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민성 Apr 18. 2016

<나사의 회전> 보는 관점에 따라 달라지는 결말

<나사의 회전> 헨리 제임스

<나사의 회전>은 소설을 읽어 나갈 때마다 조금씩 조여오는 공포를 느끼게하는 소설이다. <나사의 회전>은 이 소설에 등장한 유령과 같이 매우 모호한 소설이다. 무엇이 진실인지 알 수가 없으며 이와 더불어 각자가 보는 관점에 따라 그 결말이 다르게 나온다. 


이 소설의 줄거리에 대해 간단히 소개하자면 <나사의 회전>은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한 가정교사의 관점으로 소설이 기술이 된다. 억압적인 집안에서 살아온 그녀는 어느날 한 남자의 요청에 따라 그 집의 가정교사가 될 것을 권유 받는다. 가정교사는 그 집에 가서 마일스와 플로라라는 아이들의 가정교사가 된다. 그 집에 하숙을 하다 어느날 그녀는 유령을 보게 된다. 유령을 받다고 주장하지만 아이들이나 그 집의 식모는 그 유령을 보지 못한다. 유령들은 점점 아이들에게 접근을 하고 그것을 막으려는 가정교사의 노력이 보여진다. 마지막에 유령에게 빙의된 마일즈는 가정교사에게 폭언을 하고 가정교사에 의해 죽음을 맞이한다. 지금까지의 내용은 가정교사의 1인칭적 시점으로 본 내용이다. 하지만 이 소설의 묘미는 그녀가 본 유령이 진짜 존재하는지 아닌지에 대한 것으로 나뉘어 진다. 과연 그녀는 유령을 본 것일까 아니면 허상을 본 것인가?



순수성을 강요받은 가정교사의 환상(가정교사가 미쳤다면...)


이 소설에서 우리에게 공포감을 주는 요소는 바로 순수함이다. 가정교사의 경우 시골에서 태어나 가부장적인 집안에서 생활을 했었다. 즉, 그녀의 경우 개인의 욕망을 억제 받은 것이다. 소설을 읽다보면 그녀의 순수성은 그녀의 내면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강요받은 순수이다. 이런 강요받은 순수성이 점점 억제를 하게 되면서 히스테리적 성향으로 발전을 한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삶을 구속 받으며 그녀의 욕망을 하나도 풀지 못하게 된다. 이러한 상황으로 그녀는 정신병을 앓은 것일 수 있다. 주인집 남자에게 투영된 유령으로 말미아마 자신의 욕구가 유령으로 분출된 것이다. 유령으로 등장하는 타락한 가정교사나 잔인한 하인을 보면 이것은 그녀의 무의식이 만든 허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관념은 그녀만을 파괴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녀가 가르치는 아이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그녀는 가정교사라는 권위를 내세워 또다른 억압을 낳는다. 아이들을 통제하며, 자신이 본 것에 대해 강요를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았을 때 사회적으로 강요받은 순수성이라는 것은 또다른 권위를 낳으며 순수성이라는 이름하에 아이들이나 식모에게 거대한 나사가 되어 그들의 목을 조여올 수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마일스는 가정교사에게 처절한 죽음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어린아이는 과연 순수한 존재인가? (가정교사가 유령을 보았다면)


이 소설에서 또다른 순수성을 나타내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아이들이다. 마일스와 플로라는 아이 내면에 있는 순진성으로 인해 이 소설을 또 다른 비극으로 우리의 목을 조여온다. 이 소설에서 가정교사가 본 유령이 실제로 존재했다면 아이들에게 정말로 이들이 순수한가에 대해 의문을 품게 된다. 아이들에게 접근하는 유령들을 보면서 그것을 막으려는 가정교사의 노력을 농락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우리를 두렵게 만든다. 가정교사의 주의에도 불구하고 마일스는 태연하게 거짓말을 하며 가정교사를 비웃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유령이 보이는데도 순수한 미소를 짓는 마일스의 모습은 악마 그 자체이다. 이 관점에서 우리가 생각해 볼 것은 과연 어린아이들의 순수함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이다. 우리의 통념상 '어린아이 같다.'라는 말은 순수하다 혹은 세상물정을 잘 모른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이런 아이들의 순수성 아래에는 인간의 야만성과 악마성이 내제되어 있다. 순수하다는 것은 천진난만함이 내제되어 있지만 이와 더불어 그 의미를 확장하면 광기까지 그 의미를 확장시킬 수 있다. 아이들에게 있어 가정교사라는 존재는 그 광기를 억제해주는 존재이다. 마일즈는 학교에서 퇴학을 당했고 더이상 그는 사회로부터 안전지대에 놓인 존재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홀로 남겨진 아이는 집에서 야만적이고 교활한 존재로 발전하게 된다. 마지막에 가정교사는 마일스를 죽음으로 내몰게 되고 이에 따라 마일스는 구원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인간은 자신이 보는 관점에 따라 세상을 바라본다.


<나사의 회전>은 보는 관점에 따라 사회적으로 강요받은 순수성과 천성적인 순수성을 일그러트린다. 나사를 어떻게 돌리던 우리는 모두 자신의 관점에 따라 세상을 바라본다. 작가는 우리에게 인간의 지각이라는 것은 제한적이며 완벽하지 못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작가가 <나사의 회전>에서 보여주는 것은 우리가 유령이 소설에 진짜 존재하고 아닌가에 대한 집착을 버리라는 것이다. 이 소설에서 처럼 유령의 존재유무에 대해 끝없이 파고드는 것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나사의 압박 속으로 우리를 밀어 넣는 행위이다. 즉, 우리는 어떤 사건이 터졌을 때, 그 안의 본질에 대해 알려고 노력해야 하고 그것에 대해 생각을 해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우리는 한 사건에 대해 우리의 관점에 함몰되어 그 사건을 객관적으로 보는 것이 불가능하게 된다. 이것은 마치 모호한 유령을 쫓는 것과 같다. 가령, 정치의 경우 우리는 정치행위에 그 초점을 맞춰 우리가 보는 정치는 언제나 타락한 것이며 멍청한 것이라고 생각을 한다. 하지만 정치라는 것이 정치행위에 의해 그 의미가 규정되어 진다면 정치는 싸움의 혈투장 밖에 되지 않는다. 즉, 우리는 그런 행위에 목숨을 걸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본질을 볼 줄 아는 안목이 필요하다. 우리는 생각해 보아야 한다. 어떤 사건에 대해 나의 관점이 그 본질을 바라보는데 방해가 되지 않는가에 대해서 말이다. 나의 바람은 우리가 세상을 바라 볼 때 자신의 시각이 본질을 보지 못하고 나사에 함몰이 되지는 않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오늘은 대한민국 국민이 시민의 권리를 찾는 날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