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콘서트_양원근 작가 편

by 민쌤

북콘서트




양원근 작가님의 북콘서트에 다녀왔다. 서울에 가는 일은 언제나 마음먹기 쉽지 않다. 거리도 멀고, 하루의 시간을 거의 다 내어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만남은 이상하게 마음을 끌어당긴다. 이번 북콘서트도 그랬다. 하지만 시작부터 순탄하지는 않았다.


연휴를 앞두고 기차표를 구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KTX는 원하는 시간대가 모두 매진이었고, 새마을호 역시 대기예약뿐이었다. 그래도 혹시 모른다는 마음으로 예약 대기를 걸어 두었다. 사실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안 되면 다음에 가면 되지.”


그렇게 생각하며 마음을 내려놓았는데, 며칠 뒤 기적처럼 자리가 하나 생겼다. 그 작은 좌석 하나가 마치 누군가 나를 부르는 신호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서울에 갈 수 있게 되었다.


아침 8시 30분.
집을 나섰다. 아직 하루가 시작되기 전의 공기 속에서 가벼운 긴장과 설렘이 함께 있었다. 기차역으로 향하는 길, 그리고 서울역까지 이어지는 긴 시간 동안 나는 마포나비 독서모임 줌강의를 귀동냥하며 출발했다.


서울까지는 네 시간이 훌쩍 넘는 여정이었다. 강연은 오후 두 시부터 시작이었다. 이미 늦을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도 마음은 이상하게 포기하지 않았다. 전철을 갈아타고, 계단을 뛰어 올라가고, 숨을 고르며 다시 걸었다. 그렇게 거의 뛰다시피 해서 도착했을 때 시계는 세 시를 향하고 있었다. 강연장의 문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다행히 강연은 계속되고 있었다.


두 시 강연을 놓친 것은 아쉬웠지만, 세 시부터 이어진 이야기는 이전에 내가 보았던 강의와는 조금 다른 분위기였다. 그동안 함께 공부하면서도 한 번도 듣지 못했던 이야기들이 조용히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은 내 마음속 어딘가를 건드렸다.


작가님의 어린 시절 이야기였다. 힘들었던 시간, 외로웠던 순간들, 그리고 그 시간을 지나온 과정.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있는 사람들 중 한 명에 불과했지만 이상하게도 마음 깊은 곳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마치 오래된 문이 천천히 열리는 것처럼. 그러다 어느 순간, 눈물이 흘렀다. 조용히 닦아내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사람은 누구나 상처를 가지고 살아간다. 겉으로 보이지 않을 뿐이다. 그날 나는 그 사실을 다시 한번 느꼈다.

우리는 종종 누군가의 현재 모습만 보고 그 사람의 인생을 판단한다. 성공한 모습, 단단해 보이는 태도, 여유로운 말투. 그런 것들만 보고 그 사람의 삶이 늘 그랬을 것이라 짐작한다. 하지만 그건 너무 단순한 생각이다.

누구도 쉽게 살아오지 않는다. 그리고 누구도 상처 없이 어른이 되지 않는다.


나는 작가님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으며 자연스럽게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겹치는 장면들이 있었다. 완전히 같지는 않지만 마음의 결이 닮은 순간들이 있었다. 그 순간 내 안에서 작은 내가 보였다.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나였다. 그래서 더 눈물이 났다. 사실 서울에 올라오는 길 내내 몇 번이나 생각했다.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표도 어렵게 구했고, 이동 시간은 길었고, 몸도 조금 지쳐 있었다.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돌아보면 늘 그렇다. 힘들게 간 자리일수록 돌아오는 길이 따뜻하다. 이번 북콘서트도 그랬다.


만약 내가 포기했다면 이 감정도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통해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경험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강연이 끝나갈 무렵, 예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났다. 작가님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순간 조금 놀랐다. 3년 동안 뵈어 왔지만 노래를 들은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조용히 숨을 죽였다. 그리고 반주가 흘러나왔다. 그 순간 나는 다시 놀라고 말았다. 노래는 ‘바위섬’이었다. 그 노래는 나에게 아주 특별한 의미가 있다. 20년 전, 첫째 아이를 떠나보냈던 시간. 그때 나는 그 노래를 자주 들었다. 그리고 많이 울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그 노래를 듣지 않게 되었다. 나에게는 일종의 금지곡이 되었다. 그런데 그 노래가 그 자리에서 흘러나온 것이다.


화면에 가사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가슴 어딘가 깊은 곳에 묻어 두었던 기억이 갑자기 문을 열고 나왔다. 오랜 시간 꺼내지 않았던 감정들이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나를 찾아왔다. 나는 작은 목소리로 노래를 따라 불렀다. 오랜만이었다. 정말 오랜만이었다.


벌써 2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 시간 동안 나는 그 기억을 조심스럽게 덮어 두고 살아왔다. 물론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그저 마음의 가장 깊은 곳에 놓아두었을 뿐이다. 그날 나는 그 기억을 다시 바라보았다.


슬프고 아픈 기억. 하지만 그것 역시 내 삶의 일부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아픔을 숨기려 한다. 괜찮은 척하며 지나가기도 한다. 때로는 아예 없는 일처럼 외면하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 그 감정들은 사라지지 않는다. 내 안 어딘가에서 조용히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생각했다. 아픈 기억도 내 삶의 일부라고. 그것을 밀어내기보다는 조금은 안아 주어야 한다고. 그래야 내가 나를 덜 아프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번 북콘서트는 단순한 강연이 아니었다. 한 사람의 인생을 통해 우리 모두의 삶을 돌아보는 시간이었다. 누군가의 이야기 속에서 내 이야기를 발견하는 시간이었다. 그래서 더 깊이 남았다.


양원근 작가님은 참 따뜻한 사람이다. 말투도, 시선도, 사람을 바라보는 태도도 그렇다. 그리고 어딘가 외롭다. 그 외로움이 사람을 더 다정하게 만드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나도 그렇게 나이 들고 싶다고. 지적이고, 온화하고, 그리고 다정한 사람으로. 누군가에게 편안함을 주는 사람으로.


시간이 흐른 뒤 나의 이야기도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가 된다면 좋겠다. 서울에서 돌아오는 길, 나는 오래된 눈물을 조금 내려놓은 기분이었다.


“상처는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그것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울 뿐이다.”

_헤르만 헤세


어쩌면 우리는 모두 각자의 바위섬 위에서 조용히 삶을 견디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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