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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성 Jul 30. 2019

사회의 외톨이가 황제가 되면 일어나는 일

<칼리굴라> 알베르트 카뮈


알베르트 카뮈의 <칼리굴라>는 로마의 황제 가이우스 카이사르를 모티프로 사용한 희곡이다. 칼리굴라는 가이우스 카이사르의 별명으로 '작은 군화'라는 뜻이다. 칼리굴라는 어린시절 아버지와 함께 전쟁터를 함께 돌아다녔고 병정들은 어린 가이우스에게 칼리굴라라는 별명을 지어주었다. 사실 <칼리굴라>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로마 역사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프랑스 사람들의 경우 기본적으로 로마의 역사를 배우기 때문에 이런 사전 지식이 필요 없지만 한국인의 경우 로마의 역사를 알고 모르고에 따라 텍스트 내에서 받아들여지는 정도가 다를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칼리굴라>를 읽기 전에 알아두면 좋은 칼리굴라의 역사


칼리굴라는 로마의 명망있는 장군 게르마니쿠스의 아들이다. 이 당시는 로마의 2대 황제 티베리우스가 통치하던 시기다. 로마는 아들에게 세습을 해주는 구도는 아니었기에 티베리우스 다음 왕은 바로 게르마니쿠스였다. 그러나 게르마니쿠스가 알 수 없는 이유로 급사하게 되었다. 정황상 티베리우스는 자신의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싶어서 게르마니쿠스를 살해했다는 소문이 있었다. 그리하여 게르마니쿠스의 아내는 자신의 남편을 죽인 사람이 티베리우스 황제라는 선동을 한다. 분노한 티베리우스 황제는 게르마니쿠스의 부인을 추방하고 게르마니쿠스의 첫째 아들과 둘째 아들을 로마 사회에서 지워버린다. 즉, 셋째였던 칼리굴라만 살아남았던 것이다. 칼리굴라는 조부모 밑에서 자란다. 그런데 티베리우스의 아들이 사망하게 되고 티베리우스는 사람들이 자신이 배신할까봐 두려움에 떨며 카프리 섬에 첩거를 한다. 티베리우스의 첩거가 이어지자 로마에는 황제는 없어지고 원로원과 민회 그리고 시민들은 불안에 떨며 사회적 갈등은 점점 심화된다. 그러던 중 티베리우스는 칼리굴라를 위시하여 쿠테타가 일어날까봐 칼리굴라를 카프리섬으로 블러들이고 쿠테타와 같은 최악의 상황을 불식시키려고 한다. 칼리굴라는 티베리우스 밑에서 눈치를 보며 수감생활을 한다. 티베리우스는 자신의 손자 게멜루스에게 왕위를 넘겨주고 싶지만 게멜루스는 너무 어렸고 귀족들의 꼭두각시가 될 판이었다. 그리하여 티베리우스는 칼리굴라와 게멜루스에게 공동으로 나라를 통치하라는 유언을 원로원에게 넘기고 사망한다. 그러나, 로마의 황제는 하나이다. 그리하여 근위대장은 원로원을 설득해 칼리굴라가 3대 황제로 등극하게 만들고 게멜루스를 4대 황제 계승자로 세운다. 황제에 오른 칼리굴라는 선정을 배풀며 공공사업도 하며 인기를 얻는다. 그리고 귀향가있던 칼리굴라의 세 누이를 로마로 부른다. 이들이 아그리피나, 리빌라, 드루실라였다. 그러던 중 칼리굴라는 열병에 걸리고 의식을 잃는다. 몇 개월 후 칼리굴라는 깨어나며 자신의 안위에 대해 편집증적으로 변한다. 그리하여 게멜루스와 마크로 근위대장을 살해한다. 칼리굴라는 자신이 배신당할까봐 자신의 아들을 황제로 세우려고 한다. 그리하여 자신의 세 자매와 근친상간을 한다. 로마에서 근친상간은 절대로 해서는 안되는 범죄였다. 그러던 중, 칼리굴라는 제일 사랑하던 누이 드루실라와 아이를 가지게 되나 드루실라는 병에 걸려 죽고 칼리굴라는 우울증에 빠지며 폭정을 휘두르게 된다. 로마의 원로원들을 압박하고 살해하여 로마 귀족들 사이에서 불안이 증폭되어 칼리굴라는 암살당하게 된다.



사회의 외톨이가 절대 권력을 가지게 되면 생기는 일


희곡의 첫 부분은 칼리굴라가 사랑한 누이 드루실라가 사망한 시점부터 시작이 된다. 원로원과 귀족들은 실성한 칼리굴라 때문에 로마 제국이 무너질지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역시 <칼리굴라>는 알베르트 카뮈의 주제의식을 잘 반영하고 있는데 칼리굴라는 실존주의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실존주의는 인간은 죽음 앞에서 자신이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는 존재로 상정하며, 인간은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불안과 절망에서 고민을 시작한다. 카뮈는 인간이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이기에 절망하는 것을 부조리로 보았다. 칼리굴라는 카뮈의 소설 <이방인>의 뫼르소와 닮아 있다. 뫼르소는 프랑스 일반 시민의 입장에서 사회의 부조리에 저항했다면 칼리굴라는 절대 권력을 가진 입장에서 사회와 세상의 부조리에 저항을 한다. <이방인>과 <칼리굴라>는 무대만 다를 뿐이지 비슷한 플롯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비슷한 내용을 굳이 프랑스 시민과 로마 황제로 설정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방인>의 뫼르소는 사회적으로 소시민이고 강력한 정치권력이나 조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아니다. <칼리굴라>는 개인적은 소견으로 사고 실험과 같다. 뫼르소 같이 사회에 무관심으로 저항을 하는 한 개인을 최고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로마 황제의 자리에 놓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라는 생각에서 희곡은 시작된다. 즉, 카뮈는 사회에 저항하는 인간이 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을 때 사회의 부조리와 싸워 이길 수 있는가에 대한 사고 실험을 한 것이다. 



