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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나메나 Jan 19. 2020

2018. 9. 4.

 이번주는 두 권의 책을 읽었다. 물론 하나는 시작한지 꽤 된 책이다. 제목은 '산소리'로, '설국'의 작가란 이유 만으로 내게 있어서 최고의 작가가 된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쓴 책이다. 한 권만 읽고 작가에 대해 논하는 것이 조금 민망해서 다른 소설을 찾다가 이 책을 찾았다. 표지가 매우 예뻐서도 하나의 구매 동기가 되었다. 같은 '일본문학선집'에 있는 오에 겐자부로의 '만엔 원년의 풋볼'과 처음 들어보는 작가의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야구'도 샀더랬다. 정말, 이 선집들의 표지 디자인은 너무나 아름답다.

 또 다른 책은 내가 새로 시작한 독서 모임의 첫 책인 '모든것이 산산이 부서지다'이다. 나에게는 생소한 아프리카 문학에 대해 접해보고자 하는 마음에 선정했다. 재밌게 읽힘과 동시에 강렬함 또한 무시무시한 책이다. 보면서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불편한 것들이 너무 많아 여러가지 생각이 많이 들었지만 끝까지 잘읽었다. 아프리카의 식민지화 시대를 그리는 데에 여성의 인권과 의지를 효과적으로 드러내기에는 당연히 힘들었겠지. 그래도 조금이나마 식민지화의 과정에서 핍박받던 여성들의 주체적 참여를 그리는 것을 보면 여러가지로 고심한 작가의 의중을 알 수 있다. 이 책을 읽고 작가인 '치누아 아체베'의 작품을 또 찾아봤는데,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에 세 권이나 올라가 있더랬다. 그리고 그 중 한 책인 '더 이상 평안은 없다.' 또한 어제 교보문고에서 들쳐 업고 왔다.

 마그리트 뒤라스의 '연인', 아베 코보의 '타인의 얼굴' 등 읽고 싶은 책들이 쌓여 있다. 하지만 이 글을 보고 나의 독서량을 과대평가는 마시라. 오늘도 책 한권을 외가에 갈 때 가지고 갔지만, 10페이지를 읽은 것이 다였다. 어쨌든 조금 더 책과 가까운 삶을 사는 것이 요즘의 목표이긴 하다.

 목표 없는 내 인생은 매우 비참할 때도, 쾌락에 넘칠 때도 있었다. 그래서 간간히 목표를 만드는데, 사실 그것들은 상당히 '인간이면 당연히 해야할' 일들이 대부분이다. 어찌 보면 생존을 위해서 필수불가결한 일들. 생각해보면, 위기는 있었지만 어찌어찌해서 아직도 숨이 붙어 있는 것이 신기할 정도로 나는 그것들을 안했다. 나도 친구에게, "개강한지 3주나 되었는데 수업 한번도 안빠지고 다갔어!"라고 신나서 말해놓고 밀려오는 민망함은 어쩔 수 없다. 그러니까 나는 현실에 더 발을 딛고 살아가야 하는 것 같다. 그래도 옛날 보다는 꽤 땅에 발을 붙이고 사는데, 그래서 뭔가 더 책에 대한 애정이 생겼달까. 나는 경영학과생이니 사업사업머니머니혁신혁신하는 관심 없는 (개)소리만 듣다 보니 아베 코보의 모래 세계로 떠나고 싶어지는 것이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글 쓰는 것과도 꽤 오랜 시간 멀어진 것 같다. 그것을 깨달은 나는 지금 약간 의무감에 키보드를 두드린다. 사실 피파 19 선공개가 1시간 21분 남았는데 그동안 심심해서 글을 쓰는 것도 없진 않지만. 그리고 그냥 일기를 쓰기로 했다. 요즘 책을 많이 읽었고 많이 샀으니 그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았던 것이다. 그런데 사실 내가 처음 떠올렸던 글감은 뭐랄까, 가을이라 그런지 내게 계속 스며드는 맘 속의 적적함이다. 29살의 나이에 학교를 다니다보니, 그렇게 친구가 많지 않다. 있어도 다 산적같은 남자애들 뿐! 연애까진 아니더라도, 누군가 내 옆에 있어주었으면 하는 생각이 자주 드는 요즘이다. 교정을 거닐며 이따금씩 보이는 예쁜 커플들의 모습을 보면 미소가 지어지다가도 쓸쓸함이 찾아온다.

 얼마나 쓸쓸한건지 내 인생의, 아니 취향이나 관점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에도 큰 변화가 찾아왔다. '연하도 좋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평생 누나누나누나누나누나누나눈누난나만 외치던 내가 이제는 연하의 이성 또한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나의 누나에 대한 집착이 얼마나 심하냐면, 연락처에 '누나' '친누나' '누우나' '눈누난나'라고 4명의 누나들이 존재할 정도이다. 친누나에게 전화를 걸려 하다가 잠깐만이라도 버튼을 잘못 누르면 바로 전여친(?)에게 연락이 갈지도 모른다! 빨리 지워야 하는데, 귀찮아서 그냥 내버려두고 있다. 각설하고, 그런 나에게 연하의 이성이 눈에 들어온 것이다. 사실 학교엔 연하 밖에 없어서 자연스러운 변화가 아닐까 싶다가도, '그래도 누나가 짱이지.' 하며 연상을 꿈에 그린다. 그리고 천운이 내려 학교에서 누군가를 만난다면 적어도 밑으로 3~4살의 나이 차이는 날 것이고 심지어는 9살의 나이차를 상상하니 끔찍하기 이를데 없어서 몸서리가 쳐진다.

 그냥 일기인 것이다. 그냥 오늘은 마음 편하게 일기를 쓰고 싶었다. 갑자기 불안한 상태에 이르러 뭔가 날카로운 문장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바로 전에 쓴 글을 읽어보니, "가슴의 통증을 조금은 잊어버린 나는 그냥 상상력이 결여된 꿈을 꾼다." 라고 썼더랬다. 자화자찬이지만, 너무나 매력적인 문장인 것 같다. 나는 보통 이런 문장과 글을 쓰려면 좀 불안해야 한다. 하지만 요즘은 그렇게 불안하지가 않아 이렇게 재미 없는 일기가 나오나 보다. 근데 뭐 일기가 재미있을 필요가 있나. 그냥 일기, 피파를 할 수 있을 때까지 심심해 쓴 글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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