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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나메나 Mar 05. 2020

우리 사귀어요

  아기들은 생각보다 눈치가 빠르다. 내가 그들을 무서워한다는 것을 알면 아기들 역시 나를 경계한다. 나에겐 아기와 강아지가 그랬다. 너무 좋아해, 너무 귀여워 나는 그들이 무서웠다. 그들을 쓰다듬어도 되는지, 그들을 좋아해도 되는지, 그들에게 마음을 주어도 되는지. 나는 너무 무서워하고, 내가 너무 잡고 싶었던 그들은 나를 멀리한다. 사랑 또한 그렇다. 나는 너무나 사랑하지만 태생적으로 사랑에 겁이 많은 까닭에 내 몇 없는 소중한 사람들은 나를 떠나갔다. 


  한편, 나는 애정을 가지고 애정을 주는데 있어서 겁이 없다. 그래서 나를 거쳤던 수많은 애정의 대상들은 나를 가까이 둔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너무 쉬운 작업이었다. 겁이 없는 나의 모습을 그들은 아기처럼 반겼다. 나의 적극성에 그들은 쉽게 경계를 풀었다. 나는 겁없이 애정을 주고, 그들은 아기처럼 나에게 안겼다. 하지만 나는 관계들을 이어나가지 않았다. 그날 밤에는 많은 애정이 있었지만, 그것들은 그날 밤만 지나면 눈 녹듯이 사라졌다. 나의 애정은 그랬다. 자의식을 충족시키기 위한 수단은 아니었다. 한 대상이 나에게 말했던 것이 생각난다. "술만 마시면 다 좋은 것 아니에요?" 나는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정말 그랬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곧바로 "어떻게 알았어요?"라고 답했고, 그녀는 깔깔 웃었다. 그리고 우리는 안았고, 아침이 지나고 더는 연락하지 않았다.


  그녀를 처음 만나서 두려운 감정을 느꼈다고 말하진 않겠다. 그것은 기만이다. 나는 겁이 없었다. 그리고 그녀에게 나에 대한 호감을 만드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사실 어렵고 말고는 상관이 없다. 나는 실패에 대한 겁도 없어서 매 밤마다 으레 행하듯 그녀에게 다가간다. 나의 머리를 친 그 말과는 틀리게, 나는 다 좋아하는 것일까? 아니면, 그녀와 술을 먹고 싶었던 것인가, 좋아하려고, 애정을 주려고, 그녀를 잃으려고. 나는 당최 내 맘을 알 수가 없다. 실패에 대한 겁이 없듯이 나는 결과에 대한 겁도 없다. 아니, 결과는 중요치 않았다. 나는 내가 누군가에게 애정을 준다는 행위에 대해서 만족한다. 그녀를 잃으면 또다른 여자를 찾으면 될 일이었다.


  그녀가 남자친구가 있었다는 사실은 오히려 호재로 작용한 듯싶다. 나는 애정을 줬지만 그녀를 갖지 못했다. 만약 그날 밤 그녀를 갖았었다면 그녀를 잃을 것이었다. 갖지 못하였다고 말했는데, 난 가질 생각도 없었다. 도덕적 사고의 결론이 아니라 그저 재미가 없었다. 나는 그녀가 조금은 나쁘다고 생각했고, 나쁜 사람을 가질 맘이 크리 들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의사도 나의 의사도 상관 없이 관성처럼 나는 그녀에게 키스했다. 약간의 아옹다옹 끝에 그녀는 나를 허락했다. 그 후 말없이 나를 째려본 후 나에게서 등을 돌렸다. 그렇게 나는 그녀를 잃지 않았다.  

