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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선미 Jan 27. 2024

피아노 땡땡이치는 딸 길들이기

이른 사춘기를 보내는 방법


딸과 나는 비슷하면서도 정말 다른 구석이 많아  조용할 날이 별로 없다. 한마디로 멀쩡한 날이 없을 정도로 서로의 감정을 받아주고 알아주기보다는 어떻게 해야 더 많이 상처 내기 대회에 나온 것처럼 매 순간을 으르렁거리면서 티격태격했다.


그런 우리 모녀를 지켜보는 남편과 아들은 '또 시작했네. 저러다 말겠지' 하며 물 건너 불구경하듯 불똥만 안 튀길 바라며 한 발짝 물러서서  몸을 사린다.


지나고 보니 딸이 이토록 예민해진 것은 초등학교 4학년부터였다. 주변에서는 이른 사춘기라고 명명하지만 내가 보기엔 절대 하기 싫은 것은 굴하지 않는 지랄발광하는 고집불통처럼 보였다.


그랬던 딸이 작년 여름 도쿄에 다녀오면서 살짝 꼬랑지를 내린 격이 되었다. 왜냐면 이젠 뭔가를 깨달았는지 엄마에게 잘못 보이면 자신에게 득 되는 게 없다는 것을 알았나 보다. 내 눈치를 보는 게 느껴졌다. 그렇다고 매사 고분고분하지 않고 필요할 때만 순한 양처럼 굴었다.


이른 사춘기가 오면서 그동안 다니던 학원과 학습지를 모두 그만두었다. 비로소 나는 정말 딸아이에게 못된 엄마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대한민국의 모든 엄마들이 하는 교육처럼 아이들을 양육하지 않겠다고 선언해 놓고서 초등 고학년이 되니 저절로 말끝마다 듣기 싫은 학업 얘기를 했던 것이다. 한 번은 딸아이가 피아노에 간다고 나갔는데 원장 선생님에게 전화가 왔다.


"○○이가 아직 학원에 안 왔어요.

월요일마다 오지 않는데 횟수를 줄이시는 건가요?"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인가?'


그동안 꼬박 3회 차 분의 교육비를 입금하고 있었는데, 이것이 한두 번도 아니고.

얼마 전부터 월요일마다 오지 않았다니. 이것은 바로 땡땡이를 감쪽같이 치고 있었단 말인가. 순간 얼굴이 화끈거려 어떻게 전화를 끊었는지도 모르게 도망치듯 끊었다.



딸이 집에 오기만을 기다렸다. 마침 피아노가  끝나는 타이밍에 맞춰 현관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있는 그대로 사실을 고하게 해야 할지, 아니면 무슨 이유가 있었는지 대화로 풀어야 할지. 참 누가 알까 남부끄러운 일이었다. 첫째 아들은 한 번도 이런 땡땡이를 모르고 보냈는데 이런 것 어디서 배운 건지 일단  퇴근하고 오는 남편과 상의를 하기로 결정했다. 왜냐면 딸과 내가 극도로 감정싸움이 될 때 중립을 지키고 이성적으로 결론을 몇 번 내렸기에 이 사건을 넘겨야 했다. 특히 딸 앞에선 분노조절이 안되기에 참아야만 했다.





저녁을 먹고 나서 남편은 딸방으로 들어가서 1차 대화를 시도했다. 고분고분하는 딸은 언성을 높이지 않는 아빠에게 순한 양처럼 고해성사를 하고 거실로 다정하게 손 붙잡고 해맑게 나왔다.



아빠는 아이의 생각과 의견을 받아주는 편이었고 나는 내 생각과 욕심대로 끌고 가는 편이었다. 모든 엄마들이 그렇듯 학원을 알아보고 다니라고 하지, 아이가 먼저 '저 이 학원에 다니고 싶어요'라고 말하는 초등학생을 열에 한 명이 있을지 모르겠다.

아이는 그렇게 자기는 피아노를 배우기 싫다고 말했고 사건은 그렇게 일단락됐다. 앞으로 엄마 욕심으로 먼저 학원으로  강제로 보내지 않겠다고 말하며 사교육비 지출이 확 줄었다.



엄마의 불안 때문이었다. 남들 다하는 예체능은 초등 저학년에 마스터해야 한다는 공식의 피해자였던 셈이다. 참 보통 사람으로 만들려고 애만 잡고 학원만 살찌웠다. 남은 건 아이와 나의 멀찌감치  멀어진 거리였다.



차라리 애꿎은 교육비로 아이와 맛있는 거 먹고 여행이나 다닐 걸 그랬다며 후회했다. 모든 시행착오에는 정신적, 육체적, 금전적 손해가 따르는 법, 비싼 교육비였던 셈이다.


그게 엄마 노릇인 줄 알았다.




사진출처 언플래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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