칼리굴라와 저항하는 근위대장 케레아


칼리굴라 : (중략) 내가 너희들을 증오하는 것은 바로 너희들은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야. 로마 제국 전체에서 오직 나만이 자유로워. 자, 기뻐들 하라, 마침내 너희를 앞에 자유를 가르쳐줄 황제가 나타났도다. (칼리굴라 오해, 책세상, p.41)


칼리굴라는 드루실라를 잃고 고뇌에 잠긴다. 드루실라와의 사랑이 자신의 실존 즉 '살아있음'을 보장해 줄 것이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랑이라는 것은 사랑을 교감하는 대상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사랑의 대상은 바로 인간이며 인간은 죽을 수 밖에 없는 유한적 존재다. 그리하여, 사랑은 절대로 칼리굴라의 불안하 자아를 보장해주지 못한다. 칼리굴라의 눈에 로마 시민이나 원로원 사람들은 자신의 실존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그리하여 칼리굴라는 모든 사람이 죽음에 대해 고민한다면 사회는 좋은 방향으로 갈 수 있다는 생각을 한 것 같다. 그리하여, 칼리굴라는 반역죄를 적옹해 원로원들을 사형하며 그들을 공포에 떨게 한다. 세상의 부조리를 비유적으로 형상화한 인물은 칼리굴라의 근위대장 케레아다. 케레아는 매우 이성적인 인물로 세상의 안정을 기원하며 서양 사회의 계몽주의 사상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이다. 또한 동시에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는 거울 같은 존재다. 칼리굴라는 케레아와 로마 원로원들과 계속 갈등하며 인간의 부조리와 사회에 대한 저항을 계속 이어나간다. 칼리굴라는 사랑, 사회의 제도, 결혼제도와 같은 사회적 관습을 배격하며 사회에서 벗어나 오로지 자신에게 집중하며 자신의 존재를 보장하려는 시도를 행한다. 이러한 시도는 폭정으로 이어지고 로마 원로원들은 칼리굴라를 제거할 음모를 꾸민다.



칼리굴라가 빠진 모순과 파멸


칼리굴라 : (중략) 불가능한 일! 나는 그것을 이 세계의 끝에서, 나 자신의 한계점에서 찾아 해맸던 거야. 나는 두 손을 내밀었어, (절규하며) 지금도 이렇게 손을 내밀고 있어. 그러나 내가 만나게 되는 것은 너, 항상 나를 마주보는 너. 너에 대해서는 온통 미움뿐이야. 나는 가야할 길로 가지 않았으니 아무 것도 이루지 못했어. 나의 자유는 제대로 된 자유가 아니야. 헬리콘! 헬리콘! 아무것도 없어! 아직도 아무 것도 없어! 아, 오늘 밤은 왜 이리 무거운! 헬리콘은 돌아오지 않을 거야. 그러니 우리는 영원히 죄인인 거야! 이 밤은 인간의 고뇌처럼 무겁기만 하구나 (칼리굴라 오해, 책세상, p.150)


칼리굴라는 로마 시민들에게 실존의 문제를 직면하고 해결하라고 강요를 한다. 그런데 칼리굴라는 모순에 빠지게 된다. 로마 사회에서 사람들에게 '실존을 깨우치게 하다는 것'은 카뮈가 배격하는 이성중심 사회와 계몽주의를 칼리굴라가 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깨우치게 하다'는 계몽주의의 연장선이며 이성주의적인 사고에 기반을 하고 있다. 칼리굴라는 사회의 부조리에 대한 저항을 황제의 자리에서 강요했지만 이는 사람들의 자유를 보장하기 보다는 오히려 전체주의적인 모습으로 전락하게 된다. 칼리굴라는 케레아와 원로원이 자신을 죽이기 직전에 자신의 모순을 깨닫는다. 칼리굴라는 자신이 신이라고 생각했지만 로마 사회 자체가 황제의 권력이 비록 막강했으나 귀족층인 원로원과 민회의 의견을 무시하고는 자신의 뜻을 이룰 수 없었다. 그리하여 칼리굴라의 사회 전체를 실존주의자 시민 사회로 만드는 꿈은 실패하게 되었으며 칼리굴라 자체가 사회 부조리의 중심축에 놓이는 과오를 경험하게 된다. 그리하여, 칼리굴라는 사회의 부조리에 대한 저항의 대가를 받는다. <칼리굴라>는 <이방인>의 뫼르소처럼 개인의 저항은 대가를 받으며 성공했지만 그 저항이 사회적으로 전파되지는 못했다. 즉 그의 저항은 개인적으로 성공했지만 사회적으로는 실패했으며 오히려 칼리굴라 자체가 저항자가 아닌 전체주의자가 되어 버린 것이다. 카뮈는 <이방인>, <시지프스 신화> 그리고 <칼리굴라>를 통해 비극 3부작을 완성했다. 그러나, <페스트>의 내용을 기준으로 생각했을 때 카뮈는 <칼리굴라>에서 사회 저항을 권력을 가지고 했을 때 전체주의로 빠질 수 있다는 생각을 염두한 것 같다. <페스트>에서는 시민들이 모두 연대하여 사회의 부조리와 맞서 싸운 것을 보면 <칼리굴라>는 흥미로운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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