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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RCO김 Apr 06. 2017

수상한 버스

이웃사람들

출퇴근 시간은 20분 남짓. 늘 버스를 이용한다. 간혹 술을 먹는 날이나 먹었던 날에는 택시를 타기도 한다.

택시는 편하고 버스는 정겹다. 일반시민이다. 그렇게 늘 버스를 이용한다. 늘 같은 버스를 타지만 늘 사람은 다르다. 비도 추적추적 내리는 날 굽굽한 버스 안에서 나는 여행을 떠났다.


#1 할머니의 머리핀

오후 3시경, 회사를 일찍 마치고 집에 가는 날이면 유독 어르신들이 많다. 어딜 그렇게들 다녀오시는지 꽃단장을 하신 분, 보따리를 한아름씩 안으신 분등 늘 어르신으로 북적인다. 그렇게 그날도 할머니들로 북적였고 난 유독 한 할머니의 머리에 시선이 꽂혔다. 할머니들의 전유물인 곱슬머리에 까만 딱 삔(?)이 하나 꽂혀 있었다. 

예전에 파리의 카페에 홀로 앉아서 깊이 생각한 일 중 하나가 '그래 엄마도 여자인데."였다.

젊은 사람의 눈에는 세월이 흘러 할머니가 된 분이지만 할머니는 아직도 여자임에 틀림없었다. 난 왜 그런지 내 눈으로 보기 전엔 믿지 못한다. 예를 들어 할머니는 원래 할머니였을 것이고, 엄마는 원래 엄마였고 하는 등의.

그런데 그 할머니의 딱삔을 보자 , 그리고 그 할머니가 웃으며 다른 할머니들과 이야기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자

그분들의 소녀 때의 모습이 같이 보였다. 그분들도 누군가의 사랑스러운 딸이었고, 존경받는 엄마고, 누구보다 아끼는 누군가의 아내일 텐데. 난 내 눈으로 보지 못한 것을 믿지 못하는 성격으로 내 눈으로 보았다.

그리고 반성했다. 그리고 바라보았다. 바라보고 바라보았다.


#2 다른 사람

대학교 시절 봉사동아리에 들어서 봉사를 한 적이 있다. 장애인분들을 모시고 하는 여행이었는데 몸이 불편하셔서 여행을 못하는 분들을 위한 그런 여행이었다. 버스에 타는 것부터가 고행이고 여행이신 분들은 바리바리 맛있는 것들을 싸들고 오셔서 늘 우리를 챙겨주셨다. 식당에서 한 아주머니가 날 불렀다. "화장실 가게 쫌 도와줘"

밥을 먹던 중이었고 바로 화장실 앞에서 날 부르는 게 귀찮게 느껴졌었다. 그때 아주머니의 시선은 아래를 향해 이었고 그 시선에는 2cm가량의 문턱이 있었다. 근육이 불편하셔서 그 문턱조차 혼자 힘으론 넘을 수 없는 분이었다. 난 아직도 내 인생의 2cm 문턱은 세상에서 가장 높은 문턱으로 남아있다. 그렇게 주변에는 우리와 다른 사람들이 있다. 그날 버스에도 조금 다른 분이 계셨다. 비가 오는데 창문을 열어놓고 소리를 지르고 있었고 조용한 버스 안에서 크게 울렸다. 그분의 부모님으로 보이는 분은 연신 죄송한 눈빛을 보냈고 버스 안에서 모든 사람들은 그 눈빛을 눈빛으로 대답했다. 그 사람은 보통사람과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게 맞았고 다름을 인정해 줄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나 또한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3 외국인

유럽 출장을 일 년에 반이상을 다니며 나는 외국인이며 내국인인 생활을 하고 있다. 어디가 한국인지 어디가 유럽인지 술만 먹으면 헷갈린다. 최근 이상한 술버릇이 생긴 게 술이 아주 만취하면 하지도 못하는 영어를 하며 주변의 취했냐는 질문에 "NOT YET!!"만 반복한단다.. 큰일이다. 진상 내국인이 되어버렸다. 

그날의 버스에는 외국인들이 많이 타고 있었다. 내가 사는 곳에는 큰 대학교도 있어서 외국인들이 쫌 많이 살 긴한다. 러시아계로 보이는 그분은 큰 꽃을 안고 있었다. 어디서 받았을까. 어떻게 저렇게 애지중지 가지고 다닐까. 외국에 가면 외국인으로 보이는 나는 외국에서 저런 꽃을 받으면 어떻게 할까. 온갖 잡생각이 다 들었다. 

어느 프로에서 외국에서 인종차별을 당해 한국으로 왔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고 어느 프로에서는 다문화가정 아이들이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나는 유럽에서 인종차별을 당하며 온갖 욕을 듣고 때론 침을 맞기도 한다. 그날의 외국인이 안고 있던 꽃을 보며 외국인이 꽃을 안고 있다고 해서 신기하게 쳐다본 그 자체가 내가 해버린 인종차별이란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 짧은 20분 동안 멀리 떨어진 곳에 여행 가서 받던 그런 느낌들을 받았다. 그 버스는 집을 향해 가고 있었지만 내가 모르는 어디로 데려가는 느낌. 그날따라 누군가가 적어준 명언이 생각났다.

"홀로 멀리 여행을 떠나라, 그곳에서 가장 그리운 사람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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