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는 구불구불 돌아 걸어가는 길
그해 여름은 비가 지독했다. 장맛비가 자주 방으로 밀고 들어왔다. 축축한 등이 먼저 알았다. 그럴 때면 책상 위로 올라가 쪼그려 앉곤 했다. 물이 차오르는 모양을, 빨간 쓰레받기를 들고 물을 걷어 내는 엄마를 하릴 없이 바라보았다. 언제나 물이 이겼고, 나 대신 책이 울었다. 이제는 다시 구할 수 없는 유년의 책들은 그런 식으로 수장되었다. 다음 날에는 학교에 가지 않았다. 아니다, 가지 못했다. 문에서 세 계단, 다시 두 계단을 딛고 오르면 공기가 달랐다. 햇볕의 틈을 찾아 젖은 책을 널어놓으며 신에게 빌었다. '2층으로 이사 가게 해 주세요.'
- 장일호 에세이, <슬픔의 방문>, 낮은산, p.47-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