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연락이 차단된 사람이 있나요?
살다 보면 수많은 사람들이 스쳐 지나간다. 어떤 인연은 잠깐 머물다 사라지고, 어떤 인연은 오래 남아 마음 한쪽에 자리를 잡는다. 내 휴대폰 속에는 그런 사람들의 이름이 아직도 남아 있다. 이미 멀어진 사람도 있고, 다투고 끝난 사람도 있다. 그래도 나는 쉽게 연락처를 지우지 않는다.
아이러니하게도 이유는 단순하다. 누군지 알아야 전화를 받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 한 사람, 연락처와 메신저를 모두 차단한 사람이 있다. 고등학교 시절 가장 가까웠던 친구다.
그 친구는 조용한 아이였다. 말수가 많지 않았고, 표정도 크게 드러내지 않는 편이었다. 그런데 가끔 웃을 때면 이상하게도 귀여운 느낌이 있었다. 우리는 특별할 것 없는 학창 시절을 함께 보냈다. 같이 웃고, 같이 밥을 먹고, 별것 아닌 이야기로 시간을 흘려보내던 친구였다. 그때의 우리는 서로를 어렵게 생각하지 않았다.
문제가 시작된 것은 각자의 삶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뒤였다. 결혼을 하고, 생활이 달라지고, 각자 감당해야 할 시간이 생기면서 조금씩 균열 같은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느 날 친구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자신은 무당팔자를 타고났고, 가끔 귀신이 보이기도 하고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고.
처음 들었을 때는 그저 담담하게 넘겼다. 세상에는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일들도 많으니까. 하지만 그 이야기는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몇 번이고 반복되었다.
어느 날 그 친구가 우리 집에 놀러 왔다. 평소 술을 전혀 마시지 않던 아이가 소주를 사달라고 했다. 나는 고기와 소주를 사주었다. 그런데 친구는 갑자기 마치 굶주린 사람처럼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작고 마른 체구의 친구였다. 평소에는 많이 먹지도 않는 아이였다. 그 모습이 낯설 정도였다. 놀란 눈으로 바라보는 나에게 친구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지금 할아버지가 와서 먹는 거야.”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음이 복잡해졌다. 무섭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이상하게도 안쓰러웠다. 그래서 나는 그 친구를 밀어내지 못했다. 가끔 만나 밥을 먹고 술도 사주며 시간을 보냈다. 어쩌면 그때의 나는 친구를 도와주고 있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친구의 모습은 점점 달라졌다. 전화는 점점 잦아졌고 내용은 점점 이해하기 어려워졌다. 알 수 없는 이야기들이 이어졌고 대화는 점점 길어졌다.
어느 순간부터는 전화벨이 울리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답답해졌다. 나는 지쳐가고 있었다. 미안한 마음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결국 나는 친구의 연락을 차단했다. 연락처는 지우지 않았다. 그저 차단만 했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거리였다.
사람 사이에는 서로를 지켜주는 거리가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너무 가까워지면 상처가 되고, 너무 오래 붙잡고 있으면 둘 다 무너질 수도 있다는 것을.
가끔 그 친구가 떠오른다. 무표정한 얼굴로 웃던 모습, 학창 시절 함께 걷던 길, 아무 이유 없이 웃던 시간들. 보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다.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살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하지만 다시 연락할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것이 나에게도, 그 친구에게도 더 나은 선택일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그저 바랄 뿐이다. 어딘가에서 조용히 잘 살아가고 있기를. 아프지 않기를. 누군가에게 상처받지 않기를. 그리고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잃지 않고 잘 지켜내며 살아가고 있기를 바란다. 멀리에 있더라도, 함께 할 수 없어도 그저 그렇게 잘 살고 있어 주기를.
“모든 인연을 끝까지 지켜야 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인연은 놓아줄 때 비로소 서로를 지킬 수 있다.”
나는 그날 친구를 버린 것이 아니라 서로의 삶을 지키기 위해 한 걸음 물러난 것이라고 믿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