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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선미 May 06. 2024

엄마의 욕심이 아이를 망친다

호텔 같은 집에 살면 과연 행복할까?


지난 주말, 남편 친구네 부부와 저녁을 먹었다. 갑작스러운 약속이었지만 9년 만의 만남이라 반갑고 설렜다. 한동네로 이사 와서 산 지 10년이 지났어도 살아온 횟수보다 두 부부가 만나서 식사를 한 횟수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우리 아이들이 유치원 다닐 때 그 부부의 자녀들은 중고등학교 학부모였으니 만나도 공통 관심사부터 달랐다. 다만 몇 번의 골프라운딩에서 만난 것이 전부였다. 현재 우리 아이들은 중학생이 되었고, 그들 부부의 첫째는 벌써 직장인이 되었고 둘째는 곧 입대를 앞두고 있었다.     



남편 친구의 아내는 나와 동갑이어도 애들 나이에 따라 삶의 질은 천지 차이였다. 내가 유모차 끌고 종종거리며 다닐 때, 그 친구는 요가에 헬스까지 다녀도 될 만큼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지금은 두  아이 모두 독립해서 신혼부부처럼 단출하게 살지만, 우리는 아이들 어려서 여전히 복작거리며 격동적인 사춘기를 보내고 있으니 정반대였다.     





아~ 세월이 흐른 탓일까. 아니면 생각이 바뀐 탓일까 아무튼 그녀도 나도 많이 달라져 있었다. 아이들을 위해 엄마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내 던져 버리고 지극정성으로 아이들 뒷바라지를 한 결과 두 아이를 모두 명문대(서울 소재)를 졸업시켜서 그런지 유유자적 당당했다. 역시 아이를 잘 키우면 엄마들이 어깨 뽕이 들어간다는 말이 맞는 말이었다. 갈수록 사교육 시장이 들끓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라 믿게 된다. 그녀의 당당한 모습을 보며 부러웠지만, 내가 과연 할 수 있을지 의문점만 늘어나고, 왠지 나는 애들을 그렇게 뒷바라지할 용기가 생기지 않았다.   

   

돈도 돈이지만 나의 꿈은 '엄마'가 되는 거였는데 긴 세월을  아이가 생기지 않아 맘고생이 심했다. 시험관아기 시술로 7년 만에 성공하여 드디어 엄마라는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그제야 사계절의 아름다움을 온몸으로 만끽할 수 있었고, 행복한 내 집에서 아이들과 함께 사는 게 꿈이었다. 소박하고 평범한 행복이 내겐 꽤 긴 세월이 걸렸다.


아이에게 욕심이 생기려고 하면 남편은 내 손을 잡고 그 시절을 기억하라고 다독였다. 지금 누리는  이 행복도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고 마음에 담아두었던 미움, 설움, 분노, 욕망 등이 스멀스멀 올라와도 감정들을 다스렸다. 매일 맞이하는 선물 같은 하루의 행복에 감사하면서.     





아이를 낳자마자 스스로 헬리콥터 맘을 자처했다. 그게 어쩔 수 없었다고 이제야 고백한다. 귀도 깃털처럼 얇아서 아이에게 좋다는 것은 갈대처럼 바람 따라 흔들리며 한없이 나풀거렸다. 엄마가 처음이라서 그렇다고 변명했지만, 엄마의 가치관대로 아이를 키울 수밖에 없었다.


귀하게 아이를 얻은 만큼 최대한 더 귀하게 발이 땅에 닿지도 않고, 내 등에 업혀서만 다녔기에 발에 흙먼지 닿을 일이 없었다. 시간이 한참 지나고 나서야 깨달았다. 옛 어른의 말씀처럼 귀하게 얻은 아이일수록 평범하게 엄격하게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이가 내 목숨보다 소중하다며 오냐오냐 키우면 평생 나약하고 이기적으로 자란다고 주변에서 해주는 말들을 흘려들었는데 곧 후회했다.      


책을 읽으면서 잘못된 육아관을 깨닫고 뉘우쳤다. 아이는 내 소유물이 아님을 나를 대변해 줄 마루타가 아님을. 나의 욕심으로 아이를 망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티 나지 않게 조금씩 아이를 옭아매 두었던 끈들을 하나씩 풀어헤쳤다.


보이지 않는 옥에서 해방된 아이들은 자유가 생기면서 명랑하게 자랐다. 그렇다고 아이를 나처럼 키우라는 법은 없지만, 엄마는 아이를 독립된 존재로 인정해 주고, 아이가 원하는 바를 격려해 주며 내 욕심(욕망)을 내려놓아야 제대로 성장할 수 있다.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 무던히 애썼던 나였다. 하지만 나를 제대로 알아야 상대가 보이듯 독서를 하면서 '뭣이 중한데'를 깨닫게 되었다. 틈나는 대로 나의 내면의 나를 더 공부하겠다며 짬짬이 책을 보고, 글 쓰며 모습이 내 욕심만 부려 흠칫 부끄럽기도 했다. 유난스럽게 아이를 가지면 모든 엄마가 잘 키우고 싶은 마음이지만 아이마다 부모 욕심으로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에 수없이 마음을 절제하고, 다독이며 아이들의 행복이 최우선으로 여겼다.     




과한 사교육을 시키지 않았고 경험을 많이 할 수 있는 체험학습 위주로 놀이 활동을 다다. 내가 욕심을 내려놓을수록 아이들이 자주 웃으며 행복해했다. 시간에 쫓기지 않으니 다른 친구들과 비교되는 것을 아이들도 먼저 알아차렸다. 공부하면서 자신과 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모든 일에는 때가 있기에 기다려주는 중이다. 혹여나 그때가 너무나 늦지 않기를 바랐다.     





