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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RCO김 Jun 28. 2016

빗소리 그리고 에스프레소.

유럽여행의 추억


"형님 사진쫌 제대로 찍어주세요!"


이번 여행을 하며 룸메형님에게 매번 건네던 말이다. 형님은 노출도 초점도 없는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사진을 찍을 때는 항상 카메라를 응시하지 않았다. 형님은 사진기를 쳐다보는 모습이 부끄럽다고 했다. 여행을 하며 간혹 룸메가 되는사람들은 날 어려워한다. 여행가이드와 한방을 쓰는 것을 처음엔 좋아하지만 방에 들어오자 말자 쉬는 공간이 아닌 퇴근 후의 내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줘야 하고 그 모습을 본사람들은 날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이번 여행에서는 룸메형님이 배려를 참 많이해줬다. 그리고 술도 참 좋아했다. 술보다는 사람을 더 좋아하는 듯했다. 내방, 아니 우리 둘방에서는 다른 사람들과 새벽녘까지 늘 술자리가 이어졌다. 침대위에 여러명 둘러 앉아 술을 먹어야 하니 한명이라도 화장실간다고 움직이면 술이 쏟아졌다. 형님과 아이디어를 내서 호텔 벽에 걸려있는 그림을 가져다가 '술상'을 만들어 먹었다. 그렇게 여행은 이어지고 있었다.


베니스에 간날 날씨가 흐렸다. 배가 고파서 피자 한조각을 먹고 있는데 팀원중 따님과 여행오신 아버지가 오늘 저녁을 사신다고 한다. "그래, 비싼데로." 난 속으로 이렇게 말하고 잠깐의 자유시간을 준 뒤 식당을 섭외했다. 10명이 들어갈 식당은 충분했고 그렇게 식사를 즐겼다. 맛있는 식사와 시원한 맥주는 더할 나위 없이 즐거웠다.


아버님은 여행지에서는 따님의 아버지였지만 회사에는 부장님이었다. 부장님의 말에 따르면 늘 1차를 사시고 커피한잔을 사고 자리를 비켜준단다. 참으로 멋지신 분이다. 그렇게 우리는 커피를 마시러 나갔다. 아니나 다를까 비가 너무 많이 내렸다. 산마르코 광장 귀퉁이에서 비를 피하게 해두고 커피샾을 찾아나섰다.


한 잔에 6유로.


먹어야 하나 말아야하나.. 한국에서는 5~6000원 커피도 그냥 먹는데 비싼식당을 안내한지라 마음이 쓰였다. 그렇게 비를 맞으며 찾으니 그냥 아무데나 가자고 하신다. 신발이 다 젖어버리고 우산을 썼지만 메고 있던 가방이 다 젖어 들었다. 그렇게 정말 아무데나 커피를 먹으러 들어갔다. 둘러 앉아서 시킨 에스프레소.


빗소리가 정말 좋았다. 하지만 비를 맞으며 이곳까지 데리고 왔기에 사람들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었다. 맛있게는 먹었지만 여행지까지 와서 이렇게 비맞게 한 부분이 왠지 미안하게 다가왔다.

이것도 형님의 사진. 형님은 초점은 없다. 옆에서 형님 카메라를 보며 사진쫌 제대로 찍으라고 또 한소리한다.

이렇게 우리의 빗속의 커피타임은 끝이 났다.


한국에 돌아와 서울에서 여행갔던 사람들끼리 만나서 술자리를 가졌다. 이야기를 하다가 어디가 제일 좋았냐는 질문이 나왔다. 에펠탑?날씨가 좋았던 융프라우?콜로세움?


그들의 답은 "빗소리 들으면서 먹었던 거기 있자나요" 다.


그래 거기.예상치 못한 답변이 나와 잠시 할 말을 잃었다. 나는 벌써 닳아버린걸까. 무슨답을 기대하고 있었던걸까. 사람들의 입에서 나온 그이야기를 곱씹어 생각해보니 그 때 커피한잔을 먹는 모습들이 행복해 보였단걸 알았다. 


여행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을 보느냐 보다 누구와 함께 하느냐라고 하던데. 그 축축하게 젖은 몸을 이끌고 먹었던 같이 이야기 나누었던 그곳이 이번여행의 하이라이트 였던 것이다.


부산에 내려와 형님의 사진을 받았다. 형님 사진은 특히나 밤에보면 더 엉망이다. 근데 자꾸만 보니까 좋다.

형님도 좋고. 사진도 좋고. 그날의 기억이 한장에 정리되어 있어서 더 좋다.


나도 글을 잘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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