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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나메나 Feb 28. 2020

사랑의 노래


2020. 02. 28


 비가 온다. 민성이는 편지를 쓰기로 한다. 힘들어하는 여자친구 지원이 생각에 맘이 어지럽다. 그의 책상 왼편 위는 창문이 있는데, 물방울로 촉촉하다. 잠깐 들리는 응급차 소리에 예민하다. 어려운 시국이다. 보잘 것 없지만 그가 처한 상황도 쉽지는 않다. 이 연인들에게는 어려운 상황이다. 만나기도 여의치 않다. 그는 편지를 써서 그녀를 북돋아 주기로 결심했다. 그것이 그에게도 힘이 될 것이기에.


 썼다 지우다. 저장했다가 불러오다가, 그는 아이디어를 낸다. 김훈의 문체로 글을 써보는 것이다. 편지를 많이 써와 지원이가 물리지 않을까 걱정이다. 그래서 골몰해 생각해 낸 비책이다. 하지만 생각이 든다. 김훈의 책을 안읽어보았을 것만 같다. 이만큼 쓰고 "아차!" 싶다. 그래도 이번에는 지우지 않기로 한다. 나름 재밌지 않을까. 워낙 특이한 문체이긴 하다.


 주어와 동사로만 이루어진 문장이 대부분이다. 김훈의 문체가 그렇다. 수사를 넣는 것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아차, 말이 너무 길어진다. "주어와 동사, 주어와 동사..." 민성이는 중얼댄다. "지원아 사랑해. 지원아 사랑해."만 반복할까? 그것도 답은 아닐텐데. 중언 부언이 길어진다. 소설 '칼의 노래'에선 벌써 1년이 흘렀겠다. 


"패착이야!" 그는 책상을 내리친다. 방금 저 개그도 이해 못할 것이다. 막다른 골목이다. 달콤하지도 않다. 애교를 부려야할 때이다. 그는 더욱 난감해졌다. 이 문체로 무슨 애교란 말인가. 그는 노트북을 닫는다.



2022. 02. 28.

 

 비바람이 분다. 민성이는 보채는 아기를 달랜다. 그 와중에 편지를 쓴다. 갓난애 기르기가 쉽지 않다. 아내 지원이는 바깥일로 바쁘다. 내조는 그의 몫이다. 육아에 지친 남편과 회사일에 찌든 아내, 어려운 시기다. 하지만 아기의 미소 한번에 모든게 해소된다. 아차, 문장들이 너무 길었다. 소설 칼의 노래'에선 벌써 2년이 흘렀겠다. 이 개그도 허사다. 그는 이유식을 데운다. 저녁을 차리러 간다. 8첩 반상은 기본이다.



2040. 02. 28


 홍수가 났다. 하지만 이 부부는 펜트하우스에 살아 문제가 없다. 애들이 다섯이다. 큰 아들은 올해 고려대학교에 입학했고 딸은 고등학교에 들어갔다. 아차, 또 문장이 길었다. 소설 '칼의 노래'에선 벌써 20년이 흘렀겠다.



2100. 02. 28.


쓰나미가 몰아쳤다. 하지만 이 부부는 땅에 묻혀 걱정이 없다. 둘은 나란히 붙어 있다. 그들은 행복했다. 평화롭고 사랑스럽게 살다 갔다. 자식이 다섯에 손주가 증손주를 나아 명절 때는 아주 난리다. 아차, 문장이 길었다. 하지만 소설 '칼의 노래'에서도 60년은 흐르지 않았을테다.



2020. 02. 28.


 비는 그쳤다. 민성이는 나름 마음에 드는 편지를 썼다. 노트북을 덮는다. 낮잠을 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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