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미루고 있는 것이 있나요?

_결정을 미뤄두고 있는 선택에 대하여

by 민쌤

지금 미루고 있는 것이 있나요?

_결정을 미뤄두고 있는 선택에 대하여



몇 달 전부터 쉽게 끊어내지 못하고 있던 일들이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일’이 아니라 ‘상태’였다. 사람들을 너무 많이 만나며 지낸 시간들, 겹치고 얽힌 약속들, 쉼 없이 이어지는 관계 속에서 마음이 먼저 과부하를 일으켰다. 하루하루는 바쁘기만 했고, 정신없이 지나갔지만 이상하게도 남는 것은 피로와 공허함뿐이었다.


처음에는 아주 사소한 일에서부터 균열이 시작됐다. 평소라면 웃고 넘겼을 말 한마디에 마음이 상했고, 아무렇지 않게 넘기던 상황들이 버겁게 느껴졌다. 무엇보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잠시 접어두고, 타인의 일정과 감정에 맞춰 움직이는 일이 점점 부담으로 다가왔다.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지?’

이 질문이 마음속에서 자주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생각 없이 던져지는 말들, 가볍게 여겨지는 나의 시간, 당연하다는 듯 요구되는 배려들. 그 모든 것이 어느 순간부터는 날카롭게 마음을 긁었다. 그러다 보니 문득, 모든 관계를 정리해버리고 싶다는 극단적인 생각까지 들었다. 아예 다 내려놓고, 조용한 곳으로 사라지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관계라는 것이 마음먹은 날 단번에 끊어낼 수 있는 것만은 아니었다. 하루, 이틀 결심을 미뤘고, 마음은 생각만큼 단호해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 시간 동안 더 많은 감정이 쌓였다. 망설임, 죄책감, 미련,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한 실망까지.


사실 나는 사람 만나는 일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웃고, 에너지를 주고받는 시간에서 힘을 얻어왔다. 그렇기에 ‘관계를 줄인다’는 선택은 내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마 그래서 이 결정은 몇 달이 지나도록 아직도 완전히 끝나지 못한 채, 내 마음 어딘가에 머물러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모든 인연을 한 번에 끊어내는 것이 답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 억지로 정리하려 애쓰기보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과 반드시 해야 하는 일에 먼저 집중해 보자는 결론에 조금씩 다다르게 되었다.


관계를 끊는 대신, 나를 다시 중심에 두는 선택.

타인의 요구를 줄이는 대신, 나의 하루를 정돈하는 선택.

모든 사람에게 잘하려 애쓰는 대신, 나에게 먼저 솔직해지는 선택.


그래서 나는 다짐했다. 12월이 지나기 전, 꼭 해야 할 일과 진짜 하고 싶은 일을 구체적으로 적어보겠다고. 막연한 다짐이 아니라, 손에 잡히는 언어로 정리해 보겠다고. 그리고 2026년에는 무엇을 더 하고 싶은지, 어떤 삶의 리듬으로 살고 싶은지 나 자신과 대화를 시도해 보겠다고.


이제는 생각에만 머무르지 않으려 한다. 조심스럽지만, 분명한 한 걸음을 내디뎌보려 한다. 실천은 늘 두렵지만, 멈춰 있는 것보다는 낫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흔들려도 괜찮다. 중요한 것은 다시 내 길 위에 서는 일이다.


앞으로 걸어갈 길이 평탄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여전히 사람들 사이에서 고민하고, 선택 앞에서 망설이는 순간도 많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다시 묵묵히 나의 길을 걸어가려 한다. 타인의 속도가 아닌, 나의 호흡에 맞춰서.


결정을 미루고 있다는 것은,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지금의 이 망설임 역시, 나를 지키기 위한 과정일 것이다.


버지니아 울프는 말했다.

“나 자신이 되는 데에는 온전한 시간이 필요하다.”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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