  결국 그녀를 가지지도 잃지도 않았다. 이제 그녀와 나는 예의 그 입맞춤이란 줄로 묶여졌다. 약간은 날카로웠다. 아마 비행감이 하나의 이유가 아니었나 싶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서 내 입술을 만지작거렸다. 그녀가 남아있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그녀를 가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런 나에게 그녀의 첫 연락은 “이제 연락하지 말아요 우리.” 였다. 가지지도 못했는데 잃다니, 나에게 그런 경험은 없었다. 약간의 패배감마저 들었다. 생각보다 어려웠다. 내 감정은 복잡해지고 자꾸 입술을 만지작거렸다. 나는 그녀에게, “나를 버리지 말아요.”라고 말했다. 결국 그녀는 나를 버리지 않았고 나는 그녀를 잃지 않았다.


  어제 나는 그녀에게 안겨 울었다. 무서웠다. 어제는 그녀가 나에게로 온 날이다. 그녀를 가진 날이다. 그리고 평생 잃고 싶지 않다고 생각한 날이다. 그녀를 갖지도 잃지도 않았던 날 이후로 내 마음은 점점 커져 나에게 겁을 심어주었다. 겁에 질린 나는 그녀에게 사랑을 말하고 싶었다. 자연스럽게 나오는 사랑을 나는 멈칫하며 마음을 가다듬고 좋아한다는 말로 대신했다. 그녀를 갖고 싶었던 내 맘을 나는 보고싶다는 말로 대신했다. 그녀에게는 내가 무한히 애정을 발산하는 듯이 보였겠지만 이렇듯 나는 내 마음을 숨겼다. 점점 겁은 커져만 갔다. 그녀가 나를 안고 좋아한다고 말하려 할 때, 나는 농담을 했다. 그렇게 듣고 싶었던 말을 나는 의도적으로 막았다. 겁을 먹기가 겁이 났다. 그녀를 갖는 것이 겁이 났다. 나는 항상 갖고 잃기를 반복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사실 항상 하룻밤만으로 반복되지 않았던 때도 있었다. 전자와 후자가 몇 년의 시간차를 둔 적도 있었지만 결국에 나는 모두를 잃었다. 복잡한 머리를 식히며 그녀와 잠시 떨어져 걸었다.


  사랑했다. 영문도 모른 채 나는 그녀를 사랑했다. 어려운 일이었다. 사랑을 해본 지가 매우 오래되었다. 강요에 못 이겨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도 힘든 일이지만 정말 사랑을 해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이었다. 나는 죄책감이란 감정에서 상당히 멀어진 사람이라 한번 힘들게, 강요에 의해서 사랑을 말하면 그것을 반복하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니었다. 하지만 사랑을 해 사랑을 말하는 것은 다르다. 나는 사랑이란 감정에서 이미 멀어진 사람이다. 하지만 그것이 너무나 거대하고 너무나 소중한 것이란 것을 나는 안다. 까르르 웃으며 순백의 미소를 짓는 애기 같은 사랑을 다시 대면한 나는 마치 자연의 거룩함을 보고 느끼듯이 몸을 부르르 떤다. 어쩌면 쓰나미 같은 이 파도가 나에게 다시 다가온다. 그녀가 보통의 파도를 일으키는 달이었다면 나는 쓰나미를 일으키는 지진이다. 나는 내 한마디로 그 쓰나미를 일으킬 수 있었다. 사랑해라는 그 말 한마디로.


  나는 나를 파괴할지도 모르는 그 말을 말했다. 그녀는 마음을 열었다. 그녀가 마음을 열라고 한 말은 아니었다. 나는 수문을 개방했다. 그녀를 갖기 위해서인가? 아니면 잃기 위해서인가? 이 글을 쓰며 나는 다시 몸을 부르르 떤다. 어제 나는 그녀를 갖았다. 지진이 지나가고, 쓰나미가 지나갈지도 모른다는 걱정에 나는 펑펑 울었다. 모든 것이 끝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녀에게 안겨 울었다. 그런데 오늘이 와선 나는 넘실넘실 대는 파도를 타고 부유하고 있다. 따듯한 물과 따사로운 햇살이 나에게 행복을 준다. 나는 그녀를 잃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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