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은 늘 사건 뒤에 찾아온다

by 민쌤


걱정은 늘 사건 뒤에 찾아온다


나는 미리 걱정하는 사람은 아닌 것 같다. 아직 오지 않은 일에 대해 상상으로 앞서 불안해하는 타입도 아니다. 오히려 걱정은 언제나 일이 벌어진 뒤에 찾아온다. 이미 일어난 일, 이미 지나간 말, 이미 엇나가 버린 장면들.


하루를 마치고 누운 밤이면, 낮에 있었던 일들이 다시 생각난다. 그때 왜 그렇게 말했을까, 조금 더 다르게 행동할 수는 없었을까.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순간들을 붙잡고 혼자서 수없이 질문을 던진다.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 질문이라는 걸 알면서도, 걱정은 쉽게 놓아주지 않는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벌어질 일에 대한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은 내가 아무리 상상해도 그 모습 그대로 오지 않기 때문이다. 상상은 대부분 과장되고, 걱정은 대부분 현실보다 앞서 달린다. 그러니 미래의 일은 미래의 나에게 맡겨도 충분하다.


문제는 이미 벌어진 일들이다. 업무에서의 실수, 관계에서의 어긋남, 마음에 남아버린 말 한마디. 그 일들은 이미 지나갔음에도 계속해서 나를 불러 세운다. 내가 할 수 있었던 것과 할 수 없었던 것의 경계에서, 걱정은 더 짙어진다.


“우리를 괴롭히는 것은 사건이 아니라, 사건에 대한 우리의 생각이다.”
이 문장을 여러 번 읽었지만, 막상 걱정 앞에서는 쉽게 실천되지 않는다. 이성으로는 알지만, 감정은 늘 한 박자 늦게 따라온다.


요즘 나의 걱정은 두 가지에 머물러 있다. 하나는 글을 쓰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관계다. 글은 마음먹는다고 써지는 것이 아니다. 쓰고 싶을 때 써지는 날도 있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한 줄이 나오지 않는 날도 있다. 잘 쓰고 싶은 마음이 커질수록, 글은 오히려 더 멀어지는 것 같다. 사람들의 반응, 스스로의 만족, 이 글이 과연 의미가 있는지에 대한 질문들. 글은 분명 내 손으로 쓰고 있지만, 결과는 결코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조심해도 오해는 생기고, 아무리 진심을 다해도 닿지 않는 순간이 있다. 관계는 늘 두 사람 이상의 마음이 얽혀 움직이기 때문에,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 훨씬 더 많다. 머리로는 알고 있다.

글도 사람도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걱정은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관계에 대한 글을 쓰면 쓸수록, 사람에 대한 걱정은 더 깊어진다. 이 글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지는 않을지, 나의 진심이 오해로 남지는 않을지.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 모든 걱정 역시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영역에 속해 있다. 이미 내 손을 떠난 일들, 타인의 해석에 맡겨진 부분들. 그것들까지 끌어안고 스스로를 괴롭힐 필요는 없는데, 걱정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어디까지가 내가 책임질 몫이고 어디부터가 내려놓아야 할 몫인지는 조금씩 구분해 볼 수는 있을 것 같다. 이미 벌어진 일에 대해서는 할 수 있는 만큼 돌아보고, 배울 것만 챙긴 뒤 나머지는 흘려보내는 연습을 해보려 한다. 글도, 관계도,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스스로에게 말해주는 연습 말이다. 오늘도 걱정은 여전히 존재한다. 걱정이 많은 사람이기보다, 걱정 속에서도 멈추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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