이야기 도중에 그들 부부는 20년 살던 집을 두 달 동안 리모델링했다고 사진을 보여주며 자랑했다. 뭐든 최고로, 가구, 가전, 자재로 뼈대만 그대로 놔두고 몽땅 배치부터 흔들어서 바꾸었다고 했다. 남편 말로는 새로 집을 지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인테리어 비용이 어마어마하게 들었다고 했다. 남편이 보기에는 리모델링 한 집보다 공사금액에 더 충격을 받았는지 모른다.     



여자에게 있어서 과연 '집이란 무엇일까?' 생각해 봤다. 쉬는 곳, 편안한 곳, 아늑한 곳, 화려한 곳, 행복이 샘솟는 곳, 재미있는 곳 등등 온종일 시간을 보내는 곳이다. 집은 그 공간에 머무는 사람의 취향이 묻어있고 존재하는 사람들이 소유한 것들로 모여있는 가치 있는 곳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뭐 하나를 들여도 심사숙고해서 집안에 들여놓고 수명이 다해 처분하게 될 때, 큰 이별의 고통을 겪는다. 그렇듯 남자건, 여자건 내가 사는 집에 대한 욕망이 짙게 드러낼 수밖에 없다.   


  

나라고 여자 아닌가, 예쁜 집, 호텔 같은 집, 모델하우스 같은 집에서 살고 싶기에 부럽다며 여러 번 탄성을 질렀나 보다. 그러고 보니 아차 싶었다. 옆에 있던 남편이 괜한 소주를 더 들이붓더니 잔을 채우고 있었다. 나는 진심으로 모델하우스 같은 집이 부럽긴 했지만, 내가 살림하며 살 수 없음을 알았다. 우리 네 식구가 살기엔 어울리지도 않았고 감당도 안 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최대한 부러운 내색하지 않으려고 표정 관리에 애썼다. 참 20년 넘게 산 부부도 사고가 터지고 나서야 수습하려니 난감했다. 한 살 한 살 나이 들수록 남편이 자주 삐치기 시작했고, 날로 감성이 풍부해졌다.     



엎질러진 물처럼 내가 호들갑스럽게 질렀던 탄성을 주워 담을 수도 없고, 신이 난 그녀가 핸드폰으로 자랑하듯 보여주는 욕실, 주방, 거실, 붙박이장을 보고 공감을 안 해주자니 더 옹졸해 보일까 격하게 공감해 주었다.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고 여자들은 가끔 자신도 모르게 죽을 맞추고 있는데 좀생이 남편은 상처가 됐는지 그날 저녁 집에 돌아가서 어떻게 돌변할지 슬슬 걱정이 올라왔다.     



집으로 돌아와  취한 남편은 다행인지 불행인지 곧바로 잠들었다. 오히려 맥주를 여러 잔이나 마신 나는 이상하게 잠이 오지 않고 가슴 한편이 답답하고 서늘했다. 사람 사는 게 모두 다 똑같다고 해 놓고 모델하우스처럼 고가로 집을 꾸미고 살면 과연 행복할지 의문이 들었다. 내가 현재 아주 평범한 서민으로 살고 있으니 부러울 뿐이었다. 예전 보물지도책을 읽고 보물 지도 보드판을 만들었던 경험이 떠올랐다. 고가의 아파트, 벤츠, 샹들리에, 식탁과 소파, 침대를 최고급처럼 생긴 사진을 잡지에서 오려 붙였던 게 생각이 났다. 속물처럼 물욕이 가득 넘쳐흘렀다.   



’꿈꾸면 언젠가는 이루어진다 ‘라고 미니멀 라이프로 잡다한 물건들을 모두 버리고 살면 모델하우스처럼 될 것이다. 아니면 지금 이 집에 살면서 가끔 기분 전환으로 호캉스나 풀빌라로 휴가차 다녀오면 힐링될 거라며 스스로 위로했다. 사실 좋은 집은 내게는 사치였다. 집안에 수천 권의 책을 끌어안고 있으면서 모델하우스처럼 해놓고 살고 싶다는 말은 언감생심이었다. 물건 쟁여놓는 수집광이 모델하우스를 꿈꾼다는 것은 바보 같은 생각이었다. 뭐든 하나 살 것도 여러 개 사둬야 마음이 편안하고, 의미 있는 물건들을 버리지 못하면서 말이다. 내 물건부터 정리하려고 마음먹으면 금방 호텔 같은 집은 당장 가능했다.    



차라리 요즘하고 있는 1일 1개씩 비우기 프로젝트를 열심히 하여 호텔처럼 여유 공간을  넓히기로 했다. 책도 손흥민의 아버지인 손웅정 작가처럼 세 번 읽고 쓴 뒤 버리기로 했다. 지금 사는 집은 내 손 때가 묻은 물들로 채워진 곳이라 가장 아늑하고 편안했다. 사랑하는 가족들과 매일 숨 쉬고, 까르르 웃고 떠드는 모습이 얼마나 정겹고 행복한 집인가. 내가 좋으면 매 순간을 오롯이 누리니 천국이다.


집안의 중심인 엄마가 주관적인 욕심으로 아이뿐만 아니라  집안 분위기도 망칠 수 있으니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한다. 전망이 좋은 오션뷰에 사는 사람들은 일주일만 행복하지만 요리 솜씨 좋은 아내와 사는 집은 웃음이 끊이질 않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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