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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나메나 Feb 27. 2020

모래의 남자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쓰는게 취미인 나는 언제나 목이 마르다. 사막의 오아시스에 있는 나는 이곳이 영원할지 의문이다. 물이 풍족한 와중에도 내 마음은 저 사구에 있다. 모랫바람이 휘날리는 사막의 한복판에서 나는 오아시스를 찾기를 그만두었던 와중이었다. 과거에도 최대한 아름다운 문장으로 예의 그 황량함을 묘사하려 노력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물을 마시며 글을 쓴다. 목마름을 쓴다. 모래바람이 그립지는 않으나 아직도 내 입은 칼칼하다.


 아직도 내 신발에는 모래가 남아있는듯하다. 사막을 너무 많이 걸었다. 몇번이고 털어내보려 노력했지만, 여전히 남아있다. 가끔 걸을 때 바스락거리는 불쾌한 감각이 거슬릴 때가 있다. 물로 닦아보지만 진흙덩이가 되어 오히려 더 들러붙는다. 다시 마를 때까지 기다려야한다. 진흙이 다 마르면 뗄 수 있을까. 긁어낼 수 있을까. 떼고 싶기는 한걸까. 나는 거스르는 사람이다. 흙을 치우면 내안의 흉터가 다 드러나지 않을까 걱정이다.


 글에서도 항상 나를 찾는 버릇은 오래되었다. 어쩌면 그것은 버릇이 아니라 내 천성인듯하다. 어두운 내 글은 나를 환기시킨다. 내 자신을 나쁘게 본 지도 꽤 오래되었다. 자신이 없을지도 모른다. 사람들에게 쉬이 말로는 자백할 수가 없어 이러는걸까. 그래서 글을 쓰는 것일까. 그래서 더 함몰되는 것일까.


 사랑은 왜 또 쓰나. 사랑을 왜 찾나. 그 답을 알기 위해 시작한 이 글이다. 사랑을 찾았다. 사랑스러운 사람. 그녀와 나는 해먹에 누워있다. 그렇다고 봐도 전혀 무리가 없다. 그런데 뭘 또 찾는지. 왜 자꾸 뒤를 돌아보는지. 


 글에서의 나는 나와 다른  페르소나로 볼 수 있겠다. 이적처럼 유해지고 싶지는 않다. 좋은 글을 쓰고 싶다. 편지도 꽤나 멋드러지게 쓰지만, 나는 이 갈증을 잘쓴다.


 게시글을 엮어 북을 만들며 흐름을 만들었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겪다가, 결국 사랑을 쟁취해내는 순서였다. 마지막으로 그 사랑을 놓치않고 싶다는 식이었다. 목차를 다시 짜야할지도 모르겠다. 내 인생의 방향성은 그렇게 설정되어 있지만 그걸 반영한다고 꼭 좋은 책은 아닌 것같다. 나는 나를 쓴다. 나는 뒤죽박죽이다. 글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나도 맘에 들지 않는다. 아마 또 손에 잡히는 것이 없겠지. 나는 나를 멸시한다. 


 이런 나에게 사랑하는 사람, 가족, 친구 모두가 손을 건네준다. 나는 복받은 사람이다. 열심히 할 것이다.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행복할 것이다. 이게 나이다. 현재의 나다. 오아시스 속의 나다. 그런데 잠시, 아주 가끔,  글에 있겠다. 열심히 할 필요 없다고. 너는 좋은 사람일 필요가 없다고. 그저 너라고. 그렇게 사막에서 이따금 시간을 보내겠다. 모래를 씹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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