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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나메나 Jan 20. 2020

2014. 4. 28.

  사랑만 받고 자랐을지도 모른다. 난 나도 항상 인정하듯 온실 속 화초 그 자체이고, 남에게 엿먹어본 적도 없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나를 사랑해줬고 내가 잠든 사이 밥을 지어줬다. 사람들은 나를 챙겨줬고, 나는 사람들에게 술을 샀다. 각각의 이별은 나를 조각조각 쪼갰지만 누군가가 나타나 다시 맞춰줬고, 이번에도 그럴테지.


  사랑에 상처받은 경험은 누구나 있겠지. 나처럼 엄살쟁이도 있을 것이고 의연하게 이겨내는 사람도, 속으로 앓으며 강한 척하는 사람 또한 물론 있을테지. 나는 걱정이 너무 없어서 자꾸 이 문제에 대해 집착하는 것일지도. 내 방만한 누군가의 자취방을 보면 여러가지 생각이 든다. 어떻게보면 축복받은 나는 왜 이렇게 나약한 것일까.


  자신의 미래를 개척하며 하루하루 노력하는 사람들, 내 주위에도 여럿 있다. 난 그런 사람과 거리가 멀지. 내가 뭐 잘났다고, 아프다는 것을 핑계삼아 도망치기만 하지 이루어낸 것은 하나도 없다. 물론 나는 위에 말한 스타일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멋진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할 생각도 없고 딱히 이루어내고 싶은 것도 없다. 하지만 이러한 내 성격조차 배부른 자의 낭만 타령이니, 나는 부모님의 배경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어쩌려고 이랬는지 싶다.


  사람은 각자의 사정이 있고 각자의 사정이 가장 심각하다. 나도 안다. 하지만 약한 내가 싫으니까, 강해지고 싶으니까, 이렇게 내 자신을 자책하게 된다. 그리고 그 자책은 오히려 날 약하게 만든다. 한 사람이 “결국 기댈 사람은 바로 자기 자신이다.”라고 나에게 말했다. 난 부정했지만,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 나도 알지만, 기댈 나 자신이 너무나 나약해서 애써 부인하는 것일까. 생각해보면 결국 기댈 사람은 사라졌다. 내가 항상 타령하는 “결혼하면 평생 서로에게 기댈 사람이 생기는 거잖아.” 주장도 이제 슬슬 의심이 간다.


  결국 지금의 내가 기대고 있는 것은 매일 밤 마시는 두세잔의 술과 가끔 벌이는 허무한 불장난.


  포춘쿠키를 수백 수천개 뜯어서라도, 답을 찾고싶다. 하지만 모두 알듯이 그 속에는 항상 반복되는 의미없는 문장들 뿐이다. 오늘도 잔을 비우고, 잔 바닥을 빛에 비춰본다. 누군가 나를 위해 써준 답이 있으려나. 있을리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오늘도 한잔을 더 비워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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