 위한 선물에 대해.


올해의 나는 많은 것을 해냈다. 그렇다면 그만큼 스스로를 대하는 방식도 조금 달라져야 한다. “나를 위한 선물”은 충동적으로 사는 물건이 아니라, 내가 나를 어떤 사람으로 존중할 것인지에 대한 선언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번에는 조금 더 신중하게 생각해 보고, 12월이 지나기 전에 꼭 선물해주려 한다. 올해를 버틴 나에게, 올해를 키운 나에게, 그리고 내년을 준비하는 나에게.



“우리는 반복적으로 하는 것의 총합이다. 그러므로 탁월함은 행위가 아니라 습관이다. "

_아리스토텔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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