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루틴
아침이다. 창밖의 빛은 말없이 번지고, 내가 좋아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나는 그 앞 책상에 앉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하루의 첫 페이지를 연다.
아직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은 이 시간만큼은 나에게 가장 가까운 시간이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책을 펼친다. 손에 익은 종이의 감촉, 펜 끝에서 느껴지는 미세한 떨림.
오늘도 독서와 필사를 한다.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도, 무언가를 증명하기 위한 것도 아니다. 다만 이 시간을 놓치면 하루가 아닌 나 자신을 잃어버릴 것만 같아서 나는 다시 이 자리로 돌아온다.
거창한 시작은 없다. 결심은 늘 조용하고, 다짐은 눈에 띄지 않는다. 대신 반복이 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반복, 그러나 나를 가장 나답게 붙잡아주는 시간.
나는 대단한 사람이 아니다. 빠르게 성공하는 법도 모르고, 남들 앞에서 당당하게 말할 이야기도 많지 않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아닌 얼굴로 인생을 흘려보내고 싶지도 않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조심스럽게 나를 이어 붙인다. 하루를, 문장을, 마음을.
하나라도 놓치면 모든 것이 와르르 무너질까 봐 나는 매일 같은 방식으로 나를 지켜낸다. 살다 보면 가끔은 내가 걷는 이 길이 너무 느린 건 아닐까 불안해진다.
모두가 앞서 달려가는 것 같은 날, 나는 여전히 제자리에 서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럴 때마다 마음은 조급해지고 괜히 나 자신을 다그치게 된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속도를 높인다고 해서 방향이 바로잡히는 것은 아니라는 걸. 그래서 나는 결과보다 방향을, 속도보다 지속을 믿어보기로 했다.
조금 늦더라도 끝까지 걸어갈 수 있는 쪽을 선택한다. 이 길이 돌아가는 길일지라도,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 길일지라도 괜찮다고. 그 시간마저 나의 일부라고 나는 스스로에게 말해준다.
아직 꽃은 피지 않았다. 그러나 땅속에서는 분명 보이지 않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은 피기 전에 먼저 견디는 시간을 통과해야 하니까.
오늘도 나는 남과 나를 비교하지 않는다. 서두르지 않고, 조바심 내지 않는다. 내 속도에 맞게 한 문장씩, 한 걸음씩 나아간다. 이 글은 눈부신 성공의 기록이 아니다. 단숨에 바꾼 이야기들도 아니다. 다만 멈추지 않기 위해 선택한 하루들, 포기하지 않기 위해 붙잡았던 순간들, 그리고 아직 피지 않았지만 분명히 자라고 있는 시간들에 대한 기록이다.
언젠가 나에게도 꽃이 피는 날이 오겠지. 그날이 언제인지 몰라도 괜찮다. 지금 이 자리에서 조용히 살아내고 있는 이 시간이 이미 충분히 의미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