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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나메나 Nov 15. 2022

미루다

 누가 그랬더라, 도망쳐서 도착한 곳에 낙원 따윈 없다고. 딱히 낙원을 찾아 헤맨 것은 아니었지만, 내 인생의 대부분을 도망치면서 살아왔던 것 같다. 그 대상이 현실이건, 이상이건, 과거든 현재든 나는 항상 어떤 것에서 멀어지려 했고, 결과적으로 나는 여러가지가 버겁다. 취직이건, 생활이건, 사랑이건, 우정이건… 


 도망침의 일환으로 나는 미룸이라는 방식을 택한다. 오늘 해야할 것을 미룬다. 어제 끝냈어야 할 것을 미룬다. 문제점을 찾아 원인을 파악한 후 타파하는 것을 미룬다. 나는 그렇게 낙원이 아닌 곳으로 향하고 있다. 낙원을 찾아 헤매지 않았다고 말했는데, 그렇다고 불행이란 사자가 이빨을 드러내는 곳에 내 머리를 집어 넣고 싶지는 않다. 나는 어떻게 해야할까.  


 미룸을 막기 위해 많은 글을 써왔다. 주로 다짐을 하는 글이었다. 작심삼일을 내 인생의 나날들을 3분의 1로 나눈 만큼 썼다 지운 나는 그럴 때마다 글을 썼다. 그래서 이 글은 다짐과 작심삼일과는 다른 결의 글이 되면 좋겠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자기 암시가 아니다. 나는 충분히 똑똑해 더이상 나에게 내가 아는것들을 각인 시킬 필요가 없다. 행동이 필요할 때이다. 


 하지만 글로써 행동이 이루어지지는 않지 않는가. 컴퓨터활용능력 자격증을 딸려면, 이론을 암기하고 실습을 해야지 “컴퓨터활용능력을 따자!” 란 글을 써야하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그렇다보니 나는 자꾸 글쓰기 무용론에 빠지고, 최근에 그 자주 쓰던 글 조차 멀리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다보면, 행동을 놓치고, 내 유일한 창작 활동인 글쓰기 조차 놓치는 것 아닌가? 그건 안되는데, 나는 무색무취의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사실 요즘 그렇게 생활이 망가진 것도 아니다. 정기적으로 하는 일이 있으며, 스터디 두개를 나가고, 매 주말 시험을 본 후 좋은 성적을 받아낸다. 술을 아직도 조금 많이 마시는 것이 흠이라면 흠이지만, 확실히 운동도 시작했고 전보다 긍정적인 생활을 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누가 나에게 글쓰기의 주제로 “미루다”를 줬을 때, 내가 생각한 첫 문장은 바로 저 위의 문장, “도망쳐서 도착한 곳에 낙원 따윈 없다.” 였다. 나는 부정적이다. 어젯밤 나는 2Pac의 Can You Get Away를 들으며 난 Get Away 할 수가 없어. 라고 한숨 지었다. 나는 나를 미워하는 것임에 틀림이 없다. 하긴, 나를 사랑해주는 여자 하나 없는 시기에 내가 나를 좋아할 수 있을까. 아니, 물론 전후 관계가 달라야 한다는 것 쯤은 알고 있다. 그래서 이 돌고 돈 의식의 흐름을 따른 글의 말미는 다르게 장식하고 싶다. 

 

 미루다와 도망치다. 모두 무언가에서 멀어지게 하는 것이란 특성이 있다. 일단 나는 현재 그래도 생활이 가능하다는 점에 포커스를 맞추자. 생활에서 멀어져도 나는 살 수가 있다. 내 덕은 아닐지라도. 그리고, 사실 생활도 그럭저럭 하고 있으며, 성과는 천천히 드러날 것이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다짐이나 결심이 아닐지도 모른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위로다. “민성아, 괜찮아. 도망쳐도, 미뤄도, 괜찮아. 너를 사랑해.” 하지만 이 문장을 되내이고 나니, 나 외에는 아무도 나를 사랑해 줄 사람이 없다는 것이 떠오르는 것을 어쩌면 좋단 말인가, 이것은 다짐이나 위로로도 해결이 되지 않다는 점이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또 술잔에 술을 따르고, 번뇌에서 도망치기 위해 모든 것을 미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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