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늘 특별한 사건보다 태도를 드러낸다. 어디를 갔는지보다, 그 시간을 어떤 마음으로 통과했는지가 오래 남는다. 이번 여행을 마치고 돌아보니, 화려한 일정이나 사진보다도 ‘잘 해낸 선택들’이 마음에 또렷하게 남았다. 그래서 이번 여행 중, 내가 잘한 일들에 대하여 몇 가지 기록해두려 한다.
첫째, 가족과 함께 괌으로 여행을 떠난 일이다.
바쁜 일상 속에서 ‘언젠가’로 미뤄두던 시간을 실제의 날짜로 옮긴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잘한 선택이었다. 이동은 쉽지 않았고 준비도 만만치 않았지만, 같은 풍경을 보며 같은 시간을 공유했다는 사실 하나로 여행의 목적은 이미 달성되었다.
둘째, 짜증내거나 화내지 않으려고 애쓴 일이다.
여행지에서는 사소한 변수들이 늘 생긴다. 계획과 다른 상황 앞에서 예전의 나는 쉽게 예민해졌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번에는 한 발 늦추어 생각했다. 감정을 앞세우기보다, 분위기를 지키는 쪽을 선택했다. 그 선택 덕분에 여행의 공기가 한결 부드러워졌다.
“삶의 질은 사건이 아니라, 그 사건을 대하는 태도에서 결정된다.”
셋째, 지갑을 찾아준 착한 일이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누군가의 불안을 덜어주는 작은 행동 하나가 나 자신을 더 단정하게 만든다는 것을 다시 느꼈다. 왜냐하면 지갑을 찾아준 다음날 내 지갑을 잃어버렸다. 그 넓은 타지에서 잃어버린 지갑을 찾기란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와 다름없었다. 그런데 지갑을 찾으러 오라는 연락을 받고 지갑을 찾은 것이다. 이번 여행지에서의 선의는 내 기억에서 오래 남을 것이다.
넷째, 매일 필사하고 독서한 일이다.
여행 중에도 루틴을 지켰다는 사실이 나를 안정시켰다. 장소가 바뀌어도 내가 나로 서 있게 해주는 것은 결국 읽고 쓰는 시간이라는 것을 다시 확인했다. 집중이 완벽하지 않아도, 이어간다는 것 자체가 의미였다.
다섯째, 『스토너』를 완독 한 일이다.
조용하고 묵묵한 한 인간의 삶을 따라가며, 크지 않아도 흔들리지 않는 삶의 무게를 배웠다. 여행지에서 만난 이 소설은, 내 삶의 속도와 태도를 돌아보게 했다. 분량이 많아서 이동하면서 읽기가 힘들었지만 그래도 끝까지 읽어 냈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
여섯째, 가족 간의 대화 시간을 충분히 가진 일이다.
너무 오랜만에 가족 간의 대화를 가졌다. 특별한 주제가 없어도 괜찮았다. 하루를 정리하며 나눈 말들, 웃음과 침묵이 쌓여 가족의 시간이 되었다. 대화는 관계를 회복시키는 가장 단순하고도 확실한 방법이라는 것을 우리는 안다. 자주 할 수 없는 일은 아니지만 가족 간의 대화는 꼭 필요하다.
일곱째, 사색을 즐긴 일이다.
바다를 바라보며, 낯선 하늘 아래서 생각했다. 지금의 나, 앞으로의 나, 그리고 흘려보내도 좋을 걱정들에 대해. 여행은 생각을 멀리 데려가지만, 결국 다시 나에게 데려다준다. 버릴 것은 버리고, 남겨둘 것은 남겨두려는 마음으로 다시 시작하려 한다.
여덟째, 연말에 이어 새해 다짐을 자연스럽게 이어간 일이다.
연말의 다짐이 새해의 부담이 되지 않도록, 욕심내지 않았다. 이어갈 수 있는 만큼만 계획했다. 너무 많은 욕심을 내지 않고, 세부적으로 내가 계획할 것을 실행할 수 있을 정도로 계획했다. 다짐은 거창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아홉째, 2026년을 간략하게 계획한 일이다.
빽빽한 목표 대신 방향만 정했다. 무엇을 더 하겠다는 결심보다, 무엇을 놓치지 않겠다는 다짐을 적었다. 삶은 계획보다 지속에 가깝기 때문이다. 많은 걸 계획하고 실행한다고 해서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이제 제 나는 안다.
마지막으로, 가족과 함께 맛있는 음식을 먹은 일이다.
아들이 기숙사에 들어가고 나서부터는 주말에 만나도 시간을 맞지 않아, 함께 맛있는 음식을 먹을 일이 없었다. 그래서 함께 맛있는 음식을 먹는 시간이 귀해졌다. 같은 식탁에 앉아 같은 음식을 먹는 일은 생각보다 위대하다. 그 시간만큼은 우리에게 사소하지만 소중한 시간이었다.
이번 여행에서 내가 잘한 일들은 대단하지 않다. 그러나 분명하다. 나는 나와 가족을 조금 더 아끼는 선택을 했고, 그 선택들이 이 여행을 ‘잘 다녀온 시간’으로 남게 했다. 어쩌면 삶도 이와 같을 것이다. 거창한 성공보다, 잘한 하루들이 모여 내 인생이 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멀리 가느냐가 아니라, 멈추지 않고 가느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