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감 수치(0~10)는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시나요?

by 민쌤

자존감 수치(0~10)는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시나요?


나는 질문 앞에서 쉽게 대답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자존감은 숫자로 고정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하루에도 몇 번씩 오르내리는, 체온처럼 변하는 값에 더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글을 쓰는 사람의 하루는 늘 비슷하게 시작된다. 어제 쓴 문장을 다시 읽으며 고개를 끄덕이다가도, 두 번째 문장에서 갑자기 확신이 사라진다.

“이 문장, 정말 괜찮은 걸까?”


이 질문 하나로 자존감은 순식간에 7에서 4로 내려앉는다. 나의 자존감은 대체로 불안정한 상태로 유지된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글을 쓴다는 행위 자체가 끊임없이 자신을 들여다보고, 의심하고, 해체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파스칼은 말했다.
“인간의 모든 불행은 혼자 조용히 방에 앉아 있지 못하는 데서 시작된다.”

글을 쓰는 일은 바로 그 ‘조용히 앉아 있는 시간’을 견디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필연적으로 자기 자신과 자주 마주칠 수밖에 없고, 그만큼 자존감은 쉽게 흔들린다. 확신보다는 의심이 먼저 떠오르는 이 구조 속에서 자존감은 언제나 안정권에 머물기 어렵다.


사람들은 종종 오해한다. 글을 쓰는 사람은 자존감이 높을 거라고, 자기 확신이 단단할 거라고 말이다. 하지만 실제로 글을 쓰는 많은 사람들의 자존감 수치는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훨씬 낮다. 아마도 4와 6 사이, 그 애매한 구간을 오간다. 완전히 무너지지는 않지만, 완전히 단단해지지도 못한 채.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쓴다.


자존감이 높아서가 아니다. 오히려 흔들리기 때문에 쓴다. 글은 자존감을 증명하는 수단이 아니라, 흔들리는 마음을 잠시 붙잡아 두는 행위에 가깝다.


니체는 이렇게 말했다.
“왜 살아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은 거의 모든 어떻게든 견딜 수 있다.”


글을 쓰는 사람에게 ‘왜’는 완벽한 자신감이 아니라, 이 흔들림 속에서도 말하고 싶은 무언가가 있다는 사실이다. 그 이유 하나로, 자존감이 낮은 날에도 우리는 다시 글을 쓴다. 나 역시 그렇다. 아이들을 가르치고, 글을 쓰고, 책을 읽으며 살아가지만 어떤 날은 내 모든 선택이 의심스럽게 느껴진다. 그럴 때 자존감 수치는 3쯤으로 떨어진다. 그러다 아이 하나가 조심스럽게 건넨 말 한마디, “선생님 덕분에 조금 자신감이 생겼어요.” 그 말로 다시 6까지 회복된다.


이렇게 자존감은 관계 속에서, 일상 속에서, 말 한마디에 의해 계속해서 변한다. 그래서 나는 자존감을 높여야 할 목표로 두기보다 관리해야 할 상태라고 생각한다.

높지 않아도 괜찮고, 낮다고 해서 실패한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숫자가 아니라 태도다. 자존감이 낮은 날에도 “그래도 오늘은 한 줄 써보자”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 그 용기가 글을 계속 쓰게 만든다.


아무 생각 없이 사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 삶을 진지하게 바라보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니까. 글을 쓰는 사람의 자존감은 결코 완성형이 아니다. 매일 새로 측정되고, 매일 다시 조정된다.


오늘의 내 자존감은 6.
완벽하지 않지만, 글을 쓰기에 충분한 수치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쓴다. 그것이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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