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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나메나 Oct 04. 2022

물류센터 #1

 그는 오늘도 만원 지하철의 반대 행 열차에 몸을 싣는다. 그의 목적지는 베드타운에서 물류단지 로, 그가 움직이는 시간대인 퇴근길에는 붐빔이 덜하다. 그의 옆에는 어떤 여자가 핸드폰으로 오늘은 무엇을 먹을 것인지, 누구를 만날 것인지, 저번에 낌새가 영 좋지 않았는데 일단 한번은 더 만나보겠다는 둥 카톡을 보내고 있고, 그의 다른 옆에는 어떤 남자가 멍하니 빛이 이따금씩 비치는 지하철 차창 너머를 지켜보고 있다. 그는, 인터넷 서핑을 한다. 의미도 없는 분노가 만연해 있는 세상에 의미도 없는 분노를 소비한다.


 열 정거장 쯤을 지나 물류센터 역에 도착해 그는 걷는다. 역에서 센터까지의 거리는 꽤 먼데다가 한 여름이라 등에는 땀이 흥건하다. 땀을 많이 흘리는 그가 아닌데도 이러니 오늘 일하면서는 정말 꽤나 고생이겠구나 싶다. 녹색 우거진 가로수를 서른개 쯤 지나니 피우던 담배의 갯수도 세 까치가 넘어간다. 센터에 도착해 명부를 작성하고 간단한 그리고 익숙한 안전교육을 받고 피킹에 배치 받는다. 이 일에는 잔뼈가 굵지만 몸이 그리 건장한 편이 아닌 그는 주로 물건을 여러 구역에서 모아 포장에 전달하는 피킹을 맡는다.


 샴푸와 바디 로션이 잘나가는 날이었다. 그는 샴푸는 써본 적이 있지만 바디 로션은 써본 적이 없다. 그는 그런 것에 무관심하기도 했거니와 그런 것에 돈을 투자할 수도 없었다. 여자를 안아본 적도 없는 그는 여자들이 그런 것에 예민하고 그런 것의 사용이 주는 이점이 뭔지도 몰랐다. 어쨌거나 그렇게 그와 관련이 적은 물건을 담으며 주절주절 욕을 한다. 이 쇼핑몰의 주문자는 여성의 비율이 높았는데, 그것을 가지고 사치라느니, 된장이라느니, 흔한 말들이었다. 그는 같이 일하는 아르바이트생들만 괜찮은 여자들이라고 느꼈다. 자기 돈을 벌고, 힘든 일도 마다 않는. 그는 그녀들이 힘들게 번 돈으로 재밌게 놀고 저축하는 것엔 관심이 없었다. 그에게는 일, 일, 일 만이 있을 뿐이었고 월급은 고스란히 어머니의 병원비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그가 오면서 그렇게 저주했었던 여자가 자신과 같이 일하는 사람들과 별 다를 바 없는 사람이란 것을 모른다.


 그에게는 세상은 여러 층위의 적대적 관계로 나뉘어 있는데 일단 남자와 여자가 그렇다. 두번째로 부자와 빈자가 그렇고, 세상 전부와 자신이 그랬다. 그는 그러면서도 일하는 곳의 여자들에게 호감을 남 모르게 키워갔고, 세상 전부가 마치 곧 자신의 것이 될 것 인양 생각했다. 그러니까 그는 그 나름의 세계에서 정복자인 셈이다.


“아야!”


 무거운 박스, 이번에도 바디 로션이 가득 든 박스를 들다가 땅에 떨어뜨리는데 마침 발가락을 다쳤다. 그는 담당자에게 말했고 파스를 조금 뿌렸으며 붕대를 했다. 담당자는 혹시 모를 악화에 대비해 그를 조퇴 조치 하려고 했지만 그는 오히려 그럼 내 돈은 어쩌냐며 역정을 낸다. 다리를 다친 것이 여기 책임이니, 산재도 해주고 오늘 일당도 달라는 말이다. 담당자는 일을 하지 않은 시간에 대해서는 페이를 할 수 없고, 산재는 다른 부서에서 처리할 것이란 입장이다. 결국 타협 하에 그는 폐지를 찢어 버리는 곳에서 앉아서 폐지를 계속 찢는 일을 맡는다.


 그는 그 배정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이유는 폐지 처리장에는 악명 높은 담당자와 군대로치면 관심병사 같은 아르바이트 생들만 모아 놓기 때문이다. 그는 군대에서도 간부들에게 평판이 좋았던 것에도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고 맡아온 일은 무리 없이 항상 잘해내었기에 이런 관심 아르바이트생들은 그에게 루저로 보였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 아닌가, 그는 앉아서 박스를 찢는다. 부순다. 버린다.


“풀타임 근무야?”


 자신보다 한참은 어려보이는 어떤 남자애가 말을 건다. 그가 젊어보이기에 일하는 곳에서는 흔히 있는 일이지만 기분이 나쁜 것은 어쩔 수 없다. 그 남자애는 칠부 바지에 반팔을 입고 눈이 작아보이게 만드는 두꺼운 안경을 쓰고, 머리는 짧은데도 단정치 못해 보였다. 그 남자의 표정은 ‘실실’이라는 표현이 딱인 미소를 띄고 있었고 자신에게 쉽게 반말을 했다. 그는 단숨에 어울려서 ‘좋을 것이 없는 사람.’ 이라는 단정을 내린다. 거리를 둔다.


“아뇨 저녁 타임입니다.”
“난 풀타임이야. 돈 급한거 아냐? 풀타임이 시급도 쎄고 휴게 시간도 많은데.”


 그는 어쩌라는건지 하는 표정을 짓고 어깨를 으쓱 하며 다시 폐지를 찟는다. 하지만 그가 계속 말을 건다.


“난 이지호야. 몇 살? 난 23살이야.”

 그는 서른 세살이니 어이가 없을 노릇이다. 하지만 그는 굳이 그가 나이가 더 많다고 강조하지는 않는다. 그저 묵묵히 폐지를 찢을 뿐이다.


“여긴 금연인데, 눈 피해서 피울 데가 있긴 있어, 담배 피워? 안 피울 것 같은데, 한 대 줄까?” 

“아뇨 담배는 피우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이 지호라는 남자앤 막무가내로 담배 하나를 꺼내 그에게 준다. 그도 그냥 그러려니 하고 받아 든다.


“좀 이따 쉬는 시간에 피우러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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