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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돌의 책 글 여행 Sep 16. 2021

'술'은 위로가 되고 사랑이 된다

<봄밤>, 《안녕 주정뱅이》 권여선 소설집, 창비, 2016


"산다는 게 참 끔찍하다. 그렇지 않니?"(8쪽) 요양원으로 동생 부부의 면회를 가는 언니 영선이 운전대를 잡은 동생 영미에게 던진다. 권여선의  단편소설 '봄밤'은 이렇게 시작한다. 가슴이 턱 막힌다. 동생 부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요양원'이라는 단어가 삶의 무게를 짓누르지만, 결코 외면할 수 없는 질병과 고통을 직면하게 하는 소설이다.



<봄밤>은 권여선 소설집 《안녕 주정뱅이》(창비, 2016)에 담긴 7편의 단편소설 중 한편이다. 권여선 작가는 장편소설 《푸르른 틈새》로 제2회 상상문학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그 외에도 이상문학상, 한국일보문학상 등 다수의 수상 이력이 있다. 권여선 작가의 작품 속에는 '술'이 자주 등장한다. 작가 자신이 애주가여서인지 술과 술자리를 자연스럽게 묘사한다.



이 소설은 술을 소재로 한 중년의 애환과 사랑을 다룬다. 주인공 영경과 수환은 웨딩홀에서 신랑 신부의 친구로 참석해 뒤풀이에서 만난다. 술에 취해 나가떨어진 영경을 수환이 업고 집까지 바래다주면서 인연이 시작된다. 첫 번째 결혼에 실패하고 상처를 안고 살아온 영경과 수환은 그날 이후 매일 저녁에 술을 마시고 업고 바래다주는 일을 반복하다 살림을 합친다. 12년이 흘러 수환은 류머티즘이 합병증으로, 영경은 알코올 중독과 간경화로 함께 요양원에 입소한다.



수환은 처음 영경을 만나던 봄날을 생각했다. 웨딩홀에서 사람들에 섞여 있을 때부터 그는 영경을 주목하고 있었다. 비록 화장을 하고 있었지만 영경의 눈가는 쌍안경 자국처럼 깊게 파였고 볼은 말랑한 주머니처럼 늘어져 있었다. (...) 그녀를 업었을 때 혹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나지 않을까 염려될 정도로 앙상하고 가벼운 뼈만을 가진 부피감에 놀랐던 기억이 있다. 그 봄밤이 시작이었고, 이 봄밤이 마지막일지 몰랐다."(32쪽)



이들에게 '봄밤'은 처연한 사랑의 시작이자 마지막이다. 세상은 공평하지 않다. 누군가는 죽어라고 열심히 살아도 그 끝이 낭떠러지인 사람이 있다. 중년 부부 영경과 수환의 삶이 그렇다. 그들을 통해 고단한 삶을 살아내는 사람들의 모습이 함께 보인다. 작은 성공에 이은 실패, 이혼, 배신 등 불행은 연이어 불행을 업고 온다. 이들에게 '술'은 아픔을 잠시나마 잊게 해주는 약이다. 고단한 삶을 위로해주는 벗이다. 봄밤, 소리 없이 남녀 사이를 오가며 '술'은 위로가 되고 사랑이 된다.



<봄밤>은 비극적이고 슬픈 중년 부부의 사랑을 아름다운 서사로 풀어낸다. 이들의 사랑에 삶의 애환이 가득 담겨있다. "사는 게 참 끔찍하다. 그렇지 않니?"라고 말하던 타인(언니)의 시선과 달리 영경과 수환은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고 곁을 지켜준다. 불행 끝에 찾아온 사랑을 행운이라고 여기며 소중히 다룬다. 서로를 위로하고 배려하며 상처를 봉합해가는 그들의 사랑을 불행하다고 할 수 있을까. 행복은 상대적인 가치가 아니라 절대적인 가치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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