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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선미 Oct 23. 2023

희망고문은 이제 그만



희망고문은 안 겪어본 사람 없을 것이다.

살아가면서 둘 중의 하나를 선택을 할 때마다 

선택의 기로에 놓이는 게 바로 희망고문이다.

특히 다이어트 프로그램에 참여하라고 할 때, 늘 드는 생각이다. 

프로그램에 들어가기만 하면 분명 날씬해져 있을 텐데... (당장 가고 싶게 만든다)

헬스장에 가면 금방 근육량이 늘어날 텐데... 알면서도 그렇게 헬스장에 가는 발걸음이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다. (헬스장에 1년을 등록하고 오히려 안 가는 분들이 많다)









사실 우리는 알고 있다. 참여만 한다고 되는 게 아니고 그 장소에 가 있다고 모두 성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내가 절제하고  피나는 노력이 숨어있다는 것을 어느 누구도 말하지 않는다. 만약 날씬해지고 싶다면 시키는 대로 먹고, 운동도 몇 시간씩 해야 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약만 먹어서 날씬해진다면 이 세상에 뚱뚱한 사람은 없을 테니까.

우리는 알면서도 또 희망고문에 빠진다.

결과는 참혹해도 나 자신을 사랑하는 자기애가 크기 때문에 귀찮다는 둥, 시간이 없다는 둥 수백 가지의 핑계를 대며 합리화한다. 이처럼 희망고문은 안 될 것을 알면서도 될 것 같다는 희망으로 고통을 주는 것이다.







우리는 어떤 일을 시작할 때 주변 사람들의 응원과 격려를 받으면 너무 감사하게 생각하고 그 한 마디를 건네준 사람들을 뼛속 깊이 기억하고 싶어 한다.

그 사람이 나에게 해준 격려의 말은 실패할까 두려워하는 내게 꺼져가는 불씨를 불붙게 한다. 곧바로 '나는 할 수 있다'라는 의지를 곧 불태우게 된다. 우리는 알고 있다. 의지만으로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없다는 것을. 특히 아기를 갖는 것은 신의 범주임인 게 틀림없다.

나도 실낱같은 희망으로 한 달에 한 번씩 '혹시나' 하는 바람으로 눈물로 지새운 날이 많았다. 바로 원인불명의 임신으로 6년이란 긴 세월을 보냈다. 주변에 난임으로 고생하는 부부를 보면 별의별 것들을 다하고 다닌다. 내가 그랬듯이.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고 있다. 나 또한 알려주는 대로 다 해 본 경험자였다.

귀가 얇다는 소리를 들어도 간절함에 혹시나 하는 바람에 용하고 유명하다는 곳은 전국 방방곡곡 찾아다녔다. 그 수많은 일들로 경제적 손실과 6년이라는 세월을 흘려보냈다. 지나고 보니 참 어리석었다는 생각을 하지만 그 당시에는 안 보이고 안 들렸다. 오죽하면 병원에 다니면서도 비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는 것들을 먹었고, 실천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혹시나' 하는 기대 뒤에 실망과 절망감이 너무 컸다. 그렇다고 희망고문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힘든 일이 있을 때는 객관적으로 나를 그곳에서 빠져나와서 생각할 수 있을 지혜를 길러야 한다. 그리고 실패에 대한 회복탄력성도 키워야 한다. 오뚝이처럼 털고 일어날 수 있는 힘을 말이다. 주위의 '잘될 거야'라는 응원의 말은 감사하지만,  스스로 노력하고 났을 때 듣는 칭찬에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 절대 요행을 믿어서는 안 된다. 








산다는 것은 

죽는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며

희망을 가진다는 것은 

절망의 위험을 무릅쓰는 일이고 

시도해 본다는 것은 

실패의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다. 

그러나 모험은 받아들여져야 한다.

왜냐하면 인생에서 

가장 큰 위험은 


아무것도 감수하지 않는 일이기 때문이다.



_레오 버스카 글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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