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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선미 May 03. 2024

언어의 마술

내 사전에 불가능이란 없다. 글쓰기가 그렇다. 내게 불가능해 보이는 산처럼 높은 탑이었지만 매일 읽고 쓰면서  조금씩 내 서사를 쓰기 위해 언어로 마술을 부리고 있다.  



"일을 하다 보면 단어의 잡초 밭에 발이 감겨서 책상 위로 몸을 웅크리고 머리를 양손으로 감싼 채 뼈가 으스러지도록 집중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 한 항목을 며칠 째 들여다보고 있지만 어디서 실마리를 잡아야 할지 확신이 서지 않고, 어느 순간 제정신을 유지해 주는 필라멘트가 쉬익 소리를 내면서 끊어지고 만다. 갑자기 마음 한가운데서 당신이 이 항목에서 고전하고 있는 이유가 명백해진다.(그 문장을 읽고 또 읽었다 p.29)


어떤 사람이 누구인지를 알아보려면 그 사람이 사용하는 언어를 살펴보기만 해도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다. 언어는 그 사람의 삶 속에 숙성된 사고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내가 경험하고 체화된 것들만 내 입 밖으로 뱉어내는 언어로 되기 때문이다.


대화 도중에 말문이 막힐 때가 있는데 내가 생각하고 있는 감정이나 느낌을 표현하고픈데 마땅한 단어가 없을 때 그렇다.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뱅글뱅글 돌기만 할 뿐 뾰족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정말 인절미를 먹고 가슴에 무언가 걸린 느낌처럼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왔다 갔다만 수백 번을 해도 떠오르지 않는다.



글을 쓸 때도 마찬가지다. 이럴 때는 꼭 사전에 느낌이나 상황을 찾아보게 된다. 이 심정을 누가 알아줄까. 번뜩이게 떠오르는 글감이나 단어를 메모해야 한다. 아무리 노력해도 뾰족하게 떠오르는 어휘가 없을 때 노트북을 끄고 신발을 신고 집 밖을 나간다. 나의 기억력이나 어휘의 한계를 느끼며 비참해진다. 그 누가 알아줄까나 시간을 흘러가는데 아직도 머릿속의 뇌는 그전에 이미 멈춰 머물러있다.


가로수길을 걸어도 꽃핀 정원을 걸어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딴생각한다는 말이 딱 이럴 때다. 먹어도 무슨 맛인지 모르고 대화를 해도 딴생각하느라 대화에서 동문서답하다 딱 걸린다. 이 답답함을 떨치기 위해 뇌를 지진 나게 하려고 달렸다. 이제 포기하려는 시점, 우연히 유레카처럼 떠오르는 언어가 있다. 한 번은 내 머리 아이큐를 생각해 본 적이 있다. 나이 들수록 기억력이 감퇴한다고 내가 쓰던 어휘들도 잊히는 느낌이었다. 그렇다면 새롭게 입력되는 어휘는 몇 개가 될까 세어봤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뭐든지 좋건 나쁘건 스펀지처럼 흡수한다. 양육자가 사용하는 말들을 웃음소리인 의성어, 의태어까지 기억한다. 예부터 부모가 다양한 어휘를 사용하면 자연스럽게 아이도 수천, 수만 가지의 어휘를 사용한다고 한다. 공부하듯이 배운 게 아니라 놀면서 배웠다고 해야 맞는 말이다.  


지금 핵가족으로 바뀌기 전에 대가족이 한 지붕아래에서 살 때가 그랬다. 할아버지, 할머니, 아빠, 엄마, 형제자매에게 다양한 어휘들을 일상 대화를 통해 차곡차곡 쌓았기 때문에 놀면서 배운 어휘가 많았고 말하기나 글쓰기가 어렵지도 않다. 지금은 혼자 사는 핵개인시대 인다. 혼자 살아도 편리한 세상이다. Sns, 스마트 기기, 넘쳐나는 1인물품들이 우리 생활에 이미 들어와 있다. 가족은 없어지지만 서로를 챙기는 이웃공동체가 필요하다.


 앞으로는 그 전과는 전혀 다르게 살아가야 하는 시대다. 핵개인은 누구의 눈치를 보고 필요가 없고, 각자의 희귀함을 추구해야 한다. 희귀함을 쌓으면 고유성을 가지며, 고유성에 진정성까지 쌓으려면 축적의 시간이 필요하다. 고유함은 나의 주장이고, 진정성은 타인의 평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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