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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선미 Mar 29. 2024

2월이 생일인 딸의 불만

엄마도 어쩔 수 없단다

엄마는 언제 어디에서나 죄인이다.

어제 하교를 마치고 돌아온 딸아이가 '쌩~'하고 바람을 가르며 나를 본척만척 외면하더니 급기야 방문을 '쾅'하고 소리 나게 닫아버렸다. 전에는 오자마자 품에 안기고 반가워하며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영화처럼 시간별로 이야기를 늘어놓던 아이였다. 분명 무슨 일이 있는 걸 직감했다. 이런 일이 한두 번도 아니니 그냥 넘기려다 이건 아니지 속으로 되뇌며 열까지 세고 난 후, 방문 앞에 서서 망설였다.


작년부터 사춘기에 접어든 딸을 바라보는 엄마는 하루에도 열두 번도 넘게 소리 지를 일이 넘쳐나지만 버럭(욱)하는 소리와 쓰윽(뱀소리) 소리 내는 것을 최대한 티 내지 않고 참아야 했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천사 같던 여자였더라도 '엄마'라는 타이틀이 생기고 나서는 나도 모르게 욱하는 분노가 올라와도 참을 일이 많았다. 왜 아이를 키우면서 지난날의 원망스러운 부모님이 이해됐고 조금씩 조금씩 아프면서 강인해심지어 너그러워지기까지 했다.


예민한 딸 덕분에 3월까지만 출근을 미뤄놓은 상태, 이제 며칠 안 남았는데 또 사달이 나서 빨리 문제를 알아내서 해결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다른 때 같았으면 그냥 나도 외면해 버리는데 4월부터는 출근이라 딸이 왜 그런지 들여다볼 심산이었다. 간신히 마음을 추스르고 방문을 조심스럽게 슬그머니 노크했다. 아이는 아니나 다를까 침대에 벌러덩 누워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고 있었다. 딸아이는 작년부터 앉아있는 것보다 거실에서도 방에서도 누워있는 것을 더 많이 보아온 터라 그냥 넘겼다. 아이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았지만 나는 침대에 걸터앉으며 도대체 무슨 일이냐고 차분하게 묻자마자 돌직구로 말문이 쏟아졌다.


"오늘 학교에서 종례시간에 3월에 생일인 친구들을 모아서 생일축하 파티를 했는데"라고 시작했다. 새 학기로 담임선생님이 아이들을 위해 마련한 깜짝 파티를 해준 게 문제였다. 작년 담임선생님은 이런 일이 없었으니 무탈하게 지나갔던 거였다. 나는 아이 편을 든다고 맞장구친다고, "그럼 2월생인 친구도 함께 생일파티해 주면 좋았을 걸"이라고 말했다. 그 말에 아이는 더 화를 냈다.


딸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알면서도 "그래서?"라고 물었다. 아이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다짜고짜 따졌다. "엄마는 왜 나를 2월에 낳아서 한 번도 생일파티를 못하게 하냐"라고 말하며 날카롭게 노려봤다. 내가 2월에 낳고 싶어서 낳은 것도 아니고 간신히 시험관 아기 시술로 낳은 것도 감지덕지했는데 어디서 계절도 따지지 않고, 몇 월생 인지도 따지지 않고 낳았냐고 물어서 기가 막혔다.


어린이집, 유치원 다닐 때는 달마다 생일파티를 해주어서 그때는 몰랐다. 입학하고 1학년이 되었을 때는 이미 3월이라 새로운 친구들을 지난 생일에 부르기도 뭐 하고 동네 친구들을 불러서 하자고 해도 그건 싫다고 했었다. 그리고 2학년에 올라가자마자 코로나로 학교에 가지 않고 온라인 수업을 했다. 2년 넘게 코로나로 동네에 있던 키즈카페는 다 문 닫아서 생일파티는 고사하고 모이는 것조차 쉬쉬하던 때였다. 그 후로 아이는 생일파티는 언니네 가족들과 모여서 외식하거나 여행을 갔는데 파티 한번 못한 게 한이었나 보다.


어른이 되고 나면 생일을 챙겨주는 친구들이 생기기 마련이지만 코로나를 겪은 내 딸아이는 내성적으로 분위기를 누군가 만들어줘야 앞에 나서는 아이였다. 결론은 자기 생일이 2월인 게 불만이라며 화를 내며 오빠는 3월인데 왜 자기는 2월이냐며 억지를 부렸다.


학교를 다니면서 한 번도 키즈카페에서 생일파티도 못해주고, 집으로 친구를 불러서 생일파티를 못해준 못난 엄마였지만 해준다고 할 때마다 왜 그렇게 안 한다고 거부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최대한 나는 아이의 의견을 존중해 주고 싶었던 거였는데 사건은 불통으로 끝났다.


아마 딸아이는 어른이 되어 엄마가 되면 알 수 있으려나. 세상 모든 일을 뜻대로 되는 일보다 그렇게 않은 일이 더 많다는 것을 말이다. 엄마는 그래도 네가 얼마나 소중한지 알아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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