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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돌의 책 글 여행 Apr 24. 2023

집에서 집으로

누군가는 구불구불 돌아 걸어가는 길



그해 여름은 비가 지독했다. 장맛비가 자주 방으로 밀고 들어왔다. 축축한 등이 먼저 알았다. 그럴 때면 책상 위로 올라가 쪼그려 앉곤 했다. 물이 차오르는 모양을, 빨간 쓰레받기를 들고 물을 걷어 내는 엄마를 하릴 없이 바라보았다. 언제나 물이 이겼고, 나 대신 책이 울었다. 이제는 다시 구할 수 없는 유년의 책들은 그런 식으로 수장되었다. 다음 날에는 학교에 가지 않았다. 아니다, 가지 못했다. 문에서 세 계단, 다시 두 계단을 딛고 오르면 공기가 달랐다. 햇볕의 틈을 찾아 젖은 책을 널어놓으며 신에게 빌었다. '2층으로 이사 가게 해 주세요.'
- 장일호 에세이, <슬픔의 방문>, 낮은산, p.47-48






 생애 집은 방 네 칸에 화장실이 두 개, 시야가 확 트인 마당 넓은 집이었다. 지방 도시의 면 소재지에서도 한참을 걸어 들어가는 시골집이었지만 어린 나에게는 작은 왕국이나 다름없었다. 이삼십여 가구가 모여 살았던 작은 동네에도 큰 집, 작은 집, 땅 몇 마지기를 소유했느에 따라 잘 살고 못 사는 서열존재했다. 그중에서도 리 집은 동네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부자 축에 들었다. 빈 손으로 시작해 논밭떼기를 억척스럽게 장만했던 할머니 덕분이었다. 


그 시절에 여닫이 문이 있고 다리로 지탱하는 텔레비전이 우리 집에 동네에서 두 번째로 들어왔다. 내성적이고 허약했던 나는 아이들 에서 존재감이 없었는데 그날 이후로 '텔레비전 있는 집 아이'로 승격했다. 이른 저녁이면 아이들이 만화를 보기 위해 우리 집 툇마루 앞으로 모여들었다. 부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아이들의 시선이 멋쩍었던 나는  안방 구석에 을 숨기면서도 내심 우쭐다. 그 에도 다이얼 전화기, 괘종시계, 경운기 등 신문물이 다른 집보다  발 앞서 들어왔다. 동네 사람들은 아버지에게 크고 작은 도움을 받으러 우리 집 문턱을 수시로 넘나들다. 기계를 다루거나 고치는 일능숙했던 아버지는 동네에서 꼭 필요한 사람이었지만 농사일이 적성에 맞지 않아 일하다 말고 산 보는 일이 잦았다고 다.

 

나는 할머니와 아버지가 만들어놓은 작은 왕국에서 13년을 살다가 '어마어마한' 공간 이동을 했다. 그에 앞서 부모님선발대로 서울에 올라가 생활하며 명절에 손님처럼 다녀가일이 몇 해 반복되었다. 어느 해에는 서울 가는 부모님을 배웅하고 돌아온 할머니가 취기에 나를 끌어안고 우셨다. '이 어린것을 두고' 간다며 눈물짓는 할머니 품에 안겨 나도 덩달아 울었다. 부모님과 떨어져 지낸 기간이 이삼 년이었는지 삼사 년이었는지 정확하지 않지만 그리 길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서울로 전학 오면서 난생처음 '집주인'이라는 단어를 알았다. 한 집에 두세 집이 사는 게 일반적인 다세대 주택에 세 들어 살고 있 거라 했다. 마음 한가득 시골집을 품고 있었기 때문에 서울에 우리 집이 없다는 사실이 그다지 마음 쓰이 않았다. 도시 생활이 마냥 신기할 따름이었다. 고향 친구들하고 편지를 주고받으며 새로운 문화 대한 신기함을 전달하느라 마음이 분주다. '매일 버스를 타고 학교에 다녀.' '아이들이 서울 말씨를 쓰는데 텔레비전에서 들었던 말투 그대로야.' '지난 주말엔 63층 빌딩에 있는 수족관을 구경하고 왔.' 향수병에 시달리며 편지를 붙들고 지내던 시간도 차츰 줄어들었다. 도시 생활이 더 이상 새롭게 다가오지 않으면서 그제야 내가 사는 환경이 눈에 들어왔다.


서울살이 3년 동안 다락방 딸린 단칸방에서 출발부모님을 따라 네 번의 이사를 했다. 시골집을 정리하고 서울 언저리에 내 집마련을 한 부모님 덕분에 나는 강산이 변하는 세월 속에 서울특별시민으로 뿌리내렸다. 돌아보면 숨 가쁘게 지나온 시간이었지만 부모님의 노고 내 몸을 얹었을 따름이었다. 그 후로도 부모님은 간격을 두고 두 번 더 이사했다. '사대문 안에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시던 대로 서대문구에 마지막 집을 마련했다. 이제는 한 해 전에  집을 떠나 요양병원에서 기억을 잃어가고 다. 한 계단 한 계단 올라서기 위해 끊임없이 열망하며 집에서 집으로 삶을 이어왔을 아버지가 지나온 길을 나도 길을 내며 고 있다. 누군가는 직선으로 걸어가는 길, 누군가 구불구불 돌아 걸어가는 길, 집에서 집으로 이어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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