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아있다고 느낀 순간

by 민쌤

내가 살아있다고 느낀 순간



내가 살아있다고 느낀 순간은 언제였을까.
질문을 받은 뒤 한참을 가만히 앉아 있었다. 특별한 성취나 극적인 사건을 떠올려 보았지만, 의외로 내 마음은 늘 같은 곳으로 돌아왔다. 여전히 나는 아이를 마주할 때 살아 있음을 느낀다.


자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이야기일 것이다. 아이가 아프지 않고, 자기 몫의 하루를 묵묵히 살아내며 잘 지내는 모습을 바라볼 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아, 나는 지금 잘 살고 있구나. 소리 없이 가슴 안에 내려앉아 하루를 버틸 힘이 된다.


그렇다고 내가 아이에게 모든 감정을 걸어두고 사는 사람은 아니다. 아이를 지나치게 관리하거나 앞서 나가 끌어당기는 엄마도 아니다. 늘 한 발 뒤에서 지켜보는 사람, 그 자리를 지키려고 애쓰는 사람에 가깝다. 필요 이상으로 간섭하지 않으려 노력하고, 아이의 세계를 존중하려고 마음을 다잡는다. 그것이 쉽지 않다는 걸 알기에, 더더욱 조심스럽게 거리를 유지한다.


아이와 함께한 모든 순간을 기억할 수는 없다. 하지만 몸이 먼저 기억하는 장면들이 있다. 손을 잡고 걷던 길의 온기, 밥을 먹이며 나누던 짧은 대화, 별일 없는 하루 속에서 스쳐 지나간 웃음들. 정확한 날짜와 상황은 흐릿해졌지만, 감정은 남아 있다. 그 기억들을 떠올리기만 해도 나도 모르게 입가에 웃음이 번진다. 그때마다 나는 내가 아직 살아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지금은 고등학교 2학년이 된 아들은 묵묵하고, 여전히 귀엽고, 가끔은 차갑다. 매일 같은 모습으로 나를 자극했다면, 혹은 늘 갈등과 소음 속에 있었다면, 어쩌면 나는 평범하게 살아 있다는 감각을 느끼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 가족은 서로에게 과하지 않은 온도로 곁을 지킨다. 친구처럼 허물없지는 않지만, 불편하지도 않은 관계. 그 정도의 거리에서 우리는 사랑을 유지한다.


내가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감각, 가족을 위해 음식을 준비하고, 좋은 곳을 떠올릴 때 가장 먼저 그들의 얼굴이 스치는 이유도 결국 여기에 있다. 내가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라는 사실, 그리고 그 존재 이유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는 확신. 그것이 나를 오늘로 데려온다.


앞으로의 삶이 어떤 모습일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바라는 것이 있다면, 우리 가족 안에서 평화와 사랑이 오래 공존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특별하지 않아도 좋다. 다정하지 않은 날이 있어도 괜찮다. 그저 내가 살아갈 이유들이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계속 생겨났으면 좋겠다. 그것이면 충분하다.


“삶의 의미는 거창한 사건이 아니라, 누군가의 하루 속에 조용히 존재하는 데 있다.”
_알베르 카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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