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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성 Feb 01. 2018

사랑은 그 사람의 최선을 구하는 것

<라라랜드> 리뷰


흔들리는 청춘의 사랑


미아는 배우 지망생이며 할리우드 커피숍에서 일을 하며 꿈을 쫓는 여인이다. 세바스찬은 자신의 예술성을 고수하고 싶지만 세상 사람들은 그의 재즈 연주를 응원해주지 않는다. 두 사람은 자신의 꿈을 쫓는 아름다운 청춘이다. 그들의 사랑은 정열적이기 보다 고요한 사랑이다. 미아와 세바스찬의 사랑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아름다운 느낌을 준다. 두 사람은 사회에서 안정된 직업을 가지고 있지도 않고 불안한 존재들이다. 미아는 오디션을 볼 때마다 떨어지고, 세바스찬은 자신의 음악을 고수하고 싶지만 사람들은 그에게 관심을 가져주지 않고 오히려 시류에 맞는 음악을 해야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까지 한다. 그들이 꿈의 벽에 부딛혀 좌절하고 절망할 때, 세바스찬을 붙잡아 준 것은 미아였고, 미아가 괴로워 할 때 붙잡아 준 것은 세바스찬이었다. 미아와 세바스찬의 사랑의 본질은 바로 상대방이 꿈을 포기하는 것이었다. 미아와 세바스찬이 서로 사랑에 빠진 것은 서로가 특별했기 때문이었다. 세바스찬이 자신이 고수하던 음악성을 포기하고 사람들이 원하는 음악을 해서 안정적인 삶을 살려고 했을 때 조언을 해준 것은 미아였다. 미아의 눈에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의 꿈을 저버리는 것,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포기하는 것은 그 사람의 존재를 무너트리는 것이었다. 또한 미아는 자신의 극장에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보러 오지 않은 것에 대해 큰 충격을 받고 괴로움에 빠진다. 그때, 세바스찬은 미아를 절망의 늪에서 그녀의 손을 잡아 꺼내준다. 청춘의 사랑이 그 어떤 사랑보다 아름다운 것은 두 존재 모두가 흔들리는 갈대 같기 때문이다. 서로가 들판의 바람에 휘날리기도 하지만 서로가 서로를 지탱해주며 응원하며 사랑하는 것...... 그것이 청춘이 사랑인 것 같다.



꿈과 사랑 사이


미아와 세바스찬의 사랑은 이루어 지지 않는다. 서로가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자신의 길을 걷고 이제 서로가 각자의 길을 걸어야 하는 상황이다. 마치, 기차 역에서 한 사람은 기차에 올라 타서 의자에 앉아 창문을 바라보고, 한 사람은 역에 서서 기차가 떠나지 않길 바라는 모습처럼 말이다. 그렇지만 기차는 떠나야만 하고 이별을 하게 된다. 나는 사랑에는 두 가지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붙잡는 것도 사랑이지만, 어쩌면 끊어내야 하는 사랑도 있다. 세바스찬과 미아는 서로를 위해서 사랑을 끊어낸 것이다. 미아가 오디션에 합격해서 파리로 가게 되었을 때, 세바스찬이 미아를 붙잡고 가지 말라고 행동했다면 세바스찬은 매우 이기적인 사람이었을 것이다. 반대로, 미아가 파리로 떠날 때, 세바스찬을 대리고 갔다면 그것 또한 이기적인 사랑이었을 것이다. 여기서 이기적인 사랑이라는 것은 자신의 꿈과 사랑을 위해 상대방의 꿈이나 이상을 희생시키는 것이다. 미아와 세바스찬이 서로를 붙잡지 않고 쿨하게 보내준 것은 서로를 진심으로 사랑했기 때문이다. 미아와 세바스찬은 자신의 사랑 때문에 상대방이 꿈을 포기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을 것이다. 영화 전반에 걸쳐서 서로가 꿈을 포기할 때마다 서로를 응원하고 일으켜 세운 모습을 보면 이들의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 그들의 사랑이 눈물 나게 슬픈 이유는 서로가 상대방을 존중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사랑은 '상대방의 최선을 구하는 것'이었다. 미아에게 있어 세바스찬은 재즈 클럽을 여는 것이었고, 세바스찬의 경우 미아는 유명한 배우가 되는 것이었다. 둘은 서로의 존재를 인정했기 때문에 서로의 최선을 구한 것이다.


사랑이란, 그 사람의 최선을 구하는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많이 울었다. 그들이 헤어지고 5년이 흘렀다. 미아는 유명 배우가 되었고 결혼도 했으며, 아이도 가지고 있었다. 남편과 미아는 재즈 클럽에 가게 되고 미아는 그곳에서 세바스찬을 보게 된다. 그러면서 미아는 환상을 보게 된다. 세바스찬과 함께하는 미래를 말이다. 함께 파리로 가고, 세바스찬은 유명한 재즈 피아니스트가 되고, 둘이 결혼도 하며 아이도 낳고 재즈 클럽에 세바스찬과 함께 들어가서 의자에 앉는다. 그리고 다시 현실로 돌아오는 미아...... 미아의 남편과 미아는 재즈 클럽을 나가게 되고 마지막 장면에서 세바스찬과 미아는 서로의 얼굴을 본다. 세바스찬이 미소짓자, 미아 또한 미소로 화답하고 재즈바를 나가는 것으로 영화는 막을 내린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대사는 없지만 1분 사이에 수많은 이야기를 우리에게 던져준다. 영화가 해피앤딩이냐 새드 앤딩이냐 하는 논의는 필요 없는 논의다. <라라랜드>는 우리의 삶에서 이상이라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며 함께 꿈을 꾸며 그 사람과 함께 꿈을 이뤄나가는 것이라고 말해준다. 당연히 운 좋은 사람들은 이것을 이루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지 못하다. 현실 속에서 꿈과 사랑 사이에서 선택하는 법은 오는 법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사랑이 이별로 끝났다고 소중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5년 후 미아와 세바스찬은 불안한 삶 속에서 서로를 홀로 설 수 있게 해준 사랑했던 연인이기 때문이다. 사랑이라는 것이 무조건 깨졌다고 나쁜 기억으로 남는 것은 아니다. 서로를 지금의 나로 존재하게 만드는 것은 그들의 순수한 사랑 때문이었다. 우리는 사랑에 대해서 연애를 하다가 결혼까지 하는 것을 진정한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조금 더 넓게 생각하면 사랑하는 사람이 나에게 오고 이별하는 것은, 그 시간에 나에게 필요한 사람이 꼭 오는 것이며 그 어떤 사랑도 헛된 사랑은 아니라는 것이다. 내가 아무 것도 아닐 때, 나를 사랑해주고, 내가 죽고 싶을 때, 나를 살려주고, 용기 없을 때, 내 등을 밀어주고, 홀로 있을 때, 내 옆에 있어주는 그 사랑이 비록 끝났다고 해도 어찌 의미 없다고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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