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할 것 같던 것들

by 민쌤

영원할 것 같던 것들



고1이 된 아들의 어린 시절 사진들이 냉장고 문 앞에 여기저기 붙어 있다. 질서 없이, 일부러 그렇게 두었다. 정돈해 두면 오히려 더 쉽게 잊어버릴 것 같아서다. 매일 문을 열 때마다, 음식을 꺼낼 때마다, 습관처럼 그 얼굴들을 한 번씩 바라본다. 마치 그렇게라도 하면 시간이 조금은 천천히 흐를 것 같아서.


사진 속 아이는 언제나 웃고 있다. 볼이 통통하고, 눈꼬리가 부드럽고, 세상에 대한 경계 같은 건 아직 모르는 얼굴이다. 나는 그 얼굴을 매일 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시절의 모든 장면이 또렷하게 떠오르지는 않는다.

어떤 날은 기억이 선명하다가도, 어떤 날은 아무것도 붙잡히지 않는다. 그래서 더 아쉽고, 그래서 더 안타깝다. 잊고 싶지 않아서 붙여 둔 사진들이, 오히려 잊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조용히 알려주는 것만 같아서.

사랑스럽게 말하던 아이의 목소리가 있었다. 발음이 또렷하지 않아 더 귀여웠던 말투, “엄마” 하고 부르던 그 짧은 두 글자에 담겨 있던 사랑. 엄마가 해준 음식을 두 손으로 꼭 붙잡고 오물오물 씹어 먹던 입모양, 맛있다는 말 대신 눈을 크게 뜨고 고개를 끄덕이던 작은 몸짓들.


힘들까 봐 눈치를 보던 아이의 표정도 기억난다.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서 괜히 내 주변을 서성이다가, 조심스럽게 등을 토닥이던 그 손길. 그렇게 작은 몸으로 이미 누군가의 마음을 살필 줄 알던 아이였다.


그 모든 장면들이 아직도 생생한 것 같다가도, 문득 어느 순간엔 희미해져 있다는 걸 깨닫는다. 기억은 남아 있는데, 온도는 빠져나간 것처럼. 분명 내가 겪은 시간인데, 마치 남의 이야기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 사실이 나를 가장 슬프게 만든다.


우리는 종종 영원할 것처럼 살아간다. 이 시간이 계속될 거라 믿고, 이 얼굴이 이대로일 거라 착각한다. 그래서 충분히 바라보지 못하고, 충분히 안아주지 못한 채 다음 날을 당연하게 맞이한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깨닫는다. 영원할 것 같던 것들이, 사실은 가장 먼저 사라져 간다는 사실을.


그래서 오늘도 나는 냉장고 문 앞에 붙은 사진들을 그대로 둔다. 조금 어지러워도 괜찮고, 조금 낡아도 괜찮다. 지나간 시간은 돌아오지 않지만, 그 시간을 사랑했던 마음만큼은 아직 내 안에 살아 있으니까.


아이의 얼굴을 다시 한번 바라보며, 나는 조용히 다짐한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놓치지 않겠다고. 지금의 목소리, 지금의 표정, 지금의 침묵까지도 언젠가 다시 붙잡고 싶어질 기억